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 20240508
매일 아침 조식 사진을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생존 여부를 식사 사진으로 알리는 것은 퍽 한국인다운 짓이라 생각한다. 호텔에 도착한 지는 이틀째지만 어제는 투어 시간이 일러서 조식 구경도 못했으니 오늘이처음으로 조식을 먹는 날이다. 굿모닝을 외치며 식당에 들어가자 친절한 직원이 맞이한다. 뭐 마실래? 하는 질문에 당연히 카푸치노~ 하고 대답하곤 자리에 앉았다. 카푸치노와 함께 먹을 한입거리 간식까지 가져다준다. 게다가 카푸치노 전문점도 아닌데 카푸치노가 너무 맛있다. 저 풍성한 우유거품을 보라. 저 부드러움은 스팀을 잘 쳐야만 된다.
아침에는 빵보다 밥을 선호하는, 누구보다 한국인의 위장을 가진 나지만 이탈리아식 호텔 조식도 먹다 보니 또 먹을 만했다. 특히 이 호텔의 조식 메뉴는 다양하다기보다 알차게 필요한 것들만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 중 묵었던 호텔 네 곳 중에서 조식으로는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사실 메뉴가 아무리 다양해 봤자 내가 아침마다 먹는 것은 정해져 있다. 동그란 호밀빵 두 덩이와 햄 두 장, 황도 반 쪽과 야채, 그리고 토마토. 토마토는 가득 담아와서 설탕을 뿌려 먹고 빵에는 버터를 발라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입가심으로 카푸치노와 간식을 먹는다. 그렇게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서야 부지런히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로마에 있는 문구점과 장난감 가게들을 들러보기 위해 나섰다. 사고 싶은 브랜드의 키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어제까지 변덕스러웠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쾌청하다. 스페인 광장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사실 나는 어제 피엔차의 기념품샵에서 너무나 마음에 드는 딸기 키링을 발견했다. 재빠르게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지만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쪼그마한 딸기 하나에 10유로는 너무나 바가지인 것 같아 차라리 로마에서 찾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Bukowski는 스웨덴의 동물인형 브랜드였는데, 로마 문구점인 Vertecchi에서 이 브랜드를 취급하는 것을 알아냈다.
스페인 광장 옆에 있는 베르테키는 규모가 제법 있었고 재미있는 물건들도 많았다. 다만 서울의 핫트랙 같은 규모는 아니다. Bukowski 코너도 찾아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색의 딸기가 아니었고, 어제 피엔차의 기념품샵과 가격 차이도 없었다. 역시 여행 때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만 남을 뿐이다. 나는 다른 문구점과 장난감 가게도 더 돌아보기로 했다.
갤러리아 알베르토 소르디 Galleria Alberto Sordi에 있는 Hamleys 백화점에 들어가다가 보게 된 유니클로. 유니클로는 정말 세계를 다 장악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무인양품은 아직 로마에 없어 보인다. 아무튼 규모가 크고 작은 장난감 가게 몇 군데를 돌았으나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나는 미국 홈페이지에서 직구하기로 마음먹고는 딸기 키링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지나가다가 보게 된 트레비 분수. 예전에 찾아왔을 때와는 달리 인파로 바글거려 제대로 구경할 틈도 없었다. 나는 이미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두 번이나 던졌었기에 조심스레 가방을 꼭 잡고 지나왔다.
호텔 근처에 있던 한국 식당과 빨래방. 빨래방은 가격을 알아두기 위해 간판을 찍고 있자니 안에서 아저씨가 나와서 가격표가 적힌 전단지를 쥐어주었다. Lavanderia Wash Point. 구글에서 찾아보면 한국인 오너라고 적혀있는 가게고 리뷰가 오락가락하는데 그 이후 사장님이 바뀐 건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한국인 사장님이 아니라고 했다. 딱 봐도 나에게 전단지를 쥐어준 본인이 사장님인 것 같긴 했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기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빨래를 맡겼다. 빨래의 양이 적어 씻고 말리고 개어주는 데까지 단 돈 12유로. 살레르노의 코인 빨래방에 가서 직접 빨래했던 것과 가격이 비슷하다.
이날의 저녁은 쌀국수였다. 가게는 Ristorante Pho 1. 자릿세도 안 받고, 고수 추가에도 돈을 안 받는 착한 가게다. 빨간 쌀국수를 가리키며 얼마나 맵냐고 물어봤더니 자기한테는 보통정도라고 대답해서 믿고 시켰다. 한국인 중에서는 맵찔이에 속하지만 서양권 국가에서의 매운 음식은 또 웬만하면 먹을 수 있는 레벨인지라.
고수가 모자라 처음에 Cilantro를 더 달라고 부탁했더니 직원분들끼리 갸우뚱거리면서 고스?라고 발음하길래 그래 맞아 고수! 고수! 하고 외쳤다. 그쪽에서 Coriander라고 고쳐서 말씀하시기에 나중에 찾아보니 미국식으론 고수를 실란트로라고 하고 나머지 국가에선 코리앤더라고 지칭하는 모양이었다.
다 먹고 나서 직원분이 이즈잇 굿? 노 파스타. 하고 웃으면서 물어본다. 파스타에 질려 가게에 찾아온 동양인들을 많이 맞이해 본 말투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가게에는 압도적으로 동양인이 많았다. 옆에 앉은 백인이 very authentic이라고 말하며 맛을 칭찬하고 직원은 약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남의 나라 사람 입에서 제일 듣고 싶지 않은 게 자신의 문화에 대한 authentic이란 단어일 것 같기에. 아니, 진짜 네가 뭘 안다고? 란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올 것 같은데.
사실 아주 맛있는 쌀국수는 아니었지만 그 향과 붉은 국물만으로도 동양인의 지친 위장을 위로해 주기엔 충분했기에 이탈리아 음식에 지겨운 사람이면 한 번쯤 찾아 광명을 찾을 만한 가게였다.
석양빛에 붉게 빛나는 콜로세움을 보며 호텔로 돌아왔다. 조금 시간을 죽이다가 빨래방으로 들어갔더니 아까 나와 이야기했던 아저씨가 건조기에 들어가 있던 빨래를 착착 개서 파란 비닐봉지 안에 청량한 냄새가 나는 스프레이를 쫘악 뿌린 후 빨래를 넣어 건네주었다. 구글 리뷰는 애매할지언정 나에게는 친절한 사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