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 20240508
드디어 마지막날이다. 인천행 비행기는 저녁이었으니 그전에 마지막으로 젤라또를 즐기고 보르게세 공원에 들를 예정이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구리구리한 것이 영 심상치 않았다. 12시쯔음에 비가 잡혀 있었으나 비가 그렇게 심하게 올 것 같진 않았고 무엇보다 다 싸둔 짐에서 우산을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출발한 것이 내 패인이었다.
아무튼 결국 마지막날까지 카푸치노를 마신다. 오늘 카푸치노와 함께 준 쿠키가 맛있었다. 체크아웃을 한 뒤 캐리어를 호텔에 맡기고 출발했다.
내가 간 곳은 젤라테리아 라 로마나 Gelateria la Romana. 예전에 왔을 때 워낙 맛있게 먹기도 했고, 이번에도 먹으려고 했으나 관광지 주변의 지점들은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었다. 테르미니와 보르게세 공원 사이에 있는 이 지점은 관광지가 아니라 널널할 것 같아서 찾았다. 다만 구글에 안내된 오픈 시간이 11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안에는 직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왜 문을 안 열지? 정답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실제 오픈 시간은 12시였고 구글이 틀린 거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밖의 벤치에 앉아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이탈리아의 직원들은 밖에서 손님이 기다린다고 12시 땡 하는 순간 칼같이 문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라 로마나 젤라테리아는 현재 넷플릭스 쇼 브리저튼 Bridgerton과 콜라보를 하고 있었다. 딸기와 피스타치오를 주문했으나 딸기맛이 없다는 말에 실망했던 나는 메뉴판을 보고 냉큼 레이디 휘슬다운 Lady Whistledown 맛을 시켰다. 데코레이션만 그렇게 한 줄 알았더니 브리저튼 맛(!)도 4개나 있었을 줄이야. 내가 또 브리저튼을 좋아하지요. 자작부인 The Viscountess 맛은 망고와 스파이스드 쿠키, 레이디 휘슬다운 맛은 파인애플, 로즈메리, 그리고 레몬 파운드케이크, The Regency Royal은 루비 초콜릿과 크런치 골드 캐러멜, 그리고 공작부인 The Dutchess 맛은 크런치허니가 들어간 치즈케이크 맛이다. 레이디 휘슬다운 맛은 놀랍게도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파인애플 맛이라기보단 뭔가 느끼한 맛이 입을 맴돌 뿐이다. 그나마 피스타치오 맛 젤라또는 먹을 만했다. 차라리 리전시 로얄을 시켜볼걸 그랬다.
보르게세 공원으로 향하는 길, 굵은 빗방울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퍼붓기 시작한다. 보르게세 공원 앞의 지붕이 있는 건축물 아래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우산이 없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도 다 같이 서 있다. 비는 생각보다 거세게 내리고 옆에 서있던 노숙자의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뉴욕 지하철에서 많이 맡던 냄새다. 가이드님이 말했던 대로 이탈리아의 비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아니다. 비가 조금 잦아들었을 때쯤 마지막 날의 시간을 이렇게 더 낭비할 수는 없어 나는 용감하게 다시 출발했다.
날씨가 점점 갠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머리에 맞으며 보르게세 공원 안을 쭉 둘러보았다. 날씨가 좋을 때는 저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이제까지 보르게세 미술관만 보러 왔었지 이렇게 공원을 제대로 구경한 적은 없었다. 마지막 날인데 날씨가 더 맑았어도 좋았을 텐데. 아니, 우산만 챙겨 왔어도 더 좋았을 거다. 비가 내리니 더 운치가 있는 공원이다.
Porta Pinciana 쪽에서 공원으로 들어간 나는 서쪽의 포폴로 광장 Piazza del Popolo 쪽으로 나온다. 오늘의 점심은 호텔 근처에 있는 라 까르보나라 La Carbonara에서 먹을 생각이다. 파스타에 물렸지만 그래도 또 로마 하면 까르보나라 아니겠는가.
까르보나라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가게 이름이 라 까르보나라일까! 주인아주머니도 직원들도 다 친절한 곳이다. 브레이크 타임이 다 되어갈 때쯤 가서 다행히 웨이팅은 없었다. 무려 구글 리뷰가 3,500개에 달하는 맛집이다. 이 가게가 까르보나라를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식당이라는데 진실의 여부는 모르겠다. 크림소스 따위 쓰지 않은, 관찰레라 불리는 돼지 볼살 고기와 계란 노른자를 쓴 정통 까르보나라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는 호텔로 돌아간다.
그 전날 로마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로마 공항에서 로마 시내까지는 50유로 정찰제지만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가격이 대중없어 보였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정보는 많아 보여도 그 반대의 경우는 정보를 찾기 어렵다. 블로그들을 뒤적거리던 나는 한 후기를 보고 이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다. https://www.fiumicinotaxi.info/ 올 때 50유로였으니 갈 때 40유로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일행이 있었더라면 더 돈을 아꼈겠지만. 솔직히 말해 홈페이지의 디자인이 너무 촌스러워서 여길 믿어도 되나 긴가민가하긴 했다. 만에 하나 차가 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우버를 부르면 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예약을 진행했다. 카드 번호 같은 걸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름과 이메일 주소, 연락처, 인원수, 픽업장소 등만 넣으면 이메일이 온다.
나는 전화가 되질 않으니 무슨 일 있으면 이메일을 남겨달란 답장을 했고 회사 쪽에선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답변을 보내주었다. 호텔 라운지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나이 지긋하신 운전수께서 대충 리..? 같은 이름을 부른다. 한국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셔야 할지 도무지 모르시겠는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고 액정에 비친 이름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드라이버께서는 내 무거운 캐리어를 직접 트렁크에 넣어주셨고, 출발하기 전 이 화면을 찍으라고 보여주셨다. 바가지요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친절하게 짐까지 내려주셨다. 나는 현찰로 40유로를 지불했다. 마침내 공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