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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27.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12

20240426 - 20240508

살레르노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으러 간다. 어제 먹었던 까르보나라를 잊을 수 없이 다시 한번 알 덴테에 들렀으나 아니나 다를까 웨이팅이 있는 상황. 대기까지 하면서 밥을 먹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주변에 있던 시푸드 전문 레스토랑인 마마 로사 Mamma Rosa로 향했다. 대기는 없었으나 테이블이 꽉 찬 것으로 보아 높은 구글 평점에 신뢰가 갔다. 살가운 직원이 다가와 바로 테이블로 안내해 준다.



나보고 Where are you from? 이라길래 싸우스 코리아.라고 대답했더니 바로 맛있다~!고 한국말로 받아쳐준다. 여기 와서 겪은 이탈리아인들은 얼굴을 보고 멋대로 니하오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주는 점이 좋았다. 적어도 가게 직원들은 그랬다. 아무튼 맛있다!라고 연신 외쳐준 직원이 다른 관광객 커플에게 가서도 내가 싸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굳이 말을 하더니 내 뒤에 있는 칠판을 가리킨다. 이렇게 여러 나라의 언어로 맛집임을 반드시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보라.


QR 코드로 들어가니 감사하게도 메뉴 전부에 사진이 있었다. 이런 세심함은 외국인들에게 아주 감사하다. 나는 자신 있게 가게에서 "Must"라고 추천하는 Paccheri alla Genovese with octopus plus chopped pistachios - 피스타치오 가루를 뿌린 문어 파스타와 사이드로 호박꽃튀김, 그리고 콜라를 시켰다. 맛있다~! 를 외쳐준 직원이 내 주문을 받아 적더니 갑자기 모차렐라 좋아해?라고 물어본다. 응, 좋아해.라고 대답했다.



사이드로 나온 호박꽃 튀김은 솔직히 미묘했다. 근래 TV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여주길래 기대하고 먹었는데 뭐랄까, 쫄깃하고 두꺼운 튀김옷에서 호박향이 은은하게 나는 그런 맛이었다. 호박꽃인데 왜 호박향이 날까, 미스터리다. 그리고 메인인 문어파스타가 모차렐라 치즈 두 스푼의 상냥한 서비스를 양 옆에 얹고 도착했다. 나는 사실 이 모차렐라 치즈가 서비스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는데 나중에 리뷰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파스타 사진을 보니 확실히 서비스였다. 고마워요 이탈리아. 문어 파스타의 맛은 뭐랄까, 한국인인 나에게 아주.. 아주 익숙한 맛이었는데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먹던 그 당시에도 아... 아는 맛인데 이거 뭐지? 하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먹었다. 배가 불러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맛은 평범하게 괜찮았다. 직원은 나에게 다가와서 음식이 괜찮냐고 물어보더니 올 가을에 일본과 한국을 간다고, 한국 가서 아주 빠른 기차를 탈 거라고 나에게 말했다. 기차 시속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빠른 기차라길래 오 KTX겠구나 하고 대충 생각했지만은. 아무튼 다 먹지 못하고 나와서 미안할 정도로 친절한 곳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보니 로마에 갈 기차 출발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아있었다. 시간 변경한 기차였기에 앱으로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변경하려면 추가 요금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쳤었던지라 조용하고 사람 없는 호텔 로비의 소파에서 눕다시피 앉아서 시간을 죽였다. 바깥은 한참 도로 공사 중이었다. 이 호텔에 들어오는 첫 날도 저렇게 두들기며 메인 도로 공사를 하고 있어서 아침에 시끄러울까 봐 걱정을 했는데, 마침 수요일이 노동절이었던지라 공사를 하지 않았고 목요일인 오늘 아침도 그렇게까지 시끄럽지는 않았다.



로마 테르미니에 도착한 나는 호텔을 향해 걸어간다. 과거의 흔적인 돌바닥 위로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면서 이탈리아 관광의 최대 적은 이 돌바닥이란 생각을 했다. 대학생 시절 멋 모르고 처음 유럽 여행 왔을 때 너무도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동생과 함께 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여행의 경험이 쌓인다는 건 이런 데서 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캐리어는 포기하고 본인의 힘으로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21인치 캐리어 딱 하나만 들고 열흘 여행을 왔다. 물론 이것도 기차에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긴 힘

들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로마에 위치한 호텔 옆에는 다행히 코리안 마트가 있었다. 뉴욕에서의 H 마트와 비교는 안되지만 내가 찾던 것은 있었기에 감사히 사서 나왔다.


신라면 컵라면, 2.3유로. 오늘의 나에게는 파스타스테이크파스타파스타에서 벗어나 한국의 맛이 간절히 필요했다. 예전에는 외국여행을 가도 한식이 그리웠던 적이 없었고 그걸 은근히 자랑거리로 삼아왔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한국 음식이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었다. 신라면 한 입을 먹으니 위장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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