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빠가 도와줘
학창 시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면 아빠는 항상 작은 2인용 식탁에 앉아 김치 같은 조촐한 안주와 함께 술을 드시고 계셨다. 이상하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볼 때마다 보는 순간 울화가 치밀고 분노가 솟는다. 물론 아빠도 매일 그렇게 되기까지 아빠의 고난의 시간과 스토리가 있었으리라.
몸이 좋지 않아 일도 매일 못하게 되자 아빠는 매일을 술로 보냈다. 집안은 온통 술 냄새가 진동하고 아빠의 축 처진 어깨와 한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기왕이면 자식한테 좋은 모습을 남기고 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떤 부모가 그러고 싶지 않았을까.
아니 이미 알코올이 뇌를 지배해 아빠는 병리적인 상태였을 것이니 어쩌면 바라지도 바랄 수도 없는 좋은 모습.
아빠가 내 이름이라도 부르면 나는 불같이 화를 내고 짜증과 분노를 쏟아냈다. 우리 아빠도 참 집요한 게 그렇게 짜증을 내면 그냥 무시할 만도 한데 꼭 잔소리를 하고 나를 나무랐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그렇게 몇 년을, 아니 10년 넘게 그렇게 보낸 것 같다.
어느 날 직장 동료와 술을 먹다 직장 동료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저희 아빠가 진짜 술을 좋아하시고 많이 드시는데 저는 퇴근하고 아빠가 혼자 술 먹고 있으면 제가 술도 따라 드리고 맛있는 안주도 만들어서 같이 짠~하고 술 한잔해요. 아빠랑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고요."
얼굴만큼 마음도 이쁜 사람이 일상을 이야기하듯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의 일상이 나는 평생에 걸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끄럽고 눈물이 핑 돌았다. 미안했다.
내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후회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축 처진 어깨로 소주나 막걸리를 드시던 아빠한테 술 한잔 따라 드릴걸.
직장 생활할 때는 밖에서 그렇게 술도 잘 먹던 난데 아빠랑 술 한잔 같이 하고 맛있는 것도 시켜 드릴걸.
왜 그렇게 술을 먹으면서도 자식들에게 화를 내고 술주정을 할까 너무 궁금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알았다.
아빠는 외로웠던 거다. 위로받고 싶었던 거다.
같이 마주 보고 앉아서 먹는 소주가 아마 그 위로였을 텐데. 그때 아빠에게 다정하게 "아빠 이제 술좀 그만 먹어~"했다면 아빠가 술을 좀 적당히 드셨을 텐데.
그냥 더 이상 아빠가 술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화를내고 소리치면 된다 생각했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법인데.
차디찬 강한 바람보다 따뜻한 햇살이 이기는 법인데.
알지만 알 수 없었다. 그때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에게 하나의 시련이 더 찾아왔다.
하늘이 노랗고 사는 게 무서웠다.
이제는 가끔 잊기도 하고 즐거운 일에 웃고 감사하며 살기도 한다.
근데 다시금 마음이 힘들고 지치면 아빠한테 부탁한다.
아빠 미안한데, 아빠 외롭게 해서 미안한데, 아빠가 우리 가족 좀 지켜주면 안 될까..
아빠가 좀 도와줘.
아빠잖아.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