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사람
나는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사는 것 같다.
지금 2024년 12월 11일 현재를.
생각해 보니 더 그렇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던, 차tea를 마시던, 하다못해 단톡방에 채팅을 마치 쌓인 스트레스 풀듯이 실컷 내뱉던 사람들이 수챗구멍 물 빠지듯이 빠르게 사라졌다. 대화에서도 사라지고 그렇게 울려대던 알림 소리조차도 없이 조용히. 조용해졌다.
다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어디론가 흘러가기 위해 작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버렸다.
남들이 보면 진짜 희한한 일이겠지만 근무시간에 그렇게 떠들고 퇴근을 하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저녁을 먹고 난 시간부터는 바로 잠이 드는 것 같았다. 생각과 입이 가장 활발할 때가 그 직장이라는 곳에 있을 때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고정적인 자투리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거나 집에서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집에 가서 남편과 아이들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 아내 들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또래 또래를 찾아서 다시 다른 장소로 모여 내뱉은 만큼 들이키기 위해 타킷을 향해 모여드는 나방 같은 사람들이었다. 하수구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간 물들이 어디론가 흘러가듯. 빠져나갔다.
나는 어느 틈에도 끼지 않았기에 허기 속에 남았다.
물과 기름처럼 동동 뜬 채, 미래에서 온 게 아닌가 싶은 공허를 계산하고 있다. 째깍째깍.
나도 그들처럼 대화를 멈춘 채 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12월 11이라 캐럴송이 11월 말부터 심장을 두들긴다. 빨리 지갑을 열라고. 쇼핑을 하고 사람을 만나 마시고 먹고 돈으로 허기를 때우라고...
정확히 반대의 각진 모서리에서 오그라든 몸을 다시 펴기 위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재주문하기도 하고, 이렇게 독자가 사라진 이곳에 무언가를 쓰면서 허기를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내 블로그로 옮겨질 글들을 씹으며.
사실 블로그도 이제는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솔직하게 일기다운 일기를 쓸 수가 없다. 블로그를 누가 본다고. 광고 상세페이지 같은 찌라시를. 또 거기에 익숙한 독자는 블로거의 개인 글을 보며 혀를 찰 수 있다. “일기장에나 있을 내용을 왜 여기 싸질러났지”라고.
네이버 블로그가 흥행이 다 빠진 마당에, 누가 긴 글을 읽겠냐만, ‘좋아요' 클릭도 귀찮아하는 세태와 읽기를 멈춘 방문자에게 무슨 눈치 볼 일이 남았냐고 하겠지만, 몸이 하난데 인격이 여러개인 사람이라서 그렇다. 항상 눈동자 없는 눈동자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 카메라처럼 찍어댈 순간이 부담스럽다.
방문자의 구조는 때로는 내가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변수가 많다. 그다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실제로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하는 입장임에도 어떤 나비효과로 지구반대편에 떠내려 갈지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항상 그런 마음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하기 싫은 것을 테스트해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데, 그 경험이 내겐 중요한데, 그 경험자체를 가로막는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건 맞다.
이런 글들도 어쭙잖게 읽은 독자가 나를 뭐라고 판단할지, 알아서 생각하라고 하기엔 무책임할 수도 있겠다. 일기장에 쓴 글이 아니라서.
나는 다양한 상상을 해야 하고, 글로든 그림이든 뭐라도 구현해 내기 위해 1을 위해 99번을 습작과 낙서를 반복할 수도 있고, 남들이 규정하는 것에 따분하여 파격적인 횡보를 할 수 있는 것도 나다.
누군 90%의 완성작을 업로드하겠지만 나는 습작이든 뭐든 '~하고 싶다'는 순간이 자주 오지 않기에 쓰고 싶다고 느낄 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느낄 때 뭔가를 싸질러 놓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느끼는 요즘이라.
처참하지만 몰입이 힘든 순간에 찰나의 몰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시동이 덜 걸린 경운기 마냥 탈탈탈탈~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보낸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들에게서 투영시켜 보면서.
기어들어갈 곳이란 침대 위 이불속뿐인 게 당연하지만 매번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래서 매일 잠드는 잠을 거부하고 미루고 미루고 지쳐 잠들 때까지 기력을 소진하기도 했다.
제주도에 가서 실컷 울라고 갔는데 눈물조차 겨울바람을 정통으로 맞다 보니 요만큼도 안 나오더니, 역시 서울은 울기 좋은 환경으로 잘 포장된 거리다. 아주 쓰러져도 얼굴이 갈릴만큼 다 갈아버릴 기세로 혹독한 도시풍경이다. 수챗구멍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매일매일 보는 것 같은. 그 세면대 위에 잠긴 수도꼭지 아래로 똑. 똑. 단절음을 내고 떨어졌다. 콘트라스트를 올리며 짙게 더 짙게 떨어졌다.
내 눈물인지 핏물인지 그들이 흘러들어 간 수챗구멍을 따라 들어갔다.
나는 정말 미래에서 왔을까.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차원문을 통해 나를 구하러 온다는 사람은 아직 모스수신을 받지 못한 것일까.
나도 어린 왕자처럼 장미를 키워야 하는 것일까.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어하는 걸까.
((헛소리다운 헛소리로 분량을 채우지 말자))
정확하게는 그들이 사는 수챗구멍 속으로 나도 밀어 넣어야 하는 걸까.
졸음보다 아니 허기 보다 아니! 아니! 더한 슬픔이 나를 막고 있잖아!! 비키라고!! 내가, 아니 나도 저기로 갈 거야! 갈 거라고!! 나만 왜....
풀린 다리를 세우고 한참을 세면대 앞 뭉개진 거울 속을 들여다보다가 24시간 무인카페로 왔다.
여기도 썰물이 지나간 듯 꽉 채운 자리에 사람 하나 없이 테이블과 의자만 멀뚱멀뚱 나를 쳐다본다. 어쩌라고 그러는지. 내가 오길 기다렸을까.
오랜만에 와본다. 시험이 끝난 뒤로 꼴도 보기 싫은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새벽시간에 문을 연 카페가 없어서 오곤 했지만. 내가 키우는 장미는 아니었고, 내가 키울 장미도 아니었다. 배불뚝이 사장이 물 주기 귀찮아서 꽂은 조화 같은 장미, 그런 의미의 공간이었다. 가시도 있는.
그토록 지겹게 준비한 시험에 합격하였다.
결과란 그런 것이다.
결과란 그런 것이지.
퇴근이 있는 분들이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퇴근이 없는 분들도 부럽고. 오만잡생각이 한바탕 커피로 녹아들고 나서 또 그걸 들이켜고 나서야,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컴 앞에 앉는다.
나 역시 수챗구멍 같은 구멍은 있다. 물론 수챗구멍이 아닌 지하수로를 파고 있지만 말이다. 그 수로 끝에 세면기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간 자들이 괴물이 되어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