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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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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Jan 01. 2025

무파사: 라이온 킹

난 꽤 재밌게 봤는데

Nature-nurture issue. 유전인지 환경인지의 논쟁. 얼마 살지 않은, 그래서 그런 문제에 답하는 게 어쭙잖은 나는 유전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무파사>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린 두 사자, 무파사와 타카의 성장 과정을 통해 왜 한쪽은 왕이 되었고 다른 쪽은 되지 못했는지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골자다. 결과는 모두가 알듯이 무파사가 왕이 되고 타카는 스카로 전락하지만(스포일러이나 뻔한 결말이기에 대놓고 밝히겠다.), 중요한 건 그 차이를 만들어 낸 환경, 즉 양육(nurture)의 방식이다. 감독의 말마따나 이 영화의 빌런인 키로스도 흰 털(생김새)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니, 영화가 얼마나 후천적 요인을 역설하는지 알 수 있다.

삶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여러 동물과 어울려 살며 먹고 먹히는 섭리를 따르는 것. 영화에서 이걸 '생명의 순환'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설명은 무파사가 심바에게 해준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When we die, our bodies become the grass, and the antelope eat the grass. And so, we are all connected in the great Circle of Life."

먹는 쪽이 먹히는 쪽을 먹어도 나중에 먹히는 쪽에게 먹히니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먹는 입장과 먹히는 입장이 대등하게 교환된다. 이런 순환은 생태계의 안정과 지속을 가져다준다. 나는 글에서 이걸 '순환'이라 명하겠다.

다른 삶의 형태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만 생각하며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키로스와 오바시가 영역(생존)과 혈통(번식)을 중시하고 다른 사자에게 배타적인 게 그 예다("빛이 닿는 건 전부 내 거야." "타카, 넌 왕이 될 몸이야. 떠돌이들과 어울려선 안 돼."). 이런 삶은 끊임없이 나 외의 존재와 경쟁하고 혈투해야 하니 불안정하고 언젠가 필멸한다. 나는 글에서 이걸 '단선(單線/斷線)'이라 명하겠다. 자기 혈통만 생각하고 다른 동물과 화합하지 않으니 '순환'처럼 연결되지 않는 직선 같은 줄(單線)이며, 오바시가 키로스에게 당한 것처럼 다른 상대와 충돌하고 승부를 가릴 수밖에 없으니 결국 끝(斷線)이 있는 것이다.

출신이 다른 두 사자가 실험 대상이 된다(영화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길러지는 측면을 '실험'이라고 표현한 것). 무파사는 평범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홍수 때문에 그들마저 잃어 떠돌이 신세로 오바시 무리에 편입한다. 타카는 오바시의 아들로서 후에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유전이나 천성 같은 선천적 요인이 중요하다면 당연히 타카가 밀레레의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무파사가 왕이 되고 타카는 밀려난다. 둘의 선천성을 뒤짚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커온 방식이다. 즉, 양육이나 환경 같은 후천적 요인이 둘의 운명을 뒤바꾼 것이다. 무파사는 무리의 암컷인 에셰 밑에서 자연을 대하고 먹이를 사냥하는 법을 배운다(암컷이 사냥을 하는 본래 사자의 습성). 싸우는 기술, 감지하는 능력, 협동하는 마음. 그런 것들이 무파사의 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반면에 수컷의 왕인 오바시 밑에서 자란 타카는 "무리를 이끄는 숫사자의 책무는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것"이라는 말처럼 별다른 것을 배우지 못하고 왕의 자리를 물려받기만 기다린다.

무파사는 자연에서 다른 동물과 함께 먹고사는 '순환'의 가르침으로 컸고 타카는 암컷이 사냥해 온 먹이로 배를 채우며 자신의 지위(영역)만 지키는 '단선'의 가르침으로 큰 것이다. 이러한 양육과 성장의 차이는, 키로스의 '단선'이 오바시의 '단선'을 덮쳐 파괴할 때 무파사와 타카가 무리의 도움으로 먼저 멀리 도망가는데 그 떠돌이 생활에서부터 진가를 드러낸다. 물론 무파사가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어렸을 적 타카가 구해준 것처럼 두어 번 더 그의 도움을 받지만 거의 대부분 떠돌이 무리를 이끌고 결국 밀레레에 도착해 키로스를 무찌르는 것은 무파사다. 왕이 될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사건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코끼리 떼의 이동에서 사라비를 구출한 것과 다른 하나는 밀레레에 도착한 뒤 다른 동물들에게 키로스 무리와 싸워줄 것을 부탁하고 설득한 것인데 거기서도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무파사다. 그는 에셰로부터, 그녀와 함께한 사냥 수업으로부터 동료를 위험에서 구하는 용기를 배웠고 다른 동물과 공존하고 연대하는 사상을 키웠다. '순환'의 양육 방식이 결국 그를 왕으로 만든 것이다. 타카는, 암컷에게 말 거는 법도 모른다. 수컷들하고만 지내서 암컷의 생리에 무지하다. 무파사는 그에게 사라비의 몸에서 나는 꽃 내음에 대해 알려주고 그걸로 대화를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타카는 사라비에게 접근해 그대로 말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시큰둥하고(이걸 통해 애초에 무파사한테 관심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 꽃 냄새에 대한 얘기도 무파사의 감각으로 알아낸 것이기에 타카는 더 자세하게 말 잇지 못한다. '단선'의 양육 방식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오바시가 때론 왕에게 기만도 필요하다고 했던 것처럼 남을 속이는 일인데 좋은 영화가 인물의 의미심장한 대사를 나중에 회수하듯이 타카는 결국 무파사를 배신하고 키로스를 끌어들인다. 최후의 결투에서 '순환'과 '단선'이 맞붙는다. 타카가 결탁한 키로스는 혈통을 중시하고(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 라이온 킹은 하나뿐임을 강조하고, "순환은 깨졌다."라고 말하고, 평화와 공존의 터전인 밀레레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단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부하인 암컷 백사자들은 여러 동물의 연합 공격을 당해 내지 못하고, 커다란 백사자인 그는 무파사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만 자연의 이해가 부족한 탓에 ― 갑자기 땅이 흔들려 동굴에서 싸우던 둘이 물속에 빠지는데 무파사는 '순환'을 통해 자연을 느끼는 법을 배웠으므로 곧 큰 돌이 떨어짐을 예상하고 피하지만 키로스는 '단선'의 방식으로 살아왔으므로 싸움만 잘하지 자연에 대한 감각은 무파사만큼 뛰어나지 않아서 ― 돌을 피하지 못하고 수장된다.

이 영화가 '순환'의 가치에 방점을 찍고 있듯이 왕으로 추대된 무파사는 어렸을 때 헤어졌던 엄마와 해후하고, '순환'의 파생 가치인 공존을 실천하듯 배신자 타카를 내치지 않는다. 프라이드 록(Pride Rock)에 오른 그의 포효는 고아 출신에서 왕의 자리로 거듭난, 즉 운명을 개척한 자의 위대한 외침이다.


타카가 본래 나쁜 사자가 아니었음을 기억하자. 그는 무파사와 달리기 놀이를 할 때만 해도 착한 사자였다. 양육과 환경이 그를 스카로 만든 것이다. 선천성보다 후천성에 주목하는, 영화의 이런 의도는 주요 등장인물이 외인(떠돌이)이고 그들이 유토피아인 밀레레에서 공존의 행복을 맞이하는 것과 연관돼 있다. 일단, 무파사는 부모를 잃고 오바시의 무리에 의탁한다. 그는 그 무리의 정통 일원이 아니다. 타카는 오바시가 키로스에 의해 공격당하자 무파사와 함께 떠돌이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는 떠돌이 무리를 배신해 한 번 더 외인이 된다. 사라비와 그녀의 척후병 자주도 무리에서 나와 떠돌던 처지였다. 라피키는 외모와 특성(주술)이 남달라 그 이질성 때문에 무리에서 쫓겨난다. 심지어 악의 축을 담당하는 키로스도 흰 털을 가졌기에 일반 사자들로부터 배척당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이들이 외인의 자격에서 함께 모여 공존의 땅(밀레레)에 도달하는 결말은 후천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영화의 주장에 논리적 힘을 실어준다. 왜냐하면 밀레레에서 떠돌이 사자 무파사가 왕이 되고, 그의 엄마가 미리 와서 살고 있던 걸 보면 그곳은 이민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여러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상향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천성이 중시되었다면 키로스의 무리처럼 한 종류의 동물로만 이루어진 사회밖에 없었을 것이고 떠돌이들이 꿈꾸는 밀레레도 신기루 같은 헛된 이상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후천성을 긍정하기에 이민들의 공존이 가능함을 보여줬다는 뜻. "떠돌이가 아니에요. 그냥… 길을 잃은 거죠." 어린 무파사의 이 말은 거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서는 사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구별이 없고 모두가 그 순환의 길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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