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까지 알게 되는 직업

by 이월

민박집을 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사람마다 ‘수건 취향’이라는 게 생각보다 분명하다는 걸.

나는 그저 물기만 잘 닦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왔다. 수건은 늘 거기 있는 물건이었고, 다 쓰면 말려두고 다시 쓰는, 그 정도의 존재였다. 그런데 손님들의 기준은 꽤 구체적이다.

넉넉하게 달라는 요청은 기본이고, 가끔은 수건의 크기나 두께를 묻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예약 문의를 하던 손님이

“샤워용으로 큰 타월이 있나요?”라고 물어왔다.

순간 대답이 막혔다.

호텔에서는 당연하게 보던, 몸을 다 감싸는 큰 타월이 우리 집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박집은 시골집의 감성을 지향한다는 핑계로, 늘 같은 크기의 수건 한 가지만 준비해두고 있었으니까. 그게 오히려 깔끔하다고, 나름의 기준이라고 생각해 왔다.


“죄송하지만 일반 수건만 제공해 드리고 있어요.”

답장을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그 문장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내가 뭔가를 빠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요즘은 다들 큰 타월을 쓰나 싶어 친구에게 물어봤다.

친구는 오히려 내가 신기하다는 듯, 요즘은 큰 수건 한 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말리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수건을 두세 장 쓸 필요도 없고, 샤워하고 나와서 한 번에 감싸는 게 훨씬 개운하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날 저녁, 괜히 우리 집 욕실 수건장을 열어봤다.

그 안에는 민박집에 준비해 둔 가지런한 흰 수건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다.

‘돌잔치’, ‘창립 기념’, ‘칠순’. 수건마다 다른 글자가 박혀 있었다. 색도 제각각이고,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어떤 건 유난히 도톰했고, 어떤 건 여러 번 세탁을 거친 듯 얇아져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돈 주고 산 수건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수건들은 저마다 누군가의 기념일을 품고 있었고, 나는 그걸 아무 생각 없이 꺼내 쓰고, 말리고, 다시 접어 넣어왔다.


그동안 나는 수건을 고를 때조차 아무 기준이 없던 사람이었다. 촉감이 어떤지, 크기가 적당한지, 그런 걸 따져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손님에게 내어줄 수건은 한 장 한 장 신경 써서 고르고, 두께와 촉감을 살피고, 먼지 하나 없게 각을 맞춰 접어둔다. 같은 수건이어도 더 보송한 것을 앞쪽에 두고, 조금 덜한 것은 뒤로 미뤄둔다. 누군가의 하루를 닦아내는 물건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타인의 하루를 닦아줄 때는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면서, 정작 내 하루를 닦는 일에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 여전히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쓰고, 조금 해진 수건이어도 별생각 없이 쓴다. 돌잔치 날짜가 큼지막하게 적힌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나는 오늘도 새하얀 민박집 수건을 가지런히 접는다. 손님에게 내어줄 수건은 늘 일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으면서. 아무런 사연도 드러나지 않은,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로.

반면 내 욕실의 수건들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누군가의 기념일이 적힌 채, 조금씩 닳고 해진 것들. 그 수건들은 일정하지도 않고, 보기 좋게 맞춰져 있지도 않다. 손님에게는 내놓지 않을 수건들이지만,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걸로 충분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커다란 샤워 타월을 몇 장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손님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한 장쯤은 나도 써볼 생각으로. 그래도 아마, 그 촌스러운 자수 수건들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여전히 손에 잡히는 건 그쪽일 테고, 별생각 없이 쓰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이에, 나를 위한 수건 한 장쯤은 따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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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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