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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준 Jun 25. 2024

이별

안개 쌓인 이곳을 얼마나 걸어왔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억나기로는 많이도 걸어온 듯하다.

내가 숨을 들이 마신만큼 그 수많은 하얀 알갱이들은 나의 폐 구석구석, 내 몸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 기분이 느껴진다.


그 느낌은 매우 불편하여 하나하나 어디를 후벼 파고 돌아다니는지 느껴질 정도이다.


때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내 머릿속을 구석구석 차지하여 내 머릿속이 마치 온통 하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다른 기억은 없어진 것 같은 기분까지도 든다.

때로는 부드럽게 내 손 끝과 허리춤에서 따뜻한 기분을 주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분명히 나이지만 내 안에 내가 아닌 내 것이 돌아다닌다.

여전히 덜어 내고 싶지만 덜어낼 수 없는 하얀 안개 알갱이들은 내 안에 가득 남아 어떠한 나의 날숨에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다시 해가 떠오른다.


내 안에 가득했던 알갱이들은 어느덧 가끔 느껴질 뿐 내 안에 남아 있나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그 안개 가득한 곳을 지나갈 때면 선명히 떠오른다.

그것은 여전히 나의 일부가 되어 내게 남아 내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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