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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타명리 Jun 14. 2024

둘 중 어떤 남자를 선택해야 할까?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는 삶 VS 내 선택을 책임지는 삶


삶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길 원합니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우리의 삶이 달라졌을까? 누구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다른 상대를 선택했더라면, 만약 내가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만약 과거에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고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한 결정과 망설이며 포기했던 선택을 비교하여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운명은 선택이 좌우하는 듯 보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는 결정의 결과를 매번 수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더 나은 선택이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는 나를 건져 올리는 선택, 한없이 게을러지는 나를 독려하는 선택, 조금 더 건강한 음식을 먹는 선택 등, 찰나의 나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노력이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누적된다면 결국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선택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으키는 노력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명리학은 흔히 알려진 대로 이미 정해진 미래를 예언하는 주술적인 학문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명리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 것입니다. 명리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나와 타인, 외부 환경과의 작용) 해상도를 높이는 학문입니다. ‘사탕을 많이 먹으면 이가 썩는다’와 같은 당연한 인과처럼, 기질적으로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사람은 과감한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언뜻 명리학이 말하는 미래는 정해진 미래를 예견하는 주술적 의미처럼 보이지만, 이는 명주의 기질이 외부(타인, 환경)와 작용하는 당연한 인과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대운(외부 상황)은 명주의 타고난 기질과 작용하며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로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행운 혹은 불운한 상황과 마주합니다. 이는 나의 타고난 기질과 외부 환경이 작용하는 현상입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부와 작용하며(타인, 상황)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의 인과를 미리 따져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선택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우리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나의 타고난 기질이 외부와 작용하는 인과의 주체는 내가 될 수 있습니다. 타고난 팔자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는 타고 난 8개의 글자(타고난 기질)가 바뀌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는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바뀌지 않는 타고난 기질을 활용하여 타인과의 상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발생할 수 있는 인과를 이해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타고난 기질을 이해하고) 타인의 기질을 이해할 수 있다면, 자기중심적 해석에서 벗어나 타인과 내가 작용하는 인과를 이해하고 나아가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떤 남자를 선택해야 할까? 라며 상대의 조건을 이리저리 저울질해 보는 여성과 “나는 00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과 결혼하면 00한 삶, 이 사람과 결혼하면 00한 삶을 살겠지?” 라며, 여러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인과를 꼼꼼하게 따져 볼 수 있는 여성이 선택한 삶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두 여성 모두 선택에 따르는 결과치를 감당하며 살겠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고통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전자는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에 고통받지만, 후자는 내가 한 결정의 인과를 수용하고, 나의 주체적 선택이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내가 선택한 결과를 그저 수습하며 살아가야만 하지만, 나의 기질과 타인과의 관계성을 이해한다면, 선택의 흥망과 무관하게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은 촘촘히 이어진 무한대의 고리처럼 이어저 점진적으로 내 삶의 방향성을 바꾸어갑니다. 이는 용신운이 명주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발복 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나의 선택이 다음 선택과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매번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닌, 진정 나에게 어울리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기꺼이 감당해 나가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명리학을 통해 나와 세상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고, 내가 선택한 삶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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