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53
강산
창고에 넣어 둔 책상 서랍을 열었습니다
당신에게 쓴 손 편지가 진주처럼 종이함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 이제는 폐가라고 해야 맞겠다. 그곳, 창고에서 내가 쓰던 책상을 발견했다. 국어와 산수, 도덕 책이 놓였던 자리에 낙서가 보인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어제처럼 생생하게 올라오는 기억들에 잠깐 당황한다. 이렇게 멀리 왔는데도 기억은 늘 어제인 듯 팔딱이고 있다. 나는 가만 서랍을 열어본다. 구슬과 몽당 연필, 그리고 십 원 짜리 동전 몇 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누렇게 바랜 편지 한 장. 편지에는 서울 가서도 행복하고 꼭 연락하자는 내용이 삐뚤거리는 글씨로 담겨 있다.
기억이 불어온다. 그 아이였구나. 내가 3학년 때 서울로 전학간 여자애. 그 애한테 편지를 썼으나 전해주지는 못했다. 그 편지가 서랍 모서리에서 수십 년이 지난 채 나를 기다라고 있었다. 가슴이 아리면서도 고마웠다. 추억이 있어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