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와이프 타이틀 졸업하기

미국 대학원에 합격하다

by 반짝이는파도

미국에 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남편 주재원으로 왔어요"라는 말을 한국말로도 영어로도 수백 번도 더 했다. 그 말 밖에는 달리 나를 설명할 길이 없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렇게 소개되는 나 자신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미국에 온 첫날부터 지난 일 년간은 '주재원 와이프'로서의 역할밖에는 기대되지 않는 나와 나의 자아와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재원 와이프 비자는 소위 '식모비자'라고들 한다. 남편의 일, 물론 경제적으로 중요했고, 아이의 행복은 나의 책임 중 가장 큰 부분이었다. 나는 요리를 꽤 즐겼고 거의 매주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한식과 양식 등을 대접했으니 누군가는 내가 요리에 큰 취미를 갖고 있는 줄 알고 여러 요리도구들을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나에게 요구되는 주재원와이프의 자질, 요리와 운전은 철저히 수단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만으로 절대 만족할 수 없도록 태어나고 자라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미국 생활을 너무나 우울해한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 친구분께서 "너희 딸이 좀 이기적인 편이니?" 하고 물으셔서 엄마가 웃으며 그 정반대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분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네가 며느리 직장 때문에 거주지를 옮기게 되어서, 아들의 경력이 몇 달 정도 단절되는 것을 걱정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엄마는 "우리 딸은 미국에서 3년 넘게 일을 쉰다. 뭐 어떠니"라고 했고, 그 친구분은 "그렇네."하고 수긍하셨다고 했다. 아직 대한민국 기성세대에서 여자에게 남편과 자녀를 돌보는 일은 당연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고, 그 이상에 집착하는 일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나의 시어머니도 남편이 내가 공부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며느리는 이제 애 키워야지. 나는 합격 안 하길 바라고 있는데. 괜히 힘들잖아"라는 주어가 누구인지 모를 말을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나는 이 모든 현실이 지독히도 싫었다. 이렇게 누군가를 보조하는 삶을 살려고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일해온 것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배경으로 살기 싫었고, 남편과 결혼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장 피하고 싶은 건 지름길로 가서 만난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의 환경 속에 어느새 들어와있었다. 물론 삶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내려놓고 소소한 생활 방식에 충분히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내가 그럴 수 없었기에 부러워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향 문제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며 영어 팟캐스트를 들었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영어 유튜브를 듣고, 빨래를 개며 스픽을 하고, 링글을 통해 아이비리그 학생들과 화상영어를 했다. 시간이 나면 주변 도서관과 카페를 찾아다니며 매일 필사를 하고 토플 공부를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다니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에게 공부는 춤과 더불어 선택이 아니라 우울증과의 사투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래도 이왕 돈을 들여 대학원을 갈 거라면 이름 있는 곳에 가고 싶었고,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한 지 10년도 넘은 나에게 탑스쿨들이 요구하는 토플 성적은 꽤 높았다. 각 대학별로 요구하는 추천서 3장, PS(자기소개 에세이), SOP(학업계획서), CV(Resume)등 여러 서류들 중 토플은 그냥 시험 봐서 따면 되니 가장 쉬운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첫 시험에서 나는 멘붕에 빠졌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학문적인 단어들이 난무하는, 그것도 한 문제당 몇 페이지를 넘어가는 긴 지문들.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약하다는 Speaking 시험은 쉬지 않고 유창하게 내 생각과 주장을 근거를 갖춰 말할 수 있어야 했고 대학 강의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요약해 내기를 요구했다. 나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엉덩이 무겁게 붙이고 공부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냥 준비가 덜 된 채로 무작정 시험을 보러 다녔다. 홈토플과 오프라인 토플 시험을 총 일곱 번을 치렀다. 난생처음 가보는 동네에 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시험을 보고, 새벽에 집을 나서고, 집에선 서버오류로 무려 7시간이나 앉아서 시험을 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광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토플 시험 한 번 보는데만 40만원 가까이 들었고, 에세이 첨삭과 대학 졸업 성적표 공증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는데도, 함께 미국에 나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미안하니 결과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라며 지지해준 남편에게 고맙다.


추천서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나에게 가장 난감한 요소였다. 대학 졸업한지 12년이나 지났는데, 그동안 연락 한 번 안드린 교수님께 나의 추천서를 부탁드리기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한국에 들어가 모교에 찾아가 얼굴을 뵙고 부탁을 드렸고, 다행히 교수님은 반갑게 맞아주시며 박사까지 따고 와서 교수루트를 밟으라며 조언해주셨다. 여전히 너무 멋진 직업 여성의 모습이셨다. 또한 번거로운 일인데도 기꺼이 추천인이 되어 주신 직장 상사분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추천서 관문을 넘겼다.


여러 서류를 준비하며 나는 각 대학들의 입학요강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각 대학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도 나오지 않는 정보가 많았으며 학비, 학위 취득 기간, 학교 위치, 요구 조건을 고려하고 각 학과의 연구 방향을 나의 경력, 관심사와 접목시켜 에세이에 반영해야 했다. 나의 상황에 맞는 대학원을 찾는 것이 가장 막막하고 어려운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가정은 부자가 아니며, 미국 학비가 만만치 않다 보니 학비에 대한 걱정이 빠질 수 없었다. 우연히 내가 가고 싶은 대학원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연락이 닿아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나처럼 한국에서 온 사람이 대학원 석사 과정만을 밟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박사 또는 석박사 통합과정은 보통 연구원의 역할을 하며 학비를 풀펀딩 오퍼를 받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석사생, 특히 국제학생에겐 장학금을 주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큰돈을 투자하여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유지하고 있는 직업이 있으며, 미국 생활이 끝나면 돌아가 복직할 것이 분명하고, 다만 이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고 싶은 것뿐이라면, 억대의 학비를 들여 석사 유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냥 '나 여기서 석사 땄어요'하고 얘기할 네임밸류일까. 박사까지 5년 이상 공부를 연장해 미국에 남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학위를 발판 삼아 미국에서 취직을 할 것도 아니었다.


교육대학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연구 중심, 그리고 실무 중심. 연구 중심학교는 대부분 명문대이고, 학비가 억대에 달하거나 그 이상이며, 5년 이상의 박사과정이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깊고 깊은 연구와 이론을 파고들어 어떤 결과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의 꿈을 그리거나 다른 전문직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다. 반면 실무 중심 학교는 대부분 이미 교사생활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퇴근 후 수업을 듣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후자와 같은 대학원 지원 과정에서 교수님과 줌 미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해당 학과들은 대부분 해당 주 교사자격증이 요구되며, 풀타임보다는 파트타임, 온라인 수업으로 주로 진행되었다. 두 가지 모두 나의 상황에는 정확히 들어맞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의 LA 주재원 생활 스트레스가 상사로 인해 극에 달해 뉴저지로 옮기게 되면서, 내가 목표로 했던 UCLA 또한 멀어졌다.


그러다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을 알게 되었다. 해당 학과는 뉴욕주 교사자격증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학비도 다른 학교에 비해 저렴했고, 평판도 좋았으며, 맨해튼 한복판에 있어 위치도 좋았다. 무엇보다 커리큘럼이 교육심리에 대한 평가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실용적인 내용이라 마음에 들었다. 교육학과에 지원하는 석사생들의 대부분은 이미 뉴욕주 공립교사이거나 교사를 지원하는 분들이었다. 알고보니 이 학교는 뉴욕주 공립교사를 최대로 배출한 학교라고 했다. 여러모로 핏이 맞아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고, 몇 달 뒤 결과 메일이 왔다. 메일을 열기 전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하느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의 모든 과정을 아는 남편은 나보다도 몇 배로 기뻐했고, 부모님과 친구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복잡 미묘한 심경에 휩싸였다. 더 이상 내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으로 무기력하게 집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무언가 배우고 다양한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내가 과연 영어로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고 발표를 하고 논문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내가 합격한 학교가 과연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축하받을 만큼 좋은 학교일까 하는 의구심까지.


지금의 나의 감정이 어찌 되었든,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해 부딪혀 보는 것을 택할 것이다. 얼마 전 정독한 책 '될 일은 된다'에서 소개한,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고 그 일이 생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삶의 흐름에 온몸을 맡기는 '내맡기기 실험'에 나를 최선을 다해 투입해 볼 생각이다. 삶이 나를 이끄는 대로, 아무런 저항 없이 흔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삶을 실천해보고 싶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선택하는 대로.


오늘도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게 만들어가는, 세상의 모든 주재원 배우자분들을 응원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립된 곳에서의 관계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