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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n 04. 2024

아이들은 빨리 철든다

나의 결혼생활. 8

내 발로 나왔다고 해도 쫓겨났다고 보면 대부분 사실이듯, 우리도 우리발로 나왔지만 집주인이 집 살거 아니면 나가라해서 나왔으니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고등학교 다닐 때 이사를 해야 했다. 교통이 괜찮고, 애들 학교 다니기도 좋고, 와이프 출근하기도 좋고 뭐 이렇게 이유를 달았지만, '월세가 이전보다 싼데, 집은 더 넓어져서'라는게 가장 큰 이유였다.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계속 별로일 거 같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은 빨라졌고, 아이들도 별로 싫어라 말이 없는 거 같았다.


어쩌면 나 혼자 자책감에 '별로네, 애들이 싫어할 거야, 환경도 별로고 다 별로야'라고 했는 지 모르겠다.

나는 집에 쓰레기라도 조금 쌓여 있으면 치고, 부엌 싱크대에 그릇이라도 쌓여있으면 부지런히 치다. 바닥이 지저분해 보이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해댔다. 뭐든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신경쓰이지 않게 부지런히 치워댔다.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아, 여기는 쓰레기 버리려고 해도 귀찮아', 바닥이 지저분해 보여서 '아, 이집은 왜 이렇게 먼지가 쉽게 쌓여',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있으면 '아, 이집은 부엌이 너무 좁아서 뭘 할 수가 없어' 가족들이 이런 말, 이런 생각을 할 까봐 나는 미리미리 부지런히 치워댔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게, '왜 이렇게 뭐가 쌓이는 꼴을 못 , 좀 나중에 해' 이런 말을 했지만, 나의 이런 속마음생각이나 했을까?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 작은 아이까지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저녁을 먹자 했다.

고깃집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려놓고 나는 말했다. '아빠가 5분만 얘기할께'


**이도, **도 둘 다 대학에 잘 가게돼서 아빠는 너무 기뻐.
 아빠는, 엄마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갑작스럽게 사는 곳도, 환경도, 우리집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너희한테 안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
그런데 이렇게 둘 다 대학을 가게 됐으니 정말 고마워.


이런 말을 하는데, 속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게 답하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 생각보다 아이들은 빨리 자라고, 잘 적응한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철이 든다.
 어른들만, 나만 그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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