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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스티브 로저스가 진짜 대단한 거였구나

by 심윈터 Mar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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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영화니까 리뷰를 후딱 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 보고 나서 생각을 엄청 많이 했다. 도대체 이 영화 뭐지? 새로 선임된 캡틴 아메리카가 지구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다. 줄거리는 충분히 이해되는데 그 속에 담긴 함의가 파악되지 않았다. 맞고 때리는 액션 영화에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겠냐고 할 수 있지만 마블은 그렇게 간단한 데가 아니다. 유치해 보이는 히어로한테도 현실의 우리를 능가하는 삶의 무게가 있고 세계관을 통해 고민하고 풀어야 할 철학 문제가 있다. 그냥 멋있다고 영웅인 게 아니다. 헐크,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등은 상징성과 시사성을 가지고 제작됐고 그들을 보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상징과 시사가 무엇인지 암시한다. 당연히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 나는 그게 마블 영화에 대한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화책과 피규어까지 사고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하는 게 최고의 미덕임.)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내가 지금까지 본 마블 영화를 나열한다.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 2> <아이언맨 3>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 <블랙 위도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이렇게 영화 목록을 공개한 까닭은, 이렇게 근본 없이 봐왔기 때문에 이번 '캡틴 아메리카'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뭔 소리인가 하면, 마블 유니버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를 각각 한 편이라도 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이번 작품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가 도대체 뭐길래? 이번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소코비아 협정'이 그 작품들에 나온다. 이번 캡틴 아메리카에서는 그 협정이 자세히 다뤄지지 않지만 내러티브 구조가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돼 있다. 그래서 마블 영화에서 가장 비중 있는 두 시리즈를 보지 않아 소코비아 협정에 대해 몰랐던 나는 뒤늦게 그런 것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번 영화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소코비아 협정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소코비아라는, 마블 세계의 가상 국가를 울트론이 높이 들어 올린 뒤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지구와 충돌시켜 세상을 파괴하려고 했는데 어벤져스가 그걸 막고 상공에서 소코비아 땅을 폭파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인명을 구하고자 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그 일이 발단이 되어 히어로들을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된다. 어벤져스는 117개 국가의 감시를 받으며 UN의 허가와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그 골자다. 한마디로, 어벤져스를 통제하겠다는 것.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뉜다. 전자의 수장은 아이언맨이고 후자의 수장은 캡틴 아메리카다. 기업을 운영하고 슈트에 대한 소유권을 중시하는 아이언맨이 히어로 규제에 찬성하는 것과 정부의 계획 하에 탄생했고 국가를 위해 일했던 캡틴 아메리카가 규제에 반대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 의미심장하다. 각자 자유와 규제를 충분히 경험해봐서 그 폐단을 경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찬성파의 논리는 초월적 힘이 국가 권력 아래 있어야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떳떳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무력 행사는 공권력만 할 수 있으므로 국가를 벗어난 힘의 존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나아가 통제되지 않는 힘은 정부의 역할마저 무시하는 무정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히어로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해도, 즉 그런 가정으로 초국가적 힘을 긍정하더라도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되면(토니 스타크가 울트론을 탄생시켰듯이) 막을 길이 없으므로 애초에 확실히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찬성파의 이런 주장은 적극 개입, 소득(힘) 분배, 경제 안정("Peace in our time.")을 목표로 하는 큰 정부와 연관한다. 그리고 그것은 좌익에 가깝다. 반면에 반대파는 ― 반대니까 우익에 가깝고 ― 국가란 언제나 정의가 아니므로 초월적 힘을 히어로 개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권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또한 인격 없는 사회 집단이라서 사사로움의 해악에서 자유롭다 할지라도 결국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타락의 가능성은 인생에 항시 존재한다. 통치권자가 비뚤어지면 권력이 남용되고 국가가 망한다. 철인 개념을 내세워 그런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면 되지 않겠냐 하면 히어로 규제를 반대하는 쪽에서 히어로 또한 철인일 수 있으므로 그들의 부패를 우려해 특별히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같은 논리로 맞받아치는 게 가능하다. 선한 인간으로 발탁되어 혈청 맞아 히어로가 된 스티브 로저스가 규제에 그렇게 반대하는 건 철인에 가까운 자신의 본성을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롭게 내버려둬도 나는 착하므로 힘을 악용할 리가 없다. 뭐, 그런 생각. 마블이 미국 회사라 그런지 그들 세계관에서 공권력의 폐해를 종종 드러냄으로써 규제 반대를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것도 사실이다. 쉴드를 잠식한 히드라 세력. 헐크를 막겠다고 어보미네이션이란 또 다른 헐크를 탄생시킨 로스 장군(재밌게도 이번 영화에서는 그가 헐크가 된다.). 통제 주체 또한 이렇게 부정해질 수 있다면 통제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히어로 규제에 대한 흥미로운 점은 아무리 117개국이고 세계 평화를 표방하는 UN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통제하는 히어로들이 그들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통제 주체가 통제 객체보다 약하면 형식적 통제는 몰라도 실질적 통제는 불가하다. 사람이 개의 주인이 될 수 있어도 개가 사람의 주인이 될 순 없는 법.


타노스가 핑거 스냅으로 생명체 절반을 날렸기 때문에 소코비아 협정은 유야무야해졌지만 이번 '캡틴 아메리카'에서는 새 시대가 시작된 만큼(샘 윌슨의 캡틴 아메리카 승계와 썬더볼트 로스의 대통령 취임) 그 문제에 대한 일정한 매듭을 짓는다. 내러티브 전체가 소코비아 협정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마블 나름의 답변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은 자유와 규제라는 두 가치의 충돌을 해소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영화에 소코비아 협정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맞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 번 나올 것이다. (로스 대통령이 어벤져스의 재결성을 원한다고 밝히자 샘이 소코비아 협정을 언급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 그렇게 사소한 일인데 어떻게 영화 내용 전체와 관련 있느냐 하면 내러티브 구조가 소코비아 협정을 도식화한 것이나 다름없고 세계관의 스토리상 어벤져스 해체 후에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히어로 활동을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에 소코비아 협정을 다시 대두시킬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잠깐의 언급으로 그치지만 그것의 두 축(자유와 규제)을 상징하는 인물을 통해,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번 영화의 핵심 개념임을 암시한다.

쉽게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빌런이 둘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세뇌로 사람을 조종하는 새뮤얼 스턴스와 막판에 레드 헐크가 되는 썬더볼트 로스. 이들은 각각 소코비아 협정의 양 끝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자유와 규제를 상징한다. 로스는 국무장관일 때 어벤져스가 모인 자리에 협정서를 가져와, 동의하지 않으면 은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통제'하는 정부(국가)에 속한 인물이고 이번 영화에서 주도하는 아다만티움 공동 분배도 명분만 그럴싸할 뿐이지 실은 그 자원에 대한 미국(로스)의 통제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딸에게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평화적인 대통령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아다만티움을 단 한 국가만 가져야 한다면 그건 미국이어야 한다는 속내를 비친다.) 새뮤얼 스턴스는 그런 로스와 대적하므로 자유 측에 속해 있다. 초월적 힘을 가진 개인(히어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머리 상처에 배너 박사의 혈액이 떨어져 대두(大頭)가 되고 양자컴퓨터만큼 똑똑해진 그는 로스에 의해 10년 넘게 감옥에 갇히고 로스가 대통령이 되면 풀어준다고 했지만 배신당해 계속 수감된다. 그의 억울한 옥살이는 그가 얼마나 자유를 갈구하는지 짐작게 한다.

문제는 그 둘이 빌런이라서 부정적으로 처리되고 ― 로스가 출세를 위해 새뮤얼 스턴스와 비밀 거래를 했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그를 계속 감옥에 가두었다는 실체가 폭로되고, 결국 로스는 헐크로 변하는데 이는 공권력의 수장도 타락할 수 있다는 '규제'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낸 것이고 새뮤얼 스턴스의 경우에는 개인의 초월적 힘이 권력(로스)과 야합할 수 있고 원한 같은 부정적 감정에 의해 그 힘이 악용되면 전쟁 같은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자유'의 단점을 보여주는데 ―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양쪽에게 정상 참작의 사유가 있어 그들의 부정이 악으로까지는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왜 두 빌런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주었을까? 이는 곧 소코비아 협정의 두 가치인 자유와 규제를 영화가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양쪽 모두 단점이 있으니 그 중간에서 각각의 장점만 취하자는 것이다. 중용. 절충. 뭐, 그런 것이다. 백악관에 초청됐을 때 이사야 브래들리는 샘을 말리지만(정부의 '규제'에 이용만 당해서 그는 정부를 믿지 않는다.) 샘은 이 나라는 균형을 잃었다고, 그 균형을 잡는 게 캡틴 아메리카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유와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 영화는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자유와 규제의 충돌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될 것이다. 새 시대의 미국은 샘 윌슨에 의해 무분별한 자유도, 강압적인 규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미국은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게 진정 멋진 신세계다. 새뮤얼 스턴스가 자수하고 헐크 로스가 설득되어 래프트(감옥)에 함께 수감된 결말을 기억하자. 샘이 두 사람을 번갈아 면회한다. 두 빌런은 죽임의 방식으로 처리되지 않고 세계관 안에서 적법하게, 나름 좋게 처리된다. 그들이 상징하는 '자유'와 '규제'를 영화가 극단으로 부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균형'을 상징하는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두 가치의 중용을 부각하는 게 영화의 주제다. 새뮤얼 스턴스가 알약에 넣은 감마선이 가시광선의 파랑에 그나마 가깝고 그 알약을 먹은 로스가 빨강 헐크가 되니 두 빌런 사이의 캡틴 아메리카가 빨강·파랑이 섞인 슈트를 입은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파랑은 우파라 자유고 빨강은 좌파라 규제이기까지 한데. 캡틴 아메리카의 흰색과 윙 슈트는 미국 국조인 흰머리수리를 상징하는 게 확실하므로 앞으로 미국은 좌우가 함께 가야 한다고(균형) 말하는 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샘 윌슨이 혈청을 맞지 않은 이유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혈청은 국가가 초인 병사를 만들기 위해 주입하는 것이고 초인이 된 자원자는 조국에 봉사해야 한다. 여기서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규제를 두고 딜레마가 생기는데 혈청은 아무래도 국가의 규제와 가까울 수밖에 없다. 초인 병사는 국가의 감독 하에 탄생하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스티브 로저스처럼 개인적 행복을 박탈당할 수 있고("I had a date···.") 버키처럼 다른 집단에 의해 악용될 수 있고 이샤아 브래들리처럼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측면에서는 혈청이 아무 문제 없을까?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은 2대 캡틴 아메리카인 존 워커의 경우로 알 수 있다. 그는 원래 혈청을 맞은 슈퍼 솔져가 아닌데 파괴되지 않은 혈청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걸 통해 초인이 된 경우다. 그러니까 국가의 관리 하에 이뤄진 게 아니라 독단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선한 것은 더 선하게 하고 악한 것은 더 악하게 하는 혈청의 특성 때문에 그는 열등감과 복수심을 참지 못하고 사건 현장에서 악당 하나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캡틴 아메리카 직위에서 해제되고 불명예 퇴직을 당한다. 완전하지 않은 개인이 혈청을 취할 경우 주변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그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새뮤얼 스턴스도 개인의 자유와 혈청(감마선?)이 결합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을 이번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준다. 나름 초인이 된 그는 로스 대통령에 대한 원한과 복수 때문에 타인을 조종하고 전쟁까지 일으킨다. 그러니까 혈청은 개인 쪽에서도 국가 쪽에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자유와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주장하므로 혈청을 맞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만약 맞았다면 양쪽의 단점을 모두 일으킬 가능성이 생겨(이야기 구조상 그렇다는 얘기) 자기모순의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국가가 무슨 일을 벌이든 충성하는 게, 자신에 대한 객관적 성찰 없이 그저 슈퍼 솔져가 되고 싶은 게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다. 혈청을 맞지 않았기 때문에 레드 헐크를 설득한 것이고 ― 이 설득 행위는 샘이 '균형'을 담당하기에 '규제'의 헐크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기 위한 내러티브적 결과고 ― 헐크도 싸움에서 패함 없이 이성을 찾아 스스로 수감되어 '규제'에도 긍정성이 있음을 드러내 샘의 '균형'을 내러티브적으로 보강한 것이다. 근데 다 이해되는데 혈청 없는 캡틴 아메리카는 확실히 약해 보여서 마블 시리즈를 이끌 만한 매력이 안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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