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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수 May 14. 2024

아빠의 옛날이야기


내가 마흔 살이 될 무렵 아빠는 또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큰 병으로 몇 번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다 합병증으로 인한 입원이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자식들처럼 나 역시 매일 아빠 옆을 지킬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빠와 같이 보내야 하는 시간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는 아빠,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았지만 나도 아들이 생기고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니 예전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가끔씩 가는 병원이지만 낮에는 엄두도 못 내고 밤에 꾸역꾸역 가서 아빠의 병상 옆 보조 침대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오곤 했다.
의무적으로 옆을 지킬 뿐 부자간에 새로운 대화는 없다.
아빠는 “왔냐?..”, “조심히 들어가라” 정도였고 나는 “나 왔어..”, “또 올게” 정도로 답하는 대화가 고작이다.


언제였던가 여느 때처럼 늦은 밤 병실을 찾아갔다, 그날은 무슨 이유였을까? 바퀴가 달린 수액걸이를 끌고 아빠와 나는 병실을 나왔다.  날씨가 좋아 병원 앞 화단에 둘이 쪼그리고 앉았다.  한참을 앉아 있던 아빠는 회사 다닐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40년 동안 아빠랑 살면서 모두 그동안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재미있었다.
어릴 적부터는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를 반복했었던 아빠인데 이번얘기들은 하나같이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다.  수십 년 동안 아빠의 머릿속에 파편화돼 있던 장면들은 아빠가 아들에게 해주는 신선한 이야기로 조립되고 있는 것이다.
아빠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며 듣는 나도 재미있었지만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아빠도 그동안 쌓인 갈증을 해소하듯 신이 난 얼굴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우린 다시 병실로 돌아왔고, 아침이 되어 엄마가 왔다.
“또 올게!”
나는 병실을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아빠는 돌아가셨다. 

나는 아들이 생긴 뒤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제일 중요했었는데 아빠도 그랬을 거라는 걸 이제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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