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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22.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08

20240426 - 20240508


Day 5. 살레르노에서 폼페이로 이동한다. 지역 열차로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폼페이에는 폼페이 Pompei 역과 폼페이 스카비 Pompei Scavi  역이 있는데, 출발하는 도시에 따라서 내릴 수 있는 역이 다르다. 나는 살레르노에서 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Pompei역으로 간다. 하늘이 꾸물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영락없이 비가 내릴 상이라 우산을 단단히 챙겼다.



폼페이 역에서 내려서 마을 광장 안으로 들어가 두리번거리다 보면 폼페이 유적으로 가는 팻말이 나왔다가, 또 없어졌다가 한다. 이럴 때는 구글맵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대충 근처에서 나같이 보이는 관광객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따라가는 것도 방법이다.


마침내 입구를 찾았다. 폼페이로 들어가는 입구 역시 세 곳인데, 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입구인 Porta Marina 쪽이 아닌 경기장 쪽 입구 Piazza Anfiteatro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먼저 짐검사를 하고, 매표소에서 10분 안팎으로 기다려서 입장했던 것 같다.


원형 경기장 안.

폼페이 가기 전에 가이드 투어를 예약할까 말까 망설였으나 내가 듣고 싶었던 "고고학자와 함께 하는 가이드 투어"는 집합 장소는 폼페이 스카비 역 쪽이라 한참 걸어야 했고 집합시간도 애매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첫 방문했을 때 가이드 투어를 했었으니, 이번에는 오디오 가이드로도 괜찮지 않나 싶어서 무료 폼페이 가이드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9,900원을 내고 듣고 다녔다. Porta Marina 입구 쪽에서 빌려주는 공식(?) 오디오 가이드 가격은 모르겠다.



폼페이를 처음 왔던 것은 워낙 옛날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돌아다보니 기억이 났다! 가운데의 사진은 목욕탕이었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첫 방문 때도 똑같은 구도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디카로 찍었었지만. 목욕탕이 아무래도 유명한 스폿인지라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꽤나 길었다.



봄이라 장미와 양귀비와 이름 모를 들꽃이 가득 피어있다. 누군가가 살던 흔적 위에 피는 꽃이란 어찌도 저리 아름답고 덧없는지 모르겠다.


비가 한바탕 쏟아졌고 잔뜩 젖은 돌바닥은 미끄러워 무척 걷기 힘들었다. 폼페이 돌바닥은 생각보다 걷기 어려워 넘어졌다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내가 챙겨간답시고 챙겨간 양산은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뒤집어졌다. 차라리 비옷을 챙길 것을 그랬다.


식당이 이렇게나 잘 보존되어 있다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이곳이 발견되었던 당시에 동전을 넣은 단지가 어딘가 구석에서 발견되었는데, 주인이 도망가면서 단지를 숨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돈을 그렇게 열심히 숨겨놓고 결국 찾지도 못했으니 분해서 어쩌나. 사실 목숨만 건졌어도 다행이었을 테지.



저 수많은 사람들은 좌측에 보이는 2층 건물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있는 건데, 이 건물은 바로 사창가다. 폼페이에는 사창가 건물이 몇 개가 있는데 온전히 성매매만의 목적으로 지어진 것으로는 이 건물이 유일하다 했다. 1층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작은 돌침대가 들어간 방이 여러 개 보이는데, 이 좁은 데서 몸을 착취당한 것은 주로 외국인과 노예 여성들이었다 한다. 게다가 말이 통하지 않을 때를 위해 체위까지 그려놓은 그림을 보라. 이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지금이나 이런 데서 별반 다를 게 없다니 숙연해진다.

 

사창가를 보고 나니 아무래도 인류애가 사그라들었다. 폼페이는 이쯤 봤으니 됐다, 이제는 다시 안 와도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바글거리는 사람과 미끌거리는 돌바닥에 신경을 써서 걷느라 다리가 아팠다. 나는 살레르노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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