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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을라 Jul 25. 2024

비바람ㆍ침에 관한 짧은 수필

“나는 원래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다.”

    7월 25일. 김성수 선생님의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을 읽던 중이었다. 일어나서부터 책을 읽어 왔던 탓에, 덜컥 산책 욕심이 났다. 이왕이면 가까운 강변이 좋겠다는 생각이 연이었다.     





    저녁 8시쯤이었을 것이다. 가양나들목을 통해 강변으로 들어갔다. 여름철에는 비가 곧잘 내린다. 미리 일기예보를 보니, 밤 10시부터 비가 내리기로 한다.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쪽으로 쭉 뛰어가는데, 나 말고도 사람들이 많다.     


    가는 길 저편 하늘에서도 번쩍번쩍 번개가 빈번했다. 나의 시계를 보면서, 무시하기로 한다.     


    비는 10시가 안 되어서 내렸다. 처음에는 살갗을 똑똑 두드리는 약한 빗방울이었다. 느끼기에 1분도 안 되어 거세졌다. 바람이 세찼다. 빗방울도 그 기세를 입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다리며, 막(幕)의 밑으로 모여들었으나, 바람을 탄 비는 아랑곳 않고 옆구리를 밀고 들어왔다. 이미 허벅지 아래로 젖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나는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휴대전화나 보면서 영어 문장을 마디 정도 소리 내어 읽다가, 비가 그칠 낌새가 없음을 알아챈다. 강 건너는 현란한 분무로 보이지 않고, 강물이 정신없이 일렁인다. 저 너머의 문제이었던 번개는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번쩍인다. 고로, 나는 긴 거리를 비를 맞으며 되돌아가기로 한다.     


    숨기지 않고 나를 드러내니 차라리 기뻤다. 비를 맞으며 뛰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았다. 나는 스무 살 때처럼 신이 났다. 어두운 밤은 조명이 있어도 물웅덩이의 깊이를 알 수 없게 꾸몄다. 밟은 곳이 발목까지 쑥 빠지는 웅덩이였던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청난 비였다. 나의 땀이며, 한강변을 오가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의 고운 입자들이 빗방울에 섞여 내 입까지 들어왔다. 짭짤하디 쓴 맛이 났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옷가지는 몸에 들러붙었다. 숨이 가쁜 나머지 숨을 고르려 돌아오는 길목에 침을 뱉었다. 침을 뱉은 수는 모두 번이었다.     




    나는 원래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다.     


    오는 도중에 비가 그쳤다. 거짓말 같았다. 다시 맑아진 강의 하늘. 저편 네온사인들이 현란했다. 터벅터벅 가양나들목 터널로 다시 돌아온다. 젖은 땅을 힘껏 밀어내느라 발이 아프다. 걷는 내내 발가락 사이사이로 내 몸무게만큼 빗물들이 오르내렸다. 아마, 불어 텄을 것이다. 왼쪽 발가락이 아프다. 끄트머리에 물집이 잡혔을 게 분명하다. 원체 물집이 잘 생기는 곳이다. 집에 돌아가 끝이 예리한 칼골라 촛불에 지지고, 터뜨려야지. 쓰라릴 것이다. 그래서 연고를 바를 작정이다.     


    터널은 외롭다. 터널은 원래 좁고 긴 곳이다. 세계와 세계의 통로이다. 야스나리 선생도 비슷하게 말했다. 나밖에 없는 곳. 나는 지쳐서 신발을 살피려 내 시선이 내려간다. 나의 양 무릎에 하얀 것이 들러붙어 있다. 하얀 나방이라도 될까 싶다.



    놀라웠다. 번 내뱉은 침 중 번의 침이 바람을 타고 내 무릎으로,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 왔음을 깨달았다. 내가 내보냈으나 결국 내가 되받게 된 것들. 거, 참! 나는 원래, ‘문화시민(文化市民)’인 척…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다.     


    내가 뱉은 침이―그러니까, 내가 그 세 번 침을 뱉을 때에는―큰 비바람에 숨겨져 강물로 쓸려가고, 따라서 없던 일이 될 줄로 내심 기대했건만… 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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