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 친구들의 들뜬 대화로 가득했던 방은 손님들이 떠나자마자 고요해진다.
그 적막 속에서 방을 정리하다 보면 미처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물건들이 남겨져 있곤 한다.
손님이 두고 간 물건이 생기면 나의 업무는 연장된다. 먼저 연락을 취해 분실물 여부를 알리고, 주소를 받아 안전하게 포장한 뒤 우체국에 들러 택배를 부치는 일까지 이어진다. 사실 이게 말처럼 간단치 않다. 파손되지 않게 뽁뽁이로 감싸고 알맞은 박스를 찾아 테이핑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꽤 뺏기는 일이다. 그래서 퇴실 안내를 드릴 때마다 소지품을 꼭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당부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무언가는 남는다. 충전기, 챙기지 못한 세면도구, 혹은 읽다 만 책 같은 것들.
특히 이불을 들춰보면 의외로 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온다.
베개 아래에 꾹 눌려 있던 이어폰,
이불 사이에 끼어 있던 반지,
혹은 침대 프레임 틈새에 깊숙이 숨어 있던 워치까지.
처음에는 '왜 이렇게 다들 흘리고 가실까' 싶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떠들썩하고 설레는 여행에 오롯이 집중하다 보면, 물건 하나둘 남겨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흔적일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서, 혹은 너무 행복해서 마음을 온통 이곳에 쏟아두느라 소지품 챙길 틈조차 없었던 그들의 몰입을 떠올리면 남겨진 물건조차 다정하게 보였다. 주인은 떠났지만 그들이 두고 간 물건 속에는 여전히 즐거운 여행의 여운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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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꽤 오랫동안 머물다 간 손님이 두고 간 파우치를 발견했다.
주소를 몰라 먼저 문자를 남겼고, 잠시 뒤 도착한 답장을 보고 손이 멈췄다.
'서울시 OO구 OO동.’
내가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살았던 바로 그 동네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익숙한 지명에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인연이란 참 신기해서,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손님이었는데 마치 잊고 지낸 옛 친구를 만난 듯 내 마음을 기분 좋게 건드렸다. 내가 치열하게 하루를 버티며 바쁘게만 살던 그 동네에서 온 손님이 이곳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를 동질감과 반가움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우체국에 들러 택배를 부치고 송장 번호를 찍어 문자를 남겼다.
잠시 뒤 도착한 답장에는 정성스러운 감사 인사와 함께 짧은 이야기가 덧붙어 있었다.
예전부터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며 서울 시절의 기록과 제주의 일상을 봐왔던 분이었다. 마침 제주 여행을 준비하다가 내 게시물을 보고 '아, 이곳으로 가면 되겠다' 싶어 자연스럽게 예약을 하셨단다.
단순히 알고리즘이 닿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 방문은 나에게 꽤 큰 뿌듯함을 주었다.
내가 고민하며 가꾸고 매만진 이 공간을, 누군가 화면 너머로 오랫동안 나의 기록을 보아왔고 끝내 직접 찾아와 좋아해 주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지난 몇 년간 홀로 낡은 집을 고치고 정원을 가꿔온 고생을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의 나는 늘 지쳐 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쳐내며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집을 꾸미고 기록했을까.
돌이켜보니 그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산적인 활동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기록들이 씨앗이 되었는지, 지금 내가 운영하는 이 민박집은 누군가에게 잠시 머물다 갈 이유가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꼭 한번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나의 과거가 현재의 나를 먹여 살리고, 타인의 휴식을 완성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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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 바다는 이미 어둠에 잠겨 수평선조차 희미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다가 없는 게 아니듯, 내가 서울에서 보낸 치열한 시간들도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에 묵묵히 쌓여 있을 뿐이었다.
민박집을 운영하며 가장 자주 느끼는 건,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손님이 두고 간 작은 파우치 하나 덕분에, 나는 오늘 내가 살던 그 동네의 익숙한 풍경들, 퇴근길의 공기를 잠시 떠올렸다. 짐을 다 풀고 나서야 여행이 완성된다는 말처럼, 그 택배가 무사히 도착하면 우리의 인연도 조용히 마무리될 것이다.
이렇게 알고 찾아와 준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가꿔온 공간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이제,
단순히 방을 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의 장소’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게,
과거의 기록이 선물해 준
지금의 나에게 일어난 가장 근사한 변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