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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수 May 14. 2024

처음 보는 물건

무언가를 처음 접한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도 재미있지만, '어떻게 먹는 거지?', '무슨 맛일까?'도 그 못지않게 흥분되는 경험이다.
매일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가운데 너무 많은 정보들도 내가 지금 들고 있는 휴대폰 안에서 만들어지고 버려진다. 현대사회의 휘발성 강한 모든 재화와 정보들로 둔감해진 감수성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것이 없는 요즘, 그나마 가장 최근에 내 호기심의 중추를 흥분시켰던 물건에 대한 기억을 말해본다.


1999년쯤

밀레니엄의 시대

해외여행 자유화가 그리고 대충 10년 후, 내가 성인이 되고 몇 년 뒤다.
아무나 해외여행을 갈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땐 그랬다.
내가 처음 샀던 컴퓨터보다 몇천 배 빠르고 용량이 큰 컴퓨터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때를 잊었을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말로만 듣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Y2k(1)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무언가의 호기심이 생긴다면 휴대폰을 꺼내는 것이 아니고 도서관에 가서 종이로 만들어진 큰 백과사전을 찾아봐야 사진한컷 정도 볼 수 있던 시절이다. 


하드코어밴드 멤버였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같은 소속사 동료밴드인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펑크밴드 크라잉너트와 일본오사카에에서의 공연일정으로 처음 해외에 가보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2002년도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이 문화교류가 없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내 생각이지만 해방 후 한국뮤지션으로는 최초의 일본에서 공연을 한 팀이 아닐까? (같이 갔던 크라잉너트는 우리 공연 다음날 일정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우리 팀이 최초 아닐까?)
그만큼 일본공연의 규모가 이전의 내가 경험했던 한국 인디즈밴드의 공연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이야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인 교류나 정보의 전달 속도가 같은 나라처럼 빠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포함한 것이 단절되어 있었다.

일본가수들의 음반을 비롯해 영화도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문화적 수준의 차이가 몇십 년 난다고 하던 시절이라 실제로 일본의 공연문화에 충격을 받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오사카의 특급호텔에 묵었던 멤버들은 호텔에서 제공되는 뷔페식 아침식사를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바로 내가 그 물건을 처음 만난 곳이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조식시간에 여러 가지 음식사이에 단연 돋보였던 그것 바로 "리치(Lychee)"다.


사람들이 접시에 담아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먹는 물건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동물인지 식물인지 열매인지 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이 갔던 우리 멤버들을 포함해 크라잉너트 형들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상상해 보라. 지금이야 모르는 것이 있다면 휴대폰만으로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정보를 알 수 있겠지만 휴대폰 로밍도 자유로이 되지 않던 시절이란 말이다.  


난생처음 본 리치는 너무 신기하게 생겼다. 해물 같기도 하고 뿌리나 과일 같기도 한 모양. 

누군가 먼저 용기 내어 베어 물고, 모두가 따라 입어 넣고 연신 웃음 자아냈던 그날의 기억 

사소한 기억이지만 나는 그날 소리쳤다. 


"야!, 고구마 맛인데!!!" 


한국으로 돌아오고 한동안 못 보던 리치는 서서히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요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꼭 있는 리치는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꼭 그때를 기억하며 한 개씩 씹곤 한다.


고구마맛!!  


*(1) Y2K - 연도를 뜻하는 Year, 숫자 2, 1000을 가리키는 Kilo의 앞 글자를 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세기말의 생활양식을 가리킨다. 원래는 2000년을 앞두고 당시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버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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