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女命의 관성의 의미와 세대별 사랑의 정의
영화 도둑들은 고가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들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이자, 생존을 위해 재화를 빼앗고 빼앗기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단면을 풍자한 작품이다. 인간의 자본을 향한 본질적 욕망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도둑들"을 통해, 자본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와 함께 변모하는 여성상의 변화를 살펴보자.
영화 도둑들에 등장하는 10명의 도둑 중, 4명은 여자이다. 씹던 껌(김해숙 분), 펩시(김혜수 분), 줄리(이심결 분), 예니콜(전지현 분). 씹던 껌은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이며, 가부장 세대의 여성을 상징한다. 그녀는 3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으며, 자녀마저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녀는 가부장 세대의 여성들 중'박복한 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녀는 마카오에서 함께 일본인 부부를 연기했던 첸(임달화 분)과 사랑에 빠진다. 첸은 영화의 메인 캐릭터인 마카오박(김윤석 분)의 아버지와 동료였다는 점에서 역시 아버지(가부장) 세대의 남성을 상징한다.
씹던 껌과 첸의 사랑을 통해 가부장제에서 사랑이 작동하는 원리를 살펴보자.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으라' 라며 씹던 껌을 안심시키는 첸은 여성을 책임지고 지켜주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이며, 첸의 태도는 가부장제도의 관성(남성)의 역할을 상징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가부장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의 절대적인 보호자로 기능한다. 남성은 여성을 마치 재물을 취하듯 소유(재성)하고 갖춘 권력(관성)을 이용하여 가정과 아이를 지켜야 한다. 생존을 위해 재화를 쟁취해야 하는 과정에서 남성에게 관성은 국가(군주)와 상위 권력자이다. 국가와 상위 권력자에게 충성함으로써, 조직의 보호를 받아 가정을 지켜내는 원리이다. 여성은 사회진출이 불가능한 시대였으니, 여성에게 관성은 오직 남편을 상징했다.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존재가 오직 남성이었던 것이다.
씹던 껌은 10명의 도둑 중 유일하게 훔치는 능동적 기술을 갖추지 못한 여성 캐릭터이다. 그녀는 펩시나 줄리처럼 금고를 여는 전문기술이나 예니콜처럼 빼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한 침투기술이 없다. 가부장제도의 여성을 상징하는 씹던 껌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관성)인 첸을 강하게 이상화하며 사랑에 빠진다. 첸은 지켜야 하는 목표(재성)에 해당하는 여성(재성)을 목숨 걸고 지키려 한다.
씹던 껌 : 첸, 잘했어요. 사랑해요.
첸 :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줘.
씹던 껌 : 사랑한다고. 당신 정말 멋있었어.
첸 : 미안해. (쓰러진다)
씹던 껌 : 아니에요. 내가 꿈을 잘 못 샀어요.
첸은 끝까지 여성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숨을 거두었고 씹던 껌은 첸을 원망하지 않는다. 가부장세대의 사랑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여성은 생존을 위해 보호막 역할을 하는 남성의 가치를 극도로 이상화해야 버틸 수 있었으며, 이는 상대 남성의 정체성, 특질과는 무관했다. 남성은 유일체인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정의 울타리 역할로만 기능했으며, 여성은 보호자로서의 남성의 역할을 우상화한다. 가부장세대의 사랑은 온전한 개인이 아닌 생존을 위해 역할을 연기하고 역할과 사랑에 빠지던 역할극의 시대였다.
반면 펩시, 줄리, 예니콜은 독자적인 생존 기술을 갖춘 현대의 여성을 상징한다. 펩시는 남성을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씹던 껌과 동일하지만, 남성이 생존을 보장하는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펩시는 독자적인 생존기술을 갖춘 여성으로 남성의 기준은 '신뢰할 수 있는 이상화된 존재'이다.
펩시 : 책임져.
마카오박 : 무슨 책임?
펩시 : 여자마음을 흔든 책임.
마카오박 : 푸하하~ 흔들린 사람이 멈춰야지.
펩시에게 책임의 의미는 가부장제도에서와 달리 생존을 책임지고 보호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상대(남성)에게 보내는 신뢰(애정)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는 의미이다. 생존을 위해 남성의 역할을 우상화한 씹던 껌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위해 목숨도 건다. 반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팹시는 동등한 인격체로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남성을 선택하는 가장 중대한 가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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