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 May 28. 2024

진리, 진실 그리고 진심

온라인 글쓰기(3)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 버크의 버크레이크, 한 여름 오후 2시

  글에 불변의 보편성이라는 진리를 담고자 하는 것이 이상향이겠지만 시대정신, 급변하는 나의 성정, 다른 이들의 이해관계 등 수많은 이유로 진리를 글에 담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실 역시 때와 상황에 따라 같은 사실이 거짓이 되기도 하니, 지키려고 노력하나 의도치 않은 오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글을 쓰는 노력은 가능하다. 진심은 온라인에 배포된 내 글의 내용에 대해 누군가 비난할 때 적어도 악의가 없었음을, 일부러 거짓을 기술한 게 아님을 알리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물론 글와 함께 싣는 사진이나 그래픽도 글이나 매한가지다. 사진이란 이미지로 만든 글이고, 글이란 문자로 만든 사진인 셈이니까 모두가 콘텐츠의 일부다. 진심을 담으려는 노력을 잊으면 콘텐츠는 길을 잃는다.

  2008년 어느 날 거의 모든 신문에 사회봉사를 하는 재벌 회장님의 사진이 실렸다. 그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해야 했다. 수천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몸소 사회봉사를 행했음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날 해당 행사를 다룬 대부분의 기사들은 평이하게 그의 반성 어린 선행에 주목했는데 사진이 문제였다. 회장님이 봉사를 하던 중 아기를 품에 안고 우윳병을 입에 물렸는데, 아기는 젖병을 제대로 물지도 못 하고 불편한 자세로 낑겨 있었다. 또 우유는 아기의 턱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회장님은 카메라만 바라봤다. 엄마들은 공분했다. 젖병의 위치와 아기 얼굴의 각도부터 안아주는 자세까지 완전히 잘못됐다고 했다. 그리고 아기가 회장님의 선행을 홍보하는 악세사리냐고 되물었다. 아기의 초상권을 지적하는 글도 있었다. 회장님이 이날 사회봉사를 위해 들른 곳은 심신장애아동과 입양을 기다리는 신생아들을 돌보는 곳이었다. 진심이 없는 빈 메시지가 사람들을 분노케 한 사례다.

  2015년 4월 한국일보에는 ‘장애인 눈맞춘 왕세녀… 카메라 눈맞춘 文복지’라는 기사가 실렸다. 장애인의 날에 우리나라의 복지부 장관이 국립복지관 장애아 치료실을 찾아 사전 동의 없이 사진촬영을 강행하면서 장애아 부모들을 당황케 했다는 내용이었다. 반면 당시 한국을 방문한 빅토리아 스웨덴 왕세녀는 같은 재활원을 찾았는데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먼저 재활원을 통해 엄마들의 동의를 얻었고, 현장에서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으며, 부모가 허락한 아이들만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연말이면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의 고위직들은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물품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는다. 인사를 충분히 나눌 여유는 없다. 애초에 이들과 시간을 보내려는 게 아니라 물품만 전달하렸으니 함께 있는 시간은 매우 어색하고, 고위직은 빠르게 자리를 뜨곤 한다.

  나는 2008년 '노숙자리포트'라는 시리즈 기사를 쓰면서 몇 개월간 영등포에 거주하는 노숙자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이 겨울을 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진심 없는 적선을 이용한다. 정작 이 적선 때문에 노숙자들은 사회로 돌아가지 않고, 노숙 생활을 근근이 이어간다.

  겨울을 앞두면 정치인이나 기업, 혹은 유명인들이 찾아와 노숙자들에게 유명 브랜드의 오리털점퍼를 나누어 준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무분별하게 나누어주니 노숙자 한 사람이 3벌은 족히 받는다. 이중 2벌을 근처 시장에 되팔면 몇만원을 쥘 수 있다. 점퍼를 나누어 준 이들은 홍보사진을 찍었고, 노숙자들은 원하는 돈을 얻었으니 괜찮은 거래다. 하지만 노숙자들은 이 돈으로 경마를 하거나 소주를 마시고 각종 사건에 연루되며 노숙의 악순환에 빠진다. 정부는 노숙자들을 관리 시설에 묵도록 해 사회에 재적응시키려 하지만, 이들은 시설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홍보 사진과 홍보 글을 만들려는 많은 기관들 덕에 일을 하지 않아도 적선만으로 적지 않은 수입을 얻는다.

  노숙자들은 주말이면 종교기관을 돌면서 구호금을 버는데, 그들은 ‘짤짤이’라고 부른다. 예배를 보면 종교기관이 소정의 구호금을 주는 형식인데 사실 예배에 실제 참여하면 냄새 때문에 싫어한단다. 그저 출입구에 줄을 서면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노숙자들은 종교기관을 돌면서 돈을 모은다. 종교기관 입장에서 노숙자에게 주는 구호금은 신도들에게 좋은 홍보 수단일테다. 하지만 역시 노숙자의 재사회화에 방해 요인이다.

  진심을 담아 노숙자를 도운 활동가들은 노숙자들을 어떻게 도왔을까. 영등포에 일명 브레이킹은행을 만들어 노숙자들에게 수기 통장을 만들게 하고, 저축을 장려했다. 돈을 넣는 건 자유지만 ATM 같은 최신 시설이 없으니 돈을 찾는 것은 어렵다. 노숙자들이 술을 마시거나 경마를 하려고 돈을 찾으려면 인출 용도를 묻는다. 영업시간 내에 오면 당연히 돈을 내어주어야 하지만, 이렇게 용도를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인출은 줄었다고 한다. 이후 돈을 모은 이들에게는 저렴하게 거주지를 마련해줬다. 또 집과 저축은 이들을 일자리로 이끌었다. 목표는 적선이 아니라 재사회화였고 이 활동가들은 수년후 100명째 노숙자가 거주지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내게 전해왔다.  

  이외 예는 수 없이 많다. 진심이 빠진 콘텐츠로 망신을 당하는 경우 말이다. 콘텐츠는 존재하는 진실을 보여주는 창이지, 없는 진실을 잘 꾸며서 보여주는 마법이 아니다. 가끔 사익을 위한 도구로 대충 꾸며낸 글이나 이미지가 나돌아다니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이런 쇼는 결국 누군가에게 발각된다. 그리고 신뢰도를 회복하지 못할만큼 떨군다. 2015년 메르스가 한창일 때 한 지자체는 나노방역을 하고 있다고 홍보자료를 냈다. 기자들은 나노방역이라는 단어에 감탄은커녕 화를 냈다. 나노방역을 하는데 메르스가 급하게 퍼지냐는 것이다.

  진심을 담은 콘텐츠의 대표적인 예로는 2007년 무렵에 있었던 세이브더칠드런의 ‘참여형 기부’인 모자짜기 캠페인이 있다. 뜨거운 아프리카라는 선입견과 달리 밤낮의 기온차가 너무 심해 밤이면 추위를 타는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모자를 짜서 보내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표어는 '처음 짜는 모자입니다'였다. 사실 이 표어의 힘은 문구 너머에 있는 진심에 있다. 누군가 처음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모자를 짜게 된다면 그는 그 너머 참혹한 아프리카 아이들의 현실과 맞닿게 된다. 이 표어는 우리가 아프리카 어린이의 열악한 현실을 보도록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모자를 짜는 작은 체험을 통해 봉사나 기부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절박한 상황과 만나게 된다. 여기에 엄청난 아이디어는 없다. 하지만 진심이 숨어 있다. 설득이 아닌 공감의 영역에서 함께 해볼까 하는 마음의 작은 흔들림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진심이 담긴 콘텐츠는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