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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여행자 Jun 14. 2024

글 꽤나 쓰는 물고기, 문어文漁

대구 교동 젊음의 거리, 302호

여섯 시까지 교동으로 오세요.


대구 교동은 전자제품을 팔던 상권이 쇠락하던 와중에 다국적 음식점이 들어오면서 젊음의 거리가 됐다. 이제는 골목마다 빼꼼히 간판을 드러낸 가게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곳이 됐다. 부끄럼쟁이라 지나만 가곤 했는 데 지인이 좋은 곳에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요.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교동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숯불에 꼬치를 굽는 오사카의 뒷거리가 나타났고, 코너를 돌았더니 둥둥하는 재즈베이스 소리가 나는 상하이 신천지 골목이 나타났다. 가벼운 산책을 끝내고 카페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연락이 왔다.

(왼쪽) 숟가락에 올려 먹으면 된다        (오른쪽) 잘 삶아진 국내산 돌문어와 쌈들


이 집은 문어가 좋아요. 


문어숙회와 차돌박이 전골을 시켰다. 먹물을 품었다 하여 글 좀 꽤나 쓰는 물고기로 취급받은 문어文漁는 심해에서 몸을 드러내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해서 선비에게 인기 있는 식재료였다. 끓는 물에 데쳐 먹기 좋게 잘라낸 국내산 돌문어에 절인 배추김치, 기름장과 양념젓갈, 고추냉이, 야채싹이 함께 나왔다. 


(왼쪽) 리필할 땐 떨어져서 부추가 나왔다.      (오른쪽) 차돌박이 전골. 깔끔한 안주를 먹고 나니 도저히 못 먹은 아쉬운 메뉴


숟가락에 절인 배추 한 점을 깔고, 기름장에 담근 문어, 야채싹, 양념젓갈, 고추냉이를 야무지게 올린 뒤에 한입 먹으면 된다. 야채싹의 아삭함 뒤로 한국과 일본의 매콤함이 이어졌다. 부드러운 문어를 씹으면 기름맛에 풍요로워지다 어느 순간 팡! 하고 입안에서 감칠맛이 폭발한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시원한 맥주 한잔을 꿀꺽꿀꺽 마셔야 한다. 하아-. 문어가 눈물 날 만큼 맛있는 순간이다.

야채싹과 절인 배추를 리필해서 문어를 야무지게 먹었다. 맥주에 문어. 문어에 맥주. 이렇게 상큼한 안주를 먹었는 데 기름진 차돌박이 전골이 넘어갈 리가 만무했다. 다음에는 문어만 두 개를 시키자고 거국적인 합의를 보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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