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 밸런스

스포츠와 워라밸

체육 수업에서 팀 간 경기는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고, 같은 팀끼리 협력하여 승리하는 경험도 갖도록 한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팀 간 경쟁 종목이 있는 이유도 우리가 스포츠를 즐기고 경험하는 방식이 그렇게 대개 비슷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팀이 필요하고, 같은 목적으로 경쟁하는 상대팀이 있다. 그 안에서 발휘하는 팀의 역량과 게임 전략의 다채로움이 우리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이 발야구를 하거나 핸드볼을 하게 되면 팀을 짜는 것부터 시작이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 내겐 이골이 나는 일인데도 매번 아이들의 의견과 원성을 받는 건 썩 번거롭다. 아이들 머릿속엔 이미 누구랑 누구랑 같은 편이 되면 너무 유리하다, 불리하다 판단이 서버리기 때문에 그걸 의식해 가며 적당히 내가 나눠서 팀을 짜주곤 한다.

체육 잘하는 두 명이 가위바위보로 각자 팀원을 골라 가져가는 방식도 있으나 잘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남겨지는 후순위 선수의 멘털 케어를 위해서랄까. 아이들끼리 눈치 보고 원망을 하게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체육 교사가 팀 밸런스의 책임 소재를 지는 게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른 적당히 팀을 갈라준 뒤 100% 마음에 안 들어도 받아들여야지, 하는 수긍하는 태도도 수업에서 가르쳐야 하는 덕목이다.

적당히 나뉜 팀으로 경기를 하다가도 점수 차이가 나자마자 팀의 밸런스를 다시 언급하는 아이들도 있다. "밸런스가 안 맞아요", 딱 이렇게 말한다. 그럼 나는 "이제 시작이야. 계속해 봐."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실제 경기의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발야구의 경우 1회 초 원 아웃에서부터 이런 얘기를 해버리니 결과를 예단하고 탓을 하려는 것도 버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엎치락뒤치락 점수 차가 벌어졌다 좁혀졌다 뒤집혔다 하는 경기가 가장 재미있겠지만 어디 그런 경기만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결과가 어떻든 과정을 즐기며 체육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라고 말한다. 수업하는 반마다 차이는 있지만 1년 내내 꾸준히 언급해 줘야 그놈의 밸런스 얘기가 좀 덜 나온다.

'워라밸 work-life balance', 어느 때부터인가 등장해서 우리의 사고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한 용어다. 일과 삶의 균형. 그 말 뜻에는 일에만 치중된 인생을 살지 말고 일은 따로, 그리고 일이 아닌 삶을 풍족하게 즐기며 사는 게 좋지 않냐는 가치 판단이 담겨 있다. 나도 말하자면 워라밸을 중시하는 편이다. 교사의 삶은 그래도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생존을 걸고 일해야 하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에 라이프의 밸런스는 그나마 담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는 '워라밸'은 일종의 환상에 가깝다는 생각을 품는다. 일은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으나 라이프는 그것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엔 일론 머스크 같은 워커홀릭도 있을 테고, 일은 다 해서 놀기만 한다는 파이어족도 있을 것이다. 퇴근을 하고도 배달 일을 하고 대리운전을 뛰는 사람도 있을 테고, 퇴근을 하고 카페에서 글을 쓰며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수많은 삶의 24시간을 분절해서 워라밸을 논하는 것은 불분명한 미시 레벨에서부터 우리 삶을 두고 일쪽에 치중되네, 삶 쪽에 치중되네, 하는 섣부른 예단일 수 있다. 삶은 연속성 있는 과정이고 어느 누구도 미래를 확언할 수 없는 불분명한 경로를 각자의 걸음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근로시간을 논하는 데엔 워라밸이 의미 있겠지만 개인의 삶의 의미와 행적을 따지는 데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보다는 지금 하는 '일'이 내 삶에 부합하는지, 지속해 나갈 원동력이 자신의 내부에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에 이기면 기분 좋지만 그게 스포츠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체육 그 자체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라고 늘 얘기한다. 경기에서 질까 봐 시작부터 밸런스를 찾지만, 그러면 즐거움으로부터 더 멀어질 뿐이다. 늘 승패라는 가상의 개념에 우리의 감정마저 내던지곤 하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은 각자가 다르다. 균형 감각은 삶에 꼭 필요하지만 균형이 목표가 될 순 없다. 남들이 보기에 기울어 쓰러지는 것 같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본인만 아는 일이다. 내적 밸런스를 잃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50 대 50의 경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spor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