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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타명리 Jul 29. 2024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에게) 사주는 없다.

사주는 없다 /이재인 책 서평 part -1


사주는 없다/이재인


이재인 선생님의 '사주는 없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요점은 “저자가 7~8년 사주를 공부해 보니 맞지 않아(적중률이 높지 않아), 고서를 포함한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뒷받침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 고로 사주는 없다(틀렸다)."가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 저는 이재인 선생님의 저서가 널리 읽히길 바랍니다. 이후 저는 왜 그의 저서가 널리 읽혀야 하는지에 대하여 합당한 근거를 제시할 것이며, 이는 적어도 명징한 근거(참과 거짓의 구분)에 입각한 논리이므로, 앞으로 저의 글을 읽는 분들은 언뜻 저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 밝혀두지만, 저의 주장은 주관적 주장일 뿐, 참과 거짓의 범주가 아니며, 비록 저의 주장들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하여도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판단과 해석일 것이며, 저의 주장은 명리학의 존폐여부를 결정하지 못할 것입니디. 또한,그리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연구하는 이론(학문)의 존폐를 결정할 전능한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울림과 떨림/김상욱


"1986년에는 아주 높은 온도에서도 특정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것은 기존의 초전도 이론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데, 이를 고온 초전도라 부른다. 이 현상의 발견자들에게는 1987년 노벨물리학상이 주어졌지만, 아직 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고온 초전도야말로 응집물리 분야의 성배라 할 만하다."'


- 울림과 떨림 P205, 김상욱


발췌는 김상욱 교수님의 저서 “울림과 떨림”의 일부분입니다. 실험을 통한 실증적인 증명만을 인정하는 과학에서 조차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을 '없다' 혹은 '틀렸다’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과학자가 수학을 도구로 명징한 이론을 도출하는 목적이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실험과 논리로 증명(알기)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우주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 전제를 근간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이 우주(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알 수 없기에, 현재 인간이 알아낸 상태만을 우리가 알고 있다(모르는 것이 존재한다)”라고 현 상태를 정의 내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함을 인정하는 자세가 학자가 앎을 위해 나아가는 결정적 동력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재인 선생님의 주장대로라면 고온 초전도의 이론이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고온 초전도이론(물리학)은 틀린(없는) 이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주명리학의 이론 체계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사주 여덟 글자에서 월지와 시지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글자는 자연의 기운과 무관하므로 음양오행을 가질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사주 여덟 글자의 간지를 모두 음양오행으로 해석하는 이론 체계는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 사주는 없다 P12



월지와 시지를 제외한 여섯 글자 60간지를 부여한 고대인의 의도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의도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명리학이 자연의 기운과 무관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무엇보다 명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월지와 시지는 자연의 기운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월지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궤도를 24등분 한 것이고, 시지는 지구의 자전 궤도를 12등분 한 것입니다. 이는 지구 생명체의 생명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태양의 일조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午) 월은 낮이 가장 길어 일조량이 가장 많은 시기를, 자(子) 월은 낮이 가장 짧아 일조량이 가장 적은 시기를 의미합니다. 태양 에너지는 지구의 생명체에게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자연의 기운입니다. 사주는 자연의 기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다만 일지와 시지를 제외한 다른 글자의 원리를 아직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모두 알고 있으나, 태양 에너지가 생명체에 끼치는 영향력에 관하여 아래 김상욱 교수님(서양적 사고)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인간과 같은 동물은 포도당을 합성하지 못한다. 그것은 식물의 몫이다.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화학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분해하여 당으로 재조립한다. 광합성이야 말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지탱하는 화학반응이다. 포도당이 산소와 결합하여 에너지를 내놓는다는 것은, 거꾸로 포도당을 만들 때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에너지 보존법칙 때문이다. 식물이 에너지를 창조해 내는 것은 아니고 태양에서 그 에너지를 얻는다. 정확히는 태양빛으로 물을 분해하여 얻은 수소를 이용하는데, 산소는 부산물로 그냥 내다 버린다. 결국 동물은 포도당과 산소 모두를 식물에게서 얻는 셈이다." 울림과 떨림 248~249 김상욱



"그러나 어떤 사주명리 책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책을 보아도 "~하다, ~이다" 등의 단언, 성경 창세기를 방불케 하는 단언의 나열이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자명하지 않은데, 모든 이론이 마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었다."  P8 '사주는 없다'



명리학 이론서들이 근거나 논리적 귀결 없이 "~하다. ~이다."로 쓰여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유독 명리학뿐 아니라, 논어, 주자학 등의 대다수 동양의 학문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특징입니다. 이분법적 분별로 논증과 증명을 중시하는 서양의 학문과 달리, 동양의 학문은 은유를 바탕으로 통찰과 깨달음을 중시합니다.



수영을 배울 때 부력 유지에 필요한 발차기 속도를 가르치는 것이 서양이라면, '수영을 하려면 몸에 힘을 빼라'라고 가르치는 것이 동양입니다. 이는 실제 수영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수영을 빗대어 삶의 여러 통찰을 전달하려는 통합적 시도입니다. 동양의 학문은 실제 오랜 세월 직접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수영을 배울 때는 힘을 빼라는 말이 전혀 와닿지 않지만, 수영에 능숙해지면 비로소 '힘을 뺀다'는 말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학문은 수학공식이나 암기 과목처럼 외우기만 하거나,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가치로 분별만 해서는 절대 숨겨진 참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랜 세월의 간극을 두고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전히 그러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생의 규칙성 자체를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굳이 왕정상이나 서북관 같은 학자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얼마든지 다양한 의문을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쇠를 맞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금생화(金生火)의 경우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데 토생수(土生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P100



오행의 (행:行)은 가거나, 오는 것이 아니라 '(돌아) 다닌다', '순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돈(銀)이 순환하는 곳을 은행(銀行), 수출입 물품이 바다(洋)를 가로질러 순환하는 곳을 양행(洋行: 무역회사의 옛 이름)이라 합니다. 오행은 에너지가 물질로, 물질이 다시 에너지로 순환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추상적 개념입니다. 목(木)은 중력(土)을 거스르는 용출력과 운동에너지의 특성을, 화(火)는 산개하여 주변으로 열을 전달하는 열(빛) 에너지의 특성을, 금(金)은 흩어진 분자들을 결집, 응축하는 특성을, 수(水)는 주변 지형과 기온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물질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토는 에너지가 용출하여 산개하는 목화의 과정과, 응축하고 결집하여 물질을 구성하는 금수의 과정에 개입하는 완충 및 매개(媒介) 역할을 합니다. 흩어진 것(목화)이 다시 결집하는 과정(금수)에 중력의 특성을 가진 토(土)가 개입하는 것입니다. 오행(五行)이라는 개념은 수천 년 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어렴풋이 깨달은 동양의 현자들이 현상을 관찰하여 사유한 결과일 것입니다.


서양적 사고에 익숙한 분들에게 실제 물리적 현상에 대입하여 이를 설명드리면, 물에 열을 가하면 물 분자 사이의 결속력을 끊고 진동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운동에너지가 목(木)이라면, 기화된 물 분자가 강한 진동을 일으키며 주변으로 산개해서 열을 전달하는 것이 화(火)입니다. 대기 중에 떠도는 물 분자가 다시 결속하기 위해서는 질량(중력)을 가진 물질의 핵(核), 혹은 구심점 역할이 필요합니다. 대기 중에 떠도는 미세먼지나 그을음 등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요. 중력을 갖추어 주변에 흩어진 물 분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토(土)입니다. 물 분자가 물방울로 응결하기 위해서는 이슬점까지 기온이 내려가야 합니다. 기온을 낮춰 물 분자가 서로 응집하게 하는 것이 금(金)입니다. 물은 물질로서 중력에 순응하여 아래로 흐르고 스며들며, 기온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로 모습을 변화합니다 이것이 수(水)의 특성입니다. 당시에는 에너지나 물질과 같은 분류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이를 서양의 물리학처럼 증명을 통해 명징하게 설명할 방법도 없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양은 사람들의 깨달음을 위해 상징이나 은유를 활용합니다. 목화토금수라는 물질의 상(像)은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려는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집중해야 하는 것은 목화토금수라는 물질의 이미지(物像)가 가진 특징과 그들이 순환하는 원리이지, 실제 나무와 쇳덩이의 경도를 측정하여 무엇이 더 단단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재인 선생님처럼 동양의 학문(추상적 개념)을 서양인 사고로 판단하고 대입하면 이와 같이 외부 현상에 대한 깨달음(통찰)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현답이 있어 인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사과 두 개와 사과 세 개를 더하면, 사과 다섯 개가 된다. 이것을 산수로는 "2+3=5"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2+3=5"라는 등식이 옳다는 것을 사과를 더해서 알게 되었다고 해서 "2+3=5"라는 수학적 등식의 특성이 사과의 특성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과 대신 배 또는 감을 썼어도 결과는 똑같다. 수학적 등식이 가진 수리적, 논리적 특성은 그것을 파악하는 데 사용한 도구의 특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마찬가지로 정신계와 우리 언어세계의 특성이 비록 물질계의 일부인 뇌세포의 작용을 통해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물질계의 특성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이유가 없다."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홍창성 지음-



"그렇게 사주 공부에 심취하여 7~8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50대 초반 남자의 사주를 보게 되었다. 일지가 용신인 사주였다. 배우자를 가리키는 일지가 용신이고 정인(正印)이니 헌신적인 부인을 만나 내조를 받으며 행복해야 할 사주였다. 그렇게 풀이했더니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사정을 털어놓으며 몇 년 전에 이혼했다고 한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당황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 보았길래 사주와 실제 삶이 이렇게 다른 것일까? 마침 그가 기억하고 있어서 이혼한 부인의 사주도 보았는데 부부의 일간이 상생이니 궁합도 좋았다. 그런데 왜 이 부부는 왜 이혼을 했을까? 사주 풀이의 적중 여부는 내 실력과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론이나 신살 따위의 잡다한 것들을 동원해서 꿰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 무렵부터 나는 사주 여덟 글자와 삶의 인과적 연관성, 사주 이론 자체의 합리적 근거 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주는 없다' P8


일지가 정인인 경우는 갑자, 을해, 무오, 기사 4개의 간지입니다. 이들 중에서 이재인 선생님께서 상담하신 내담자의 명식을 을해 일주로 가정하겠습니다.

일지 해(亥)중 임(壬) 수가 용신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관살(정관, 편관)이 무겁고 신약 하여 정인의 생(生)이 필요한 경우(殺重用印)

2. 상관의 세력이 강하여 정인의 제어가 필요한 경우(傷官佩印)

3. 재성이 강하고 신약 한데 인성의 보좌가 있는 경우(財格佩印)

*비겁이나 인성이 강한 사주는 인성을 용신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경우의 수에서 제외하겠습니다.


3번의 경우로 가정하여 왜 이와 같은 판단이 필연적인 오류를 동반할 수 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해수 정인 근처에 미토, 무토, 술토와 같은 재성이 있으면, 배우자궁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재격패인 사주는 인성과 재성의 거리가 멀어야 인성이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두 번째로 지지에 묘목이 있어 해수를 합(해묘합)으로 묶어 일지가 무력하면 배우자궁이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화 식신이 있어 충(사해충)이 있어도 그렇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글자들이 운으로 와도 안정된 결혼 생활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지 용신(배우자궁) = 행복한 결혼생활'은 궁성론에 의거한  너무 단순한 판단입니다. 이를 반증할 사례는 유명인들 중에서도 매우 쉽게 발견되며, 제가 보유한 임상자료 및 설문자료로 이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간이 상생(相生)이므로, 궁합이 좋다는 이론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궁합을 보는 방식은 일지, 월지간 상성, 일간합, 용신에 해당하는 상대방의 오행발달, 나에게 부족한 사회성(십신)의 유무 등 종합적 판단과 분석이 필요한 매우 정교한 작업입니다. 일간이 생관계인 부부가 이혼하는 사례나, 일간이 극관계인 부부가 잘 사는 사례는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또한 자료를 요청하신다면, 제가 보유한 임상자료(회원 설문 조사로 직접 수집한) 및 통계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시로 든 궁성론과 궁합 이론은 7~8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공부한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명리학을 포기하게 된 계기로 삼기에는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너무 높은 이론들입니다. 무엇보다 이재인 선생님의 주장의 근거는 본인의 명식 분석 방법이 100% 참(true) 임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배우자와의 상성을 유추하는 방법은 매우 정교한 작업이며, 이는 단순히 일지 용신여부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저서에서 선생님께서는 이와 같이 본인의 사주 분석 방법을 100% 확신함을 전제로 사주 이론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는 말씀대로 다양한 분석 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를 임의로 설정하여 이에 대해서는 전혀 의구심을 품지 않는 오류를 범합니다. 나의 판단과 분석이 100% 정확하다는 확신을 근간으로 분석결과(명리학 이론)와 명주의 실제 상황이 맞지 않아 명리학이 오류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특정 분석방법에 대한 오류를 제시하려면, 사주를 공개하고 어떤 이론을 근간으로 분석하였는지를 밝혀 그 이유를 함께 연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초에 저자의 의구심은 본인의 사주분석 방식에 전혀 오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므로, 그의 주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양상윤은 자신의 저서 '명략본기'에서 사주풀이의 적중률은 60~70라고 말한다. 중국의 명리학자 육치극은 양상윤의 말에 동의하면서, 그러한 확률도 "인과적 연관성을 보증하거나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과적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그것이 점술이라는 뜻이다. 지난 천여 년 동안 사주명리학 또는 역술가들은 합리적 근거를 밝히지 못했고, 사주풀이의 적중률도 높이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사주와 실제 삶이 다른 이유, 그리고 동일 사주인데도 서로 삶이 다른 이유를 여러 가지 나열하지만, 그것은 자승자박이다. 그 이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주로 삶을 알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P60 '사주는 없다'


명리학의 이해


양상윤은 명리학이 100%의 적중률을 보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학자입니다. "대가들은 반드시 명리가 본래 100퍼센트의 정확성이 없음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기이한지를 말한다면….이는 바로 양심에 위배되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말이다. 명리는 대략 60~70퍼센트의 확률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명리학의 이해1, P41)

반면, 다음 페이지에 명시한 곽요종은 실제 명리학의 적중률을 실험한 학자입니다. 곽요종은 한단 지역의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325명의 사주를 보고 10가지 항목을 의무적으로 예측하여 사주명리학의 정확도를 측정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가장 높은 적중률을 보인 항목은 90%, 가장 낮은 적중률을 보인 항목은 66%였으며, 10개 항목 평균은 75.1%의 적중률을 보였습니다. (명리학의 이해1, P42


이재인 선생님께서는 양상윤이 비판적인 논조로 이야기한 적중률 60~70퍼센트의 추정치는 언급하셨지만(P41), 다음 페이지(P42)에 곽요종이 실제 실험을 통해 적중률 75퍼센트를 기록한 구체적 데이터는 외면하셨습니다. 이는 저자가 단순히 5~15% 높은 결과치가 있음에도 이를 명시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상윤의 논조는 사주가 100% 맞는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비판하며 평균치(60~70%)를 추정하여 제시한 것이고, 이후 곽요종은 적중률에 관해 실제 조사를 실시한 학자입니다. 실증적인 데이터와 근거를 중시하시는 이재인 선생님께서 왜 실증적인 조사 결과를 언급하지 않고, 사주 맹신론자를 비판하는 양상윤의 사례만을 적중률의 근거로 제시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만약 오랜 세월동안 70%의 적중률을 보이는 특정 현상이 있다면, 100%가 아니니 틀렸다가 아닌, 왜 특정 현상이 70%의 적중률을 보이지는지에 대해 조사해야 하는것이 학자의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는 내가 모르는 사실을 없다고 단정하거나, 100%가 아니면 틀렸다고 단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고 있는것들을 인정하고 더 알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루즈지는 "이러한 관계는 통계학적 묘사, 즉 확률적으로 나타난 상관성에 불과하다. 우리는 당연히 통계적 상관성 그 자체가 인과적 연관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명확히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상관성이 인과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동물이 인간임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또한 루주지가 말한 '보증하지 않는다'와 이재인 선생님이 언급한 '인과적 연관성이 없다'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모든 동물이 인간은 아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재인 선생님께서는 '증명되지 않은 것'은 ‘곧 없다'로 해석합니다. 사주팔자는 생극관계가 명확하게 표시된 도식표입니다. 따라서 도식표와 실제 삶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된다는 의미는, 100% 정확한 산출값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주팔자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프로그램이 인간보다 더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으므로, 역술가라는 직업도 사라질 것입니다. 인과적 연관성이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모든 이론이 점술이라면, 아직 초끈이론을 증명하지 못한 양자 물리학도 점술에 포함해야 합니다. 이어 왜 저자가 운명론자이며, 운명론에 대한 맹신이 어떠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기술해 보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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