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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만 May 25. 2024

여순의 삶

굴자루

굴자루/20호/콘테/2024




어께로 파고드는 밧줄. 한발 한발 옮길 때 마다 더 깊이 파고든다. 다음 발을 디딜 수  있을 까? 누나는 이런 것을 매번 해왔던가? 시린 바닷바람 그리고 귀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게 만든다. 


진남관 앞 본정통에 불탄 집들의 숯 더미를 파 해치며 놋이나 쇠를 찾아다니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굴 자루 지는 것은 내게는 너무 힘들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르고 기운도 없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동네 멀마들은 거의 학교 다니는디 나는 학교도 못 가고 이게 뭐여?”


“부애가 나서 죽것구마!”


“이 굴자루 백번만 지고 동정시장에 가서 폴면 니도 학교 댕길 수 있당께.”


“누나 진짜?” “거짖깔 아니지?”


“그렇당께 힘들어도 참어라 잉.”


“당아 멀었당가?” “참말로 멀어부네.”


“워마! 길현아 인자 시작이여 벌써 힘드면 어쩌까?” “곧 저그가 곧 동정이다 인자 나올거다 가찹다고 생각해부러라!” “나도 그랬씅께.”




누나가 하는말 잘들어야 한다. 나 때문에 누나가 너무 힘드니까. 그런데도 봉용이가 놀리면 참을 수 없다. 




“너는 아부지도 엄마도 없지~와?” “느그 아부지 뽈갱이라 만성리로 끌려가서 죽었다 덩마 그자?”


“아니여 우리 아부지 뽈갱이 아니랑께 우리 아부지 살아있당께!” “니 거그서라  잉.”




그날 봉용이를 잡아다가 시궁창에 쳐 넣었다. 더러운 시궁 물을 뒤집어 쓴 봉용이를 때려 주고 있는데 봉용이 할머니가 몽당 빗자루를 들고 와서 소리쳤다.




“이 호로새끼가 우리 귀하디귀한 손자를 때려 부러야.” “어디 니도 한번 당해봐라!”


“이 새끼는 애미 애비도 없응께 폴세 글러가지고 사람 패기나 하고 알갸 알갸 너는 뭐가 될라그냐?” “이 호로새끼야!”




그날 봉용이 할머니는 나를 봉용이 집 기둥에 묶어 놓고 봉용이는 발로 내 정강이를 차고 할머니는 뭉툭하고 툭 불거진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었다. 나는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고아가 되어 서러웠던 것이 모두 터져다 나왔다. 내 절규가 동네 가득해 이내 누나가 달려왔다.




“이거 뭐다요!”“어찌 근다요!” “저 멀마가 아무리 잘 못해도 묶어놓고 패는 것이 어딧다요?”


“동네사람들 여그좀 보시요!” “아~~ 할매!” “우리가 고아라고 이래도 된다요?” 




그날 누나와 나는 움막 같은 조악한 집에 손을 맞잡고 앉아 같이 울었다. 그리고 누나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참아 길현아!” 라고 했다.




백 밤 자면 아버지 온다고 했는데 그 백날 밤은 언제 올까? 세다가 지쳤고 또 백번을 짊어지고 동정시장까지 가져가야 한다 했는데 그 백번은 언제 될까? 나는 춥고 배고프다 그리고 앞도 뒤도 캄캄하다. 저 어두운 끝에 나는 보이지도 않는데 누나는 그 희망이란 것이 바늘만큼 보인다고 한다. 나도 그 희망이 보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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