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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준 Jun 02. 2024

면도기에 대한 단상

불편함과 즐거움의 그 가깝고도 먼 사이

이름하야 ‘안전면도기‘이다. 이름에서 풍겨져 오는 느낌 또한 굉장히 안전하기 그지없다. 구시대의 현대적인 발명품. 당시에는 굉장히 미래지향적일지라도 지금 우리에겐 너무도 촌스러움을 가득 안고 있다. -심지어 안전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나는 현대적인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빈티지한 아날로그함을 함께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미 익숙함에 안주하기보다는 그것이 흥미롭다면 혹시 불편함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편이다.  그것이 오래되고 아날로그 한 투박한 것들이라도 말이다.


나는 그러한 궁금증의 일환에서 남자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다중 날 면도기를 과감히 버리고, 구시대의 현대적인 발명품인 안전면도기를 구매했다. 일단 국내 상표인 도루코에서 나오는 안전면도기도 있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독일제 제품인 머큐어 제품을 구매했다. Made in germany 만의 외관에서 풍겨오는 투박한 이미지가 굉장히 남성스러우면서도 멋스럽다. 왠지 이걸로 면도하면 할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이 될 것 같은 기분마저도 들고 묵직한 그립감 또한 굉장히 만족스럽다. 막상 사용해 보면 스르륵 밀려나가는 절삭감 또한 삶에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요소가 될 만큼 참 흥미롭다.

면도날 또한 국내 이발소 등지에서 아직 사용하고 있는 도루코 면도날이 있지만, 여러 후기 – 당시에는 한국에 사용하는 사람이 드물어 외국 후기를 어렵게 찾아보고 직구를 해야 했다. -를 검색해 보고 러시아제 면도날을 구매했다.


명명된 이름이 안전면도기이지만, 요즈음 사용하는 면도기에 비하면 잘 베이기 일쑤이고, 사용하기가 그렇게 수월한 편은 아니다. 해서 찾아보고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전면도기는 다루는 힘이 중요하다 적절하면서도 드르륵 털이 깎여 나갈 정도의 힘과 살이 베이지 않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하며 살의 표면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며 깎아야 한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삼중 날의 절삭 원리는 털을 뜯어내어 절삭하는 반면 안전면도기는 바로 절삭하기 때문에 살의 베임에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단점 외에 많은 장점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뜯어내어 절삭하는 다중 날 면도기에 비해 피부트러블이 적다는 것이다. 단지 베어내는 것이기에 피부 염증을 덜 유발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안전면도기로 바꾼 이후로 면도로 인한 피부트러블이 현저히 줄어들기도 했다.


다중 날 면도기의 날은 나름 오래 쓰긴 하지만 그래도 그에 비해 가격이 매우 비싸다. 반면 안전면도기의 날은 아무리 고급 날을 구매하더라도 날 하나에 천 원을 넘지 않을 만큼 저렴하다. 처음에는 날 하나당 7일 이상을 쓰지 말라고 하여 상태가 어떠한들 무조건 바꿨는데, 오랜 시간 쓰고 보니 한 달도 더 버티는 게 안전면도기 날이다. 그러니까 다중 날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데 심지어 오래 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실로 이렇게 구시대의 발명품이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면도기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다. 경제 이론 중에 QWERTY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타자 자판 맨 왼쪽 상단의 영어 배열을 나열한 QWERTY라는 자판의 배열에서 딴 이론이다. 잠깐 이 이론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면. 시장원리에 따라 가장 훌륭한 제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우연한 사실’에 따라 어떤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편한 것보다 익숙한 것을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원래 키보드 자판은 더 편하고 수월하게 타이핑할 수 있을만한 배열을 고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자기가 쉽게 손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배열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쉽게 손상되지 않는 타자기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편한 배열을 사람들에게 제안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편한 것보다는 익숙한 QWERTY 자판기를 더욱 선호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다소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 다분히 참고 견디어 그 새로운 것에 대한 편함을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욱더 편함을 찾기 위해 얼마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소 불편하더라도 익숙한 채로 살아가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과 취미 등은 다소 불편함을 감내하고 이겨 내었을 때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함에 허우적거리며 새로운 삶의 재미를 그저 유토피아적인 환상으로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다. 아주 조금의 불편과 아주 조금의 시간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매일 새롭고 재미난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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