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혼자 일하지는 않습니다.

by 이월


민박집을 하다 보면 가끔, 어떻게 이렇게 센스 넘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순간이 있다.

그날은 체크아웃 청소를 하러 거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평소라면 비워져 있어야 할 테이블 위에 낯선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불에 검게 그을린 토치 하나와 로또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쪽지에는 토치를 사용하다 본의 아니게 고장을 내버려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당장 변상할 현금이 없었는지, 쪽지 옆에는 이미 5등에 당첨된 5천 원짜리 로또 두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안함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니,

그 재치가 너무 대단해서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마당에서 불멍을 즐기라고 비치해 둔 토치는 사실 소모품이라, 고장이 나도 말없이 퇴실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고장 사실을 솔직히 밝히는 것도 모자라 '로또'라는 유쾌한 방식으로 미안함을 대신하다니.

토치가 망가진 건 당황스러웠지만, 손님의 센스에 그만 기분이 풀려버렸다.


물론 당장 오늘 입실할 손님을 위해 읍내 마트로 달려가 새 토치를 사 와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런 '기분 좋은 당황'은 민박집 운영의 피로를 씻어주는 비타민 같은 것이다.


혼자서 이 일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물건들에게 직함을 붙이기 시작했다.

청소기는 팀장, 세탁기는 묵묵한 실무자, 토치는 가끔 사고를 치는 현장 요원 같은 식으로.

누가 보면 우스운 상황극이겠지만, 그렇게라도 이름을 붙이고 역할을 나눠야 이 커다란 집이 덜 비어 보였고, 내가 덜 외로웠다.


그런데 그날은, 그 기분이 오래가지 않았다.

손님의 센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청소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우리 집 ‘최고 우수 사원’이자 ‘청소 팀장’인 청소기가 돌연 고장이 났다.

민박집 청소의 8할은 청소기가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는 녀석은 말은 없지만 묵묵히 제 일을 해내는, 나에게는 든든한 직원이자 이 집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인력이었다.

그런 청소 팀장이 쓰러져버렸으니, 나는 빗자루와 걸레 하나에 의지해 온 집안을 누벼야 했다.


평소 버튼 하나로 해결되던 일이 내 몸의 노동으로 넘어오는 순간, 이 넓은 집을 혼자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겁게 덮쳐왔다.

바닥을 한 번 쓸고, 다시 쓸고, 그래도 남아 있는 먼지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청소기를 돌리던 5분이면 충분했을 거실 바닥이, 빗자루질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처럼 느껴졌다. 기계가 대신해 주던 '일의 무게'가 그대로 손목과 허리에 전해지자, 혼자 운영하는 민박집의 막막함이 비로소 실감 났다.


다음 손님이 들어오기 전까지 청소를 마쳐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홀로 모든 공정을 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유난히 서글프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돌아가던 흐름이 한순간에 끊기자, 이 집이 얼마나 많은 ‘손’을 빌려 움직이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결국 A/S 센터에서 "새로 영입하는 게 낫다"는 판정을 받은 뒤, 나는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면접관의 자세로 돌아갔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랫동안 일을 맡겨야 할 동료이기에, 대기업 공채를 진행하는 인사팀장의 심정으로 후기라는 이름의 서류 전형부터 꼼꼼히 살폈다.


용량은 충분한지, 너무 시끄럽지는 않은지, 무엇보다 험한 시골 민박의 환경에서도 버텨낼 내구성을 갖췄는지가 가장 중요한 핵심 인재상이었다.

수많은 후보군을 제치고 신입 사원으로 최종 합격된 건, 투박한 외모의 노란색 업소용 청소기였다.

세련된 맛은 없지만, 압도적인 흡입력으로 먼지를 빨아들이는 녀석의 성능을 보니, 그제야 멈춰있던 집 안 청소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사장인 내가 매일 빗자루를 드는 정성도 중요하지만, 내 곁에서 함께 땀 흘려주는 튼튼한 '청소 팀원'들이 있을 때 비로소 이 공간은 생명력을 얻는다. 망가지고, 교체되고, 다시 들이는 이 반복되는 과정은 어쩌면 채용과도 닮아 있다. 함께 버틸 수 있는지를 묻고, 오래 곁에 둘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


새로 들어온 노란색 신입 사원이 우리 집 마루를 반질반질하게 닦아낼 때마다, 나는 이 녀석에게 큰 신뢰를 느낀다. 워낙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어서, 아무래도 조만간 초고속 승진으로 '팀장' 자리를 꿰찰 것만 같다. 혼자 운영하는 민박집이지만, 이렇게 든든한 팀원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여럿이 함께 일하는 기분으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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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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