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해수욕장
성산일출봉을 넘어온 아침 해가 천천히 제주도 전역으로 걸음을 옮긴다.
긴 밤을 지나 수평선 위에서 막 떠오를 때만 해도, 붉은 노을이 배경이 되어 세상의 주인공은 분명 태양 자신이었다. 아름다우면서도 따스한 빛이 되어 보는 이들에게 멋진 하루를 열어주었었다.
그러나 함덕해수욕장에 다다르자, 커다란 서우봉에 막혀 붉은 노을은 서서히 사라지고, 푸른 하늘과 투명한 바다가 해를 맞이한다.
오늘 아침은 조금 다르다. 주인공은 태양이 아니다.
서우봉의 부드러운 능선과 함덕의 맑은 바다, 에메랄드빛 물결이 더 또렷이 빛난다. 늘 세상을 아름답게 빛내던 태양이 오늘만큼은 한 발 물러서, 그 풍경을 조용히 감상한다. 빛을 비추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바라보는 존재가 된다.
조암해안로를 따라 걷다 보면, 델문도 카페가 바다 곁에 기대어 있다. 카페를 지나 바닷가로 이어지는 자그마한 섬들, 그리고 그 섬들을 다정하게 이어주는 아담한 다리. 그 위에 서면 서우봉과 함덕해수욕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태양은 살며시 그 풍경 위에 빛을 얹는다.
과하지 않게, 흐트러지지 않게.
델문도 카페 옆 나무 의자에 잠시 앉아본다.
따뜻한 햇살이 나뭇결 위에 스민다. 이내 카페 안으로 들어가 창가에 머문다.
커피 한 잔의 김이 천천히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펼쳐진 푸른 바다와 서우봉의 실루엣이 고요히 숨 쉰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게 태양도 오늘은 세상을 비추기보다, 세상 속에 스며들어 조용히 하루를 시작한다.
빛이 되는 대신, 풍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