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를 향한 변
이러거나 저러거나 글을 시장에 내놓으려면 편집자가 개입을 해야 한다.
작가란 도대체가 1차 제조업자에 지나지 않아서, 작가의 손에서 막 생산된 글은 시추기에서 금방 퍼올린 크루드 오일과도 다를 바가 없다. 이대로는 대충 불쏘시개나 삼아보려 해도 영 적절치가 않은 것이다. 이것을 잘 정제해서 검수하고 패키징 하여 시장에 출하하는 것이 편집자의 거대한 역할이다.
작가가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고? 뭐 그런 양반도 있기는 했다.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같은 인물이 그런 별종인데, 어투로 미루어 짐작이 되겠지만 기천 년 세계문학사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사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짓을 언제 하고 앉아있나? 그라문 원유는 대체 언제 퍼올리나, 으잉?
애시당초 작가라는 자들은 영업에 별 소질이 없다. 이자들은 타고나기를 나르시시스트라, 당최 타인의 생각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막 시추한 원유가 워낙 보석처럼 번쩍이기에 딱히 패키징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패키징? 홍보? 그 짓을 언제 하고 앉아있나? 그라문 원유는 대체 언제 퍼올리나, 으잉?
여기서 일반상식 하나. 작가라는 자들은 전혀 일반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부러 그렇게 하려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특수한 데다 비상식적인 기름만 주야장천 퍼올린다. 요컨대 절대로 안 팔리는 기름이라는 것. 그게 지들 취향이래나 뭐래나. 해서 작가 놈들은 제 취향에 맞는 페트라유를 열심히 퍼댄다. 편집자가 넌지시 다가와서 ‘지금 시장의 대세는 셰일유’라고 알려주면 그들은 화를 낸다. 머시라, 셰일···? 그 짓을 언제···!
통장이 말라가고 대출 이자가 쌓여갈 때쯤이다. 뭐가? 작가 놈들이 편집자 말을 듣기 시작하는 시점 말이다. 물론 이때의 작가라고 해서 딱히 편집자 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뿐··· 두고 보자 편집자··· 그들의 이름은 데스노트의 첫 줄에 올라가고···
작가의 이름은 편집자의 살생부에 진즉부터 박혀 있었다는 것이 오늘의 훈훈한 결론.
Posted on Instagram at 5 Sep 23
Cover Image from Unsplash by Afif Ramdhasu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