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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콤플렉스 사용설명서

긴 줄 끝에서 콤플렉스 느끼지말고 돌아서라, 돌아서면 네가 일등이다

  ‘위대한 콤플렉스’란 말이 있다.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극복하려 노력하다보니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폴레옹이 작은 키를 극복하려 노력하다 영웅이 되었듯이. ‘콤플렉스 사용설명서’는 한마디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급기야 사랑해버리면 된다. 스스로 디스(self dis)하면 세상이 유쾌하고 농담처럼 멋있어진다.


  -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코미디언 이주일은 이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을 쥐락펴락하다 떠났다. 못 생겨서 죄송하다는 사람이 폐암이 걸려 모습이 망가지기 전까지 그 누구보다 멋있게 늙었다.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뛰어 넘어 사랑한 사람이다.


  콤플렉스를 뛰어넘은 사람은 멋있게 늙는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 아무리 예쁜 여자도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경직되고 강파르고 고약하게 늙어간다. 내면이 얼굴에 지문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는 끝임 없이 거짓말을 한다. 자신을 합리화시켜야 하므로.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는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사과할 줄 모르고, 남을 칭찬할 줄 모르고, 신(神)에게 기도할 줄 모른다. 더 더욱 남을 위한 기도는 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늘 남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마음이 가득 차 점차 눈빛도 변한다. 종래에는 얼굴은 쭈글쭈글한데 눈빛만 뛰어넘지 못한 열등감과 욕심으로 사악하게 반짝인다. 


  평생 시장바닥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도 평온하게 소녀처럼 늙어간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남도 사랑하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뛰어 넘을 수 있는 콤플렉스는 뛰어 넘는 게 좋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으면 의학을 힘을 좀 빌리면 된다. 자고로 의학이란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라지 않는가. 남들 하는 성형을 욕하지 말고 자신도 살짝 보수공사를 하는 게 좋다.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현영’이란 탤런트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녀는 몸매가 좋고 재능이 많은 여자였는데 얼굴은 그렇게 미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옛날 사진을 공개하고 패널들을 디스하는 예능 프로였는데 그녀의 옛날 사진은 현재와 많이 다른 얼굴이었다.


  - 어디 어디를 고쳤어요?

  사회자가 물었다. 그러자 현영은 한군데밖에 안 고쳤어요, 하고 말했다. 사람들이 전혀 믿지 않는 눈으로 어디요? 하고 묻자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얼굴!’, 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옛날 얼굴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옴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완전히 뛰어 넘은 것이다. 약간 혀 짧은 소리를 하는 그녀는 충분이 아름답다. 


  학력콤플렉스가 있으면 학력세탁을 좀 하면 된다. 젊었다면 ‘점프(학사편입)’를 하면 되고 

나이가 들었다면 행정대학원이나, 경영대학원이나, 예술대학원이나 얼마든지 들어갈 대학원이 늘려 있다. 그런데 가는 걸 우습게 보지마라. 대학원 공부를 해본 사람과 안 해 본 사람은,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스스로 자존감의 차이가 있다. 그럴만한 여건이 안 되면 스스로 인정하면 된다.


  - 저는 가방끈이 짧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말하면 된다. 가방끈 길다고 잘난 척 하던 사람이 순간 찔끔할 것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뛰어넘은 사람은 내공이 센 사람들이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몸으로 익히며 깨우친 사람들이 더 무섭다. 나처럼 책상물림인 경우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한다.


  특히 차별주의자들은 조심해야한다. 학벌차별주의, 외모차별주의, 빈부차별주의, 아직도 양반 상놈 찾고 앉아 있는 차별주의자들은 콤플렉스 덩어리들이기 십상이고, 또한 그 콤플렉스를 뛰어넘지도 못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사람들과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다르다. 비굴하거나 야비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내 오피스텔을 들랑거리며 나와 친구 되기를 원하는 또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입만 열면 그 사람 남편이 서울대 나왔거든요, 하고 말했다. 그녀는 학벌차별주의자다. 정작 그녀는 서울대 나온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학벌차별주의자들은 콤플렉스 덩어리들이다. 그런 여자는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다. 친구에게 조차 자신을 포장하고, 신화화시키기에 바빠 친구의 진심을 바라볼 겨를이 없다.  


  친구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교감하는 사이다. 생각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고, 세월의 무상함을 나누고, 나만 늙어가는 게 아니라, 너도 늙게 된다는 연대의식으로 위안을 받는다. 죽음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게 친구다.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며 사랑은 관심이다. 그런 관심이 겉으로 들어난 돈이나 지위나 학벌에만 있다면 어떻게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겠는가. 그런데 콤플렉스 덩어리들은 상대의 내면은커녕 겉모습만 보고 시기와 질투를 소환한다. 


  시기와 질투는 사악하여 기어이 상대를 할퀴고 만다. 주도면밀한 고양이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또한 빠르게 상대의 영혼에 스크래치(scratch)를 낸다. 처음엔 사소해 보이고, 남들이 봐도 별거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상처는 흉터가 되어 계속 남아 있다. 시기와 질투심은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상처에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또 상처를 준다. 상대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친구란 모름지기 ‘한편’ 먹자고 친구하는 거다. 쉽게 말해 ‘우정의 동맹’을 맺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편 들어 달라고 시간과 애정을 투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콤플렉스 덩어리들은 시기 질투로 친구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그런 사람은 내공이 없어 단 둘이 있을 때는 꼬리를 내리고 한 편인 척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섞이면 곧바로 콤플렉스가 기어올라 친구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자신이 콤플렉스를 별로 느끼지 않는 친구나 이득을 볼 것 같은 사람에게는 입 속의 혀처럼 착하게 군다. 그러니 콤플렉스 덩어리인 사람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잘난 남들 바라보며 긴 줄 끝에서 콤플렉스 느끼지 말고 돌아서라. 돌아서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순간 너는 일등이 된다. 네가 네 존재의 주인이며,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콤플렉스는 사라진다. 남과 비교하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불행한 이류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이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블랑쉬(비비안 리 분)다. 블랑쉬는 동성애자인 남자와 결혼했다가 실패하고, 제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교사직에서도 쫓겨나고, 뭇 남자들을 전전하며 문란한 생활을 하다 더 이상 갈 때가 없어졌다. 삶의 바닥까지 떨어진 그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빈민가에 사는 동생 집을 찾아온다. 


  블랑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끝임 없이 거짓말을 한다. 눈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허공을 헤맨다. 늘 허영에 차 허황된 소리만 지껄인다. 그녀의 가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제부 스탠리(말론 브란도)는 그녀가 밑바닥 삶조차 이어갈 수 없도록 능멸한다. 말론 브란도는 나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너무 멋있어 미워지지 않는 결점이 있다. 


  그녀가 현재의 불행하고 열등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상황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옛날의 잘 살았던 때만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포장하기에 바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시달리며 속이 텅 빈 ‘무뇌아’의 가련한 영혼의 전형을 연기한 비비안 리의 연기는 소름이 돋는다. 그녀는 결국 정신병원에 실려 가는 걸로 끝이 난다. 


  또한 콤플렉스는 자존심과 동의어이다. 자존심이 상할 때는 언제나, 누군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건드릴 때다. 콤플렉스를 뛰어넘은 사람은 오히려 그런 상황일 때 스스로 디스하며 웃어넘긴다.


  공자께서 가라사대,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하늘의 뜻을 알 나이라는 것이다. 오십 대 중반에서도 하늘의 뜻을 모른다면 자신의 인생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면 외출할 때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나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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