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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y 31. 2024

사람들은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나

나의 결혼생활. 7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대화가 줄기 시작했다.

원인은 나였다.

그때는 너무 바쁘게 살았다. 세상이 나 없으면 안돌아가는 것처럼 착각했다.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서면 5일 근무중 이틀 정도는 새벽 1~2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다. 

5일 중 4일은 술에 취해 귀가했다.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집에서의 대화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일때문에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어쩌면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를 보며 일탈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집에서의 대화가 줄고, 냉랭한 분위기가 생기는 지 고민해 보지도 않고 시간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같이 술을 먹던 동료를 데려다준다며 음주운전을 하게 되었다.

동료 직원도 나도 술에 취했지만, 대부분의 음주 운전자들이 그런 것처럼 다 취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도 둘다 음주 운전 상태라는 것을 부인했을 것이다.

결국, 그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음주 운전 단속에 걸렸다.

경찰서에 앉아 조서를 쓰고, 새벽녁에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아직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음주운전만큼 한심한 행동은 없다)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혐오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던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와는 대화가 더 줄어들고, 천천히 오래동안 관계가 식어갔다.




결정적인 일은 그 이후에 생겼다.


그날도 약속이 있어 저녁까지 먹고 귀가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직원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보고 자료인데, 나한테 물어보고 완료를 해야 할 것같다는 것이었다.

일 얘기가 금방 끝났는데도 나는 그날 전화를 바로 끊지 않았다.

-왜 아직도 퇴근을 안했냐

-내가 너무 일을 많이 준 거 아니냐

-다음에는 내가 도와주겠다

-미안해서 저녁이라도 사야겠다

-집이 어디냐, 늦으면 집에 어떻게 가냐

등 돌이켜 생각해보면 친절한 직장상사를 빙자해 치근덕대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 통화하고 돌아서는데 아내가 아파트 현관 1층에 서 있는게 보였다.

내가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몸을 돌려 집으로 올라가 버렸다.

뭐라고 말할 틈조차 없었다.

(늦은 밤 통화를 뭐라고 설명할까)

그 순간 나는 그저, 아내 아닌 누군가와 다정하게 전화 통화를 나누는 '정신나간 놈'일 뿐이었다.


이후 나는 그걸 설명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고, 내가 술을 좀 먹다보니 야근하는 직원한테 미안했나 보다라는 등 그게 변명이든, 설명이든 했어야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말 안해도 알겠지. 다 이해하겠지. 지난 주에 밥 먹으면서 얘기했는데 다 알겠지 뭐. 


가장 가깝기때문에 가장 멀다라는 건 그런게 아닐까

'내가 당신한테 이런 것까지 말하고, 설명하고, 변명해야해?'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한다.


길 가다가 부딪히기만 해도 죄송합니다, 5분만 늦어도 미안합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아내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가도 급한 약속이 생겼다며, 미안해라고 가볍게 한마디 하고는 아내 혼자 식은 밥을 먹게 한다.


'한동안'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대했고, 가장 아프게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안했고, 지금도 그렇다.



제가 쓰고 있는 매거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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