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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Aug 01. 2024

꺽새끼 (3)

11.

할아버지는 집에서 밥 먹고 있다가 바로 근처에서 폭격 소리를 들었고 그때가 625 전쟁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만주 지린성에서 해방을 맞았고 두만강 회령을 따라 내려오셨다고 들었다. 할아버지가 전쟁 전에 살았던 연백군은 벼농사 지대이기도 하고 바다랑 가까워서 조기 몇 동씩 (한 동은 백 마리라고 한다) 잡아서 말린 뒤 여름 내내 먹었다고 한다.



12. 

외할아버지의 누님은 전쟁 전에 여경으로 경찰서에서 일하셨는데 당시 결혼 이슈를 핑계로 전쟁 1년 전에 일을 그만두셨다 했고 그 덕분에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당시에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인민군이 거의 다 죽였다고 한다.



13. 

외할아버지는 인민군, 중공군, 소련군에 대해 매우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정반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공군, 소련군은 도와준다는 빌미로 일반 시민들의 집에 무작위로 들이닥쳐 약탈하거나 강간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반면 미국군은 간식들을 많이 나눠줬고 할아버지를 비롯한 아이들은 미국군을 따라다니며 hello gum을 외치며 껌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그때 처음 먹어본 껌은 달큰하고 너무나 맛있었다고 한다.



14. 

인민군은 미국 비행기가 무서워서 낮에는 숲에 숨고 밤에 산을 타며 이동하고 자기네 말을 안 듣는 시민들을 총알이 없으니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밤에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찌르다 보니 심장이 제대로 관통되지 않아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죽일 때 입마개를 하고 손을 뒤로 묶었다고 한다. 당연히 찔릴 때 고통스러우니 다들 입마개를 꽉 물고 찡그린 얼굴로 죽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왈 시체는 얼굴부터 썩는다고 한다. 그리고 몸은 부패하며 부풀어 오른다고 한다.



15. 

해방 후에는 위생이 너무나 안 좋아서 마을에 장티푸스가 쓸고 가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고열로 일주일 앓다가 다행히 살아남으셨다고 한다. 장티푸스 증상은 머리가 빠져서 밤송이처럼 되고 고열도 동반하고 피부도 벗겨진다고 한다. 반면 북한은 일본이 중국 치려고 발판으로 삼았기에 각종 군수공장을 많이 지어놨기에 오히려 지금과 달리 잘 살았다고 한다.



16.

지금까지 설명을 안 했는데 제목이 꺽새끼인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다 보니 태어나서 6살까지는 외할머니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할아버지는 아마 소화 기관이 크게 좋지는 않은 거 같다. 그래서 식사 후에는 트림을 꽤 하시는데 꽤나 크고 몇 번을 연거푸 하신다. 당시 애기 때 내가 보기에도 좀 거슬렸나 보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하도 트림을 하다 보니 그게 거슬려서 꺽새끼라고 했다. 애기가 어떻게 이런 별명을 생각했는지 다들 어이없어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할아버지 할머니는 크게 꾸짖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때 잠깐 몇 번 그렇게 말하고 그때 이후론 한 번도 꺽새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17.

외할머니 집에서 살 때 아무래도 외할머니가 편해서인지 그때 당시에도 외할머니를 끔찍이 여기고 할머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반면 할아버지는 딱히 꾸짖거나 엄하게 하지 않으셨는데 뭔가 불편해서 심지어 할아버지랑은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고 할머니랑만 같이 잤다. 점점 커가며 명절에만 뵙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도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거 같다. 애기때랑은 다르게 성인이 되며 예전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주신다. 지금의 시리즈가 그렇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새삼 할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전혀 몰랐는데 다시금 돌이켜보고 나는 그 나이 때에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꾸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할아버지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도 정정하시지만 앞으로도 여생을 부디 건강히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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