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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체와이 May 19. 2024

열심히 살 때 배움이 찾아온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DALL.E로 생성했더니 귀신 손이..


“너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전형적인 꼰대의 말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다.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몸소 얻은 지식이다.

경험을 토대로 근거를 쌓아 주장을 하는 것은 꽤 개연적이다. 경험도 하나의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만이 전부, 나만이 정답, 내가 겪은 게 맞아!라는 태도가 경험론을 꼰대로 만든다.

경험론을 왜 얘기하느냐면, 내 경험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몸이 늙는 것과 정신이 성숙해지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이다.

대부분 짐작하듯 둘은 다르고, 후자는 노력을 요한다.


그럼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조금 지루하겠지만 내가 큰 성장을 이루었던 경험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 시험기간엔 남들이 공부를 하니까 하고, 평소엔 게임은 재밌으니까 게임도 하고,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니까 가고. 딱히 나의 판단에 의해 선택하고 이루어지기보단,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게 살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나이가 어릴 땐 무언가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것은 맞는 것 같다. 뇌도 덜 컸고, 학습도 덜 진행됐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유전적 요인도 크지만 환경적 요인도 큰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중3 때 공부란 걸 시작했다. 동기는 단순했다.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우리 지역에서 좋은 학교를 가려면 내 내신으론 턱없이 부족했고 올 A를 받아야만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왜 좋은 고를 가려했냐고? 그야 부모님이 원했으니까. 그게 맞다고 믿게 됐었으니까. (gaslight?)


그렇게 공부를 했다. 많이는 안 했다. 머리가 좀 좋아서? 공부 효율이 좋아서? 아님 애초에 평균이 70점일 정도로 쉬워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1년간 한 번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A를 받았다.


혹시 무조건 될 것이라는 자신감 덕분일 수도 있을까?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지금은 간신히 평균 정도임을 알고 있다). 학교에서 잠만 자도 수학만큼은 항상 100점이 나와서일까. 어릴 때 선생님이 “넌 머리가 뛰어나게 좋다”라고 해줘서일까. 어쨌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하기만 하면 무조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됐다.


그리고 중학생 때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수준이 너무 낮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는 절대평가이기에 시험 수준은 학생 수준에 대한 함수일 수밖에 없고, 중학교의 학생 수준은 동네의 소득을 따라가니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졸업을 하게 되었다. 성적이 부족해 원하던 학교는 못 갔다. 올 A가 아니라 모든 시험을 다 100점을 맞았어도 못 갔을 것이다. 과거의 성적은 바꿀 수 없기에.

나름 3학년땐 교내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었던 나는 졸업식 날에 전교 1~3등들이 장학금을 받는 것을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선 달라.


고등학교 진학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이유로 공부를 시작했던 나였지만, 공부를 하면서 점점 내 사고의 수준이 높아졌다.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라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세상에 대한 앎의 정도를 높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중3 때 맹목적인 목적으로 한 공부가, 다른 이유로 나의 마음에 불을 지피면서, 결과적으론 좋은 결과를 낳은 것.

내가 처음에 아빠, 제가 왜 공부를 해야 돼요? 왜 좋은 고등학교를 가야 해요?라고 물어보았다면, 그 질문에 아빠는 (적어도 내가 만족할만한) 답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아빠도 맹목적인 믿음, 혹은 당신의 경험에 기초한 근거로 주장한 것이니까. 그래서, 만약 내가 지금의 비판적 사고를 그 당시에 가졌다면, 공부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공부가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첫 시작이 부모님에 의한 것이어서, 그것이 하필이면 성취를 잘할수록 부모님에게 기쁨을 가져다줘서, 마치 내 목적이 사고력 함양이 아니라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으로 매도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나빴음에도 공부를 놓을 수 없었다.


첫 모의고사

고등학교 진학하고 6월에 첫 모의고사를 보았다. 내신 공부만 했어서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수학을 치고 밥을 먹으러 갔다. 공부를 좀 한다는 애들은 수학이 몇 번이 어려운데 답은 이거니 저거니 하면서 떠들었다. 나보고 풀었냐고 물어보길래 내가 푼 답을 말했다. 그 답은 대부분 아이들이 낸 답과 달랐다. 어느새 난 "문제 틀린 놈"이 되어있었다.

아 그래? 틀렸나 보네..



별생각 없었다. 어차피 모의고사고 준비도 안 했으니. 틀릴 수도 있지 뭐.


그러고 탐구까지 모두 치고 답지를 받고 채점을 하는데, 놀랍게도 수학에서 못 푼 한 문제를 제외하고 모두 맞았다. 그때였다. 나의 깨달음이 시작된 날이.

그날부터 나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적어도 수학 문제에 한해선 다수결이 답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통용된다.

저 날 이후로 문제의 답에 대해선 정말 누가 뭐라 하든 그냥 귀를 닫았다. 답이 공개되기 전 난 문제를 많이 틀린 사람이었고, 공개된 후 전교 1등이 되었으니까. 그저 그런 아이들끼리 떠들어봤자 어차피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의심하고 근거를 찾으려고 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했다. 비판적 사고란 이런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이 싫었다. 남들이 5번이라면 5번이 답인 거야? 아니던데? 왜? 공부는 왜 잘해야 좋은 건데?


맹목적 믿음이 싫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권력을 싫어하는 내게 "다수가 믿는다"란 이유로 "답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권력의 횡포로 다가왔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실제로 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니까, 도덕적, 그리고 실용적 두 가지 근거로 맹목적 믿음을 비판했다. 내 DNA 자체가 저것을 싫어하게 설계됐다고 느낄 정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언뜻 당연해 보이는 명제를 주장한다면 일부러 태클을 거는 게 취미다. 왜냐면 혹시 맹목적 믿음인지 알아보려고. 근거 없는 맹목적 믿음이라면 논의할 가치가 없으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내보내는 편이다. 근거가 있고 그것이 참신하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이런 방식이 지식과 사고를 확장하여 준다. 명제들을 따지면서 계속 사고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피식 대학의 어떤 영상이 논란이 됐네 -> 뭐 이런 말을 했어? 얘네가 잘못했네!

이렇게 바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논란이 됐네 -> 어떤 문제가 있지 -> 발언이 문제구나 -> 발언의 이런 점이 사람들에게 걸렸나 보네. -> 혹시 이것이 끼치는 문제가 있을까? -> 오 이런 점에서 문제가 있겠네 -> 그럼 이런 문제도 일으키고, 보는 사람에게도 불편감을 주었으니 좋은 콘텐츠는 아니야.

이런 식으로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생각의 확장은 물음표로 쉽게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이 내 닉네임이 대체와이인 이유이다.




열심히 인생을 살다 보면 깨달음이 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뇌든 신체든 쌩쌩할 때 많이 얻어놓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생긴 것 아닐까?

속담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해보면, 삶을 성찰함과 동시에, 많은 것을 얻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같은 삶을 살아도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여는 방식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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