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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수 May 14. 2024

여섯 대 반 왕복 싸대기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난 학군 좋다는 서울 목동의 사립 중학교를 다녔었다.
90년대 초반에 중학교는 지금은 모두 금지된 선생님들의 체벌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체벌이라기보다 구타라는 단어가 맞을 정도의 선생님으로부터의 폭력이 매일 있었다. 선생님들은 각자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다녔다. 종류도 다양했다. 당구 채부터 단소까지 그중 가장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기는 단연 하키 스틱이었다.

 

하키 스틱을 잡는 손잡이 부분부터 아래로 약 70~80cm 정도를 잘라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바로 옆이 아이스링크가 있었기 때문에 하키 스틱을 구하기 쉬웠다는 아주 신빙성 있는 소문이 있었다.
하키 스틱으로 허벅지를 맞으면 코피가 난다. 징그럽게 표현한다면 그대로 허벅지에 짝짝 붙는다.
굉장히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들은 체벌을 위한 줄을 교실 끝까지 서서 기다린다.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 전까지 다른 친구들이 맞는 자세, 반응 등을 보는 것도 꾀나 색다른 경험이다.
난 비교적 잘 맞는 편이었다. 미동 없이 열 대건 스무 대건 칠판을 잡고 잘도 버텼다. 내 차례가 끝나고 칠판에서 손을 떼면 뜨거워진 허벅지에서 서서히 없어지는 고통을 즐긴다. ‘끝났다, 휴…’
하루에도 여러 명의 선생님들에게 이곳저곳을 맞으면서 학창 시절을 보낸다. 온몸의 피멍자국들이 없어질 틈 없이 또 하루를 맞이한다.

매주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가는 목욕탕에서 시커멓게 피멍이든 내 허벅지를 보고 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또 뭘 잘 못했는데 처맞고 다니냐? 이 새끼야”
한마디를 뱉으시고 짧은 웃음을 끝으로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
왜 맞았는지 이유는 기억에도 없고 목욕탕에 있는 또래 아이들의 허벅지엔 나랑 같은 멍 자국이 있는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나는 날이 있다.
전교에서 제일 무서운 음악 선생님의 수업 시간
음악 시간 전 쉬는 시간에는 모든 학생들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책상에 앉아 있다.

 

매일같이 두드려 맞다 보면 진짜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심 어린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선생님이 음악실 문의 열고 들어오신다.
반장의 차려, 열중쉬어, 선생님께 경례라는 구령에 인사를 하기 직전 교복외투의 단추를 잠그려고 고개를 숙였다.. 걸린 것이다.

내 옆에 단짝 친구 대성이와 함께 불려 나갔다. 반장의 구령에 고개를 숙였다는 이유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걸려서 나온 이상 최대한 싸게 잘 맞고 들어오는 것이 상책이다.
대성이 먼저 왕복 싸다구를 맞는다..

짝짝짝짝짝짝

‘다행히 오늘은 싸다구나,’ 싸다구는 껌이다.

대성이의 싸다구가 끝나고 선생님의 손이 내 턱을 움켜쥔다.

짝짝짝짝짝짝짝

본능적으로 싸다구의 수를 센다.

‘어,… 대성이보다.. 내가 한 대 더 맞았는데…어.. 왜 지?’를 생각하는 찰나

“푸,,,,,풉풉,,, 퐈…” 대성이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 새끼도 내가 한 대 더 맞은 걸 안 것이다.

나도 모르게 … 나도

“푸 훕…..”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분위기에서 터진 두 명의 웃음.

음악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흘러나온 두 명의 웃음.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선생님에게 싸다구를 맞으면서 터진 두 명의 웃음.

‘아 이제 죽었구나…’

소리 내어 웃었음에도 절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있었다.

“….”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리 상상해 봐도 모르겠다.

‘주먹일까? 하키스틱일까? 발로 차일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새끼들이 웃어?”

음악실에 그 차가운 공기와 함께 정적이 흐른다.

“여러분, 이 새끼들 봐요.. 맞을 때는 이렇게 맞아 야돼! 너 이 새끼들 이름 뭐야?”

“여러분 박수 한번 쳐주세요.”

짝,짝,짝,짝,짝,.. 같은 반 학생들이 치는 박수는 축하도 아니며 환호도 아니다.

그들도 살기 위해 치는 박수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끝나고

내가 나가서 맞은 이유부터 왜 박수로 끝이 난 것인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어지는 체벌 없이 내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이제 학교에서 절대 그 무엇을 못하지도 잘하지도 말자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지내려고 결심했다.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다. 졸업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 것이다.

미친 이대성 새끼 잘 지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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