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엄마와 단 둘이 쌍룡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아마도 제사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그때 왜, 엄마와 나만 갔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한겨울 해가 다 떨어진 어둑한 저녁에 기차에서 내렸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역사를 빠져나갈 때 본 도로에는 눈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역 앞의 시장 안으로 들어가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자, 엄마는 나에게 겨울 잠바를 사 입혔다. 나는 신발을 원했지만, 엄마는 잠바를 사주었다.
“가자”
어릴 적 일이라 얼마를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불빛도 없는 길을 걸어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뒤집어쓴 잠바의 어깨와 모자에 눈이 쌓여 있었다. 이미 몇 번을 털어냈지만, 어느새 눈은 또 쌓여 있었다. 나와 엄마를 몹시 반가워하던 친척 아주머니가 아랫방으로 밥상을 들고 들어왔고, 아랫목 이불을 들춰 공깃밥을 올려주었다. 화로에 된장찌개가 올라갔을 때 내가 불을 살리겠다고 ‘호~’하고 불었을 때 찌개 위로 재가 날리자 엄마가 내 등을 탁 쳤다. 오래전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별 걸 다 기억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쌍룡이면 작은할아버지댁이었을 거 같긴 한데”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교실에 학생이 꽉 들어차 2부제 수업을 할 때였다. 그날은 오전반이었는데 빽빽하게 들어찬 교실에서 뒤에 앉은 아이가 칼을 갖고 노는 걸 몰랐던 나는, 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다가 오른쪽 중지 손가락등을 베였다. 손가락등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지며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웅성대는 틈에 선생님이 달려왔고, 빨간 약을 바르고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교실에 앉아있다가 마지막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괜찮나? 조심 좀 하지!!!”
병원엔 가지 않았다. 몸빼바지를 입고 나갈 준비를 하던 엄마는 내 손가락의 붕대를 풀고 갑오징어뼈를 칼로 긁어내 손가락에 뿌린 후 붕대를 다시 감아 주었다. 나는 엄마가 화를 내며 칼을 갖고 놀던 친구 욕을 하거나 선생님 욕을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공부나 얌전히 할 것이지라며 다치고 들어온 아들을 혼냈다.
오른손 중지 손가락에는 아직도 큰 흉터가 남아있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뒤에 앉았던 아이가 갖고 놀던 검은색 학용품 칼과 손가락이 베이던 서늘한 기억, 그리고 엄마의 몸빼바지가 생각난다. 엄마는 내가 3학년을 마칠 때까지 석탄을 주으러 다녔는데, 산처럼 쌓인 석탄 중 쓸만한 걸 주워다가 연탄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면 살림에 보탬이 됐다고 했다. 석탄을 줍다가 경비가 호루라기를 불며 쫓아오면 반대편으로 도망을 다녔는데, 그러다가 한번 구르기라도 하면 크게 다치는데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주머니들과 석탄을 주으러 다녔다고 했다. 아마 그날도 엄마는 석탄을 주으러 나가려다가 내가 다치는 바람에 나가질 못하자 나를 혼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나중에서야 들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역시나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고 난 거길 자주 찾아뵙지도 않으니 그런 얘기조차 자주 나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엄마에게 아주 오래된 옛날 기억들을 꺼내며 얘기를 걸곤 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그런 옛날 얘기 해서 뭐 하냐는 식으로 답하면서도 엄마가 기억하는 다른 옛날 얘기들을 툭툭 던지곤 했다. 이제는 엄마와 그런 얘기를 나눌 시간들을 별로 만들지 못하니 아쉽고 속상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엄마도 같은 생각일까 가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