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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 MaSill May 29. 2024

우리가 거니는 방식

박혜영


정영선 개인전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2024

우리가 거니는 방식

2020102905 박혜영



  나무와 꽃과 풀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수많은 초록들은 그저 존재할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누군가의 세밀한 손길로 철저하게 기획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부터 한강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버드나무, 올림픽공원 들판에 펼쳐져 있는 튤립이나 팬지꽃 따위까지 사실 그것들은 정확한 설계 아래에서 그곳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있다. 조경가는 가장 ‘자연’스러워 보여야 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예술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는 그러한 조경가의 예술을 제시한다. 전시는 정영선의 삶을 관통하는 조경 철학을 예술과 결합해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조경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며 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를 나열한다. 전시 초반에 재생되고 있는 작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정영선의 궤적과 예술관을 받아들인 후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숲 혹은 정원에 발을 딛는 듯하다. 벽, 바닥에는 정영선의 힘이 닿은 조경 사진, 평면도, 글들이 비치되어 있고 고개를 들면 새소리가 들리는 영상이 함께 움직인다. 공간 전체를 감싼 채 상영되고 있는 영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는 전시에 몰입하도록 만들기 충분하다. 주목했던 점은 바닥에 여러 글과 사진, 평면도를 깔고 그 위에 유리를 놓아 관객이 마음대로 유리 바닥을 걸으며 일어서서, 혹은 몸을 숙여서 관람할 수 있도록 의도한 설치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전시를 보는 행위가 마치 숲을 거니는 행위로 변모한 듯한 경험을 가진다. 잘 가꾼 정원을 둘러보듯 전시장을 거닐며 정영선의 흔적을 좇는다.

  이제 막 돋아난 새싹, 혹은 이미 울창한 여름의 이파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관객은 한 장 한 장의 평면도와 글을 유심히 관찰한다. 가끔은 마음에 드는 꽃에 매료되듯 하나의 액자 앞에 오래 머무르기도, 한 편의 글을 천천히 곱씹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주 가는 카페 화단의 양귀비, 늘 지나는 등굣길의 등나무, 봄이면 구경했던 목련을 떠올린다. 어떻게 보면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경이라는 분야에 조경가 정영선의 예술 철학을 덧바르며, 전시는 숨 쉬듯 당연하게 보아왔던 우리 곁의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금 감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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