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나간 날 머리가 정전된 날

by 이월

아침은 늘 그렇듯 단순하다.

민박집 청소하기 전, 몸 좀 풀 겸 근처 바닷가를 한 바퀴 돈다. 산책이라기보다 사실은 청소 시작을 미루는 몸부림에 가깝다. 청소라는 건 해도 티가 잘 안 나는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 일이니까.

그렇게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민박을 시작하고 난 뒤로 이건 둘 중 하나다. 끈질긴 광고 전화, 아니면 손님 전화.

체크아웃 다 된 시각이라, 나는 단정 지었다.

“또 광고네.”

그래서 괜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았다.

“사장님, 숙소 전기가 다 나갔어요.”

순간,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손님이었구나.

그 한마디에 아침의 평온이 그대로 날아갔다.

두꺼비집 문제이려니 짐작했지만, 손님이 확인해 보니 그마저도 아니었다. 머릿속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갑자기 전원이 뽑힌 것처럼 툭 꺼졌다.

일단 한전에 연락해 보겠다고 했지만, 속은 이미 복잡해졌다. 손님은 머리도 못 말린다며 불평했고, 나는 최대한 침착한 척 말했다.

“죄송해요. 체크아웃 시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비되시는 대로 나오세요.”


-


숙소로 차를 몰고 가면서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주말이라 전기업체도 쉴 텐데? 청소기도 안 돌아갈 텐데 걸레질로만 청소가 가능할까?

아니지, 문제는 청소가 아니지.

오늘 입실할 손님을 떠올리니 숨이 막혔다.

이 쌀쌀한 날씨에 보일러 없는 밤이라니,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조명도, 온기도 없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할 수는 없다.

그럼 다른 숙소를 알아봐 드려야 하나?

갑자기 당일에 숙소를 구할 수 있을까?

내 방이라도 내줘야 하나?

아니면 아예 환불을 해드리고 욕을 먹는 게 낫나?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건 내 노력으로 수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뒤져 읍내 전기업체 번호를 찾아냈다. 주말 아침이라 전화를 안 받으실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연결이 됐다.


“사장님,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저희 민박집 전기가 통째로 나갔어요. 손님은 계시고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거의 울먹이는 내 목소리가 안쓰러웠는지,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지금 바로 연장을 챙겨 숙소로 출발하겠다고 하셨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도 차에 올라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출장비가 얼마나 나올까', '대공사면 오늘 입실 손님은 어쩌지' 같은 걱정들이 머릿속에서 재난 영화를 찍고 있었다. 읍내 사장님보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손에 땀이 났다.

곧이어 혼나기 직전의 순간에 보이는 증상들이 내게도 보였다. 얼굴은 후끈거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머리카락 모공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숙소 앞 사거리에 다다랐을 때였다. 멀리 크레인차 두 대가 전봇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어...?”


곧이어 숙소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읍내 전기업체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사장님은 전봇대를 한 번, 나를 한 번 번갈아 보시더니 헛웃음을 터뜨리셨다.


“아이고, 사장님. 저기 한전에서 변압기 작업 중이네. 이 동네 다 정전이에요. 내가 손댈 게 없네!”


순간,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안도감과 동시에 밀려오는 이 엄청난 민망함이라니. 주말 아침부터 나 때문에 부랴부랴 달려오신 사장님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사장님은 “별일 아니니 다행이네, 허허!” 하고

쿨하게 차를 돌려 떠나셨지만,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작업 중인 한전차만 멍하니 바라봤다.

나 혼자 멸망 직전의 지구를 구하러 온 영웅처럼 비장했던 그 아침이, 크레인차 한 대에 너무나 허무하게 정리된 순간이었다.


-


손님께도 상황을 설명했고, 체크아웃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청소를 하며 생각해 보니, 정전보다 더 과했던 건 내 머릿속이었다.

차분하게 상황부터 파악했어야 했는데, 당황한 나머지 읍내 전기업체 사장님까지 부르며 일을 키웠으니까. 숙소 앞에 도착해 멀리서 전봇대에 매달린 크레인차를 봤을 때, 그리고 나 때문에 헛걸음하신 전기업체 사장님과 마주쳤을 때의 그 민망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그때는 심각하게 받아들였는데, 돌이켜보면 별일 아닌 상황에 나 혼자 호들갑 떨었던 하루였다.


-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건 이런 걸까?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불쑥 터지고, 손님은 늘 그 사건의 첫 목격자가 된다. 나는 그냥 연락을 받고 허둥대다가, 막상 시간이 지나면 심각했던 일도 별것 아닌 웃음거리가 된다.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때로는 노력이 아무 힘도 못 쓰는 순간이 불쑥 찾아온다. 정전처럼 말이다.

회사원으로 치면, 곧 시작될 발표를 앞두고 회의실 프로젝터가 갑자기 안 켜져서 식은땀 흘리며 난리 치다가 막판에 극적으로 화면이 켜지는 상황이랑 비슷하달까? 그 순간은 세상 끝난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어디서든 꺼내놓고 싶은 무용담이 되니까.


어쩌다 민박집 사장이 된 이상, 나는 앞으로도 이런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손님을 보내고 청소를 시작하려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메시지가 하나와 있었다.

한전에서 온 문자였다.

오늘 전기 작업 때문에 1시간 정도 정전이 있을 거라는 안내.

메시지를 자세히 보니, 도착 시간은 오전 9시.

딱 내가 바닷가에서

“오늘 청소 언제 시작하지…” 하고 빈둥거릴 때였다.

바닷가에서 빈둥거릴 때 그 문자만 확인했어도, 읍내 사장님께 간절하게 전화를 걸지도, 혼자 재난 시나리오를 쓰며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았을 텐데.

정작 정답은 이미 내 주머니 속에서 알람처럼 울리고 있었다.


… 나, 도대체 뭐 한 거니?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