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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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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이림 Jun 07. 2024

병실 이동하는 날

엄마와 딸 I 2024.5.22

"드르렁 쿨쿨 드르렁"

우리 엄마는 예전부터 코골이가 심했다. 새벽이 천둥번개가 무서워 엄마 옆으로 도망갔었는데 엄마 코 고는 소리가 더 무서워서 결국 거실 소파로 갔을 정도다.

암 수술을 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을 때도 엄마의 안정과 옆사람의 쾌적한 수면을 위해서 2인실로 신청했다. (1인실을 하고 싶었지만 하루에 약 60만 원인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2인실로 결정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입원했던 7일 동안 옆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 없이 편안하게 병실을 사용했다. 그때만 해도 약간에 코골이는 있었지만 잠자는데 거슬리지 않아서 이제 코골이가 괜찮아졌나?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왔어!"

내 연차기간이 끝났고 뒤이어 동생이 연차를 사용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동생과 보호자 교대 후 며칠 뒤 엄마와 동생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우리는 지방에 살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기는 힘들었기에 병원에 도움을 받아 상주 보호자가 가능한 요양병원을 예약했다. 첫 번째로 방문했던 요양병원은 사진보다 시설이 낡고 허름했었고, 암보다는 노인 위주에 요양병원이었으며 노크 없이 병실에 들어와 병실 문을 활짝 연 상태로 엄마의 수술부위를 촬영하는 등 큰 수술을 끝내고 잠시 쉼이 필요한 엄마에게는 그곳에 시설과 환경이 엄마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주에 내려와 일을 하던 중 동생에게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근처에 있는 시설 좋고 깔끔한 요양병원들을 급하게 찾아 문의를 했다. 우리가 최종 결정한 곳은 산부인과전문의가 있으면서 시설도 깔끔하고 보호자도 상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보호자가 상주하기 위해서는 1인실 병실을 신청했어야 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돈보다는 엄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자고 모든 가족이 뜻을 모았고, 그렇게 엄마와 동생은 첫 번째 요양병원 입원 4시간 만에 다른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깔끔한 원룸 같아, 밥도 주고 편안하다"

1인실 병실은 호텔과 집 사이에 편안함을 주었다고 한다. 병실 내 냉장고는 우리 집 냉장고보다 좋았다. 영상통화를 하며 병실 이곳저곳을 구경했는데 멀리 있는 나도 안심이 될 정도였다. 동생은 엄마와 일주일 동안 주변 산책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고, 동생 또한 직장이 있었기에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큰 이모가 육지(제주도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올라간 지역을 육지라고 표현한다.)에 살고 계셨기에 동생이 제주도 내려오는 날에 맞춰 동생과 교대해 주셨다. 엄마와 큰 이모는 사이가 매우 좋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큰 이모를 직접 만났던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래서인지 큰 이모가 엄마와 함께 있을 동안 엄마 표정이 정말로 편안해 보였고, 큰 이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지난 몇 년간 평소에도 자주 만났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3인실로 이동할 수 있나요?"

이모에 휴가기간이 끝나는 시점과 3인실 병동이 비는 시기가 겹치게 되었고 엄마는 혼자 병실에 있기 심심할 것 같다며 3인실 병실로 이동을 요청했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3인실 병실에는 엄마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엄마는 혼자 쓸쓸하게 3인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암 수술을 받았던 병원에 검사를 받고 왔고, 간호사선생님께 요청해 4인실로 이동했다. 새롭게 들어간 4인실은 3인실보다 책상도 넓고 사람도 있었다. MBTI 극 E인 엄마는 함께 병실을 쓰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는지 대화했던 내용들을 가족톡에 올려주었다.


"혹시 잠시 상담 괜찮으세요?"

4인실에서 하루가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옆침대를 사용하셨던 분이 코 고는 소리에 몇 번 잠에서 깼다고 하셨다. 수술 이후 며칠 동안 코 고는 소리가 많이 줄어들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컨디션 회복을 하니 코 고는 소리도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그리고 나중에 큰 이모께 들은 이야기지만 큰 이모와 함께 병실을 사용했을 때도 코 고는 소리가 약간 있었다고 전달받았다.) 놀란 마음도 잠시 상담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시간 괜찮으신지 여쭤보셨고,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4인실에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조심스럽게 병실 이동 요청을 하셨다. 당연히 힐링프로그램이나 치료 관련 예약 상담일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크게 당황을 하셨지만, 가족톡에는 덤덤하게 이런 사유로 인하여 병실을 이동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엄마 이제 혼자 3인실 쓸 거야"

병실을 이동하게 되었다는 문자 이후로 잠시동안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엄마와 27년 함께 살아온 나는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3인실을 혼자 사용하게 되었지만 언제 또 누가 들어올지, 민원이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은 가슴 깊숙이 숨겨둔 채 엄마에게는 혼자 방 쓰면 전화도 마음껏 할 수 있고 화장실도 엄마 혼자서 쓸 수 있다고 혼자 사용하는 게 좋은 이유를 수십 가지 말하며 놀란 엄마를 위로했다. 3일 동안 아직 완벽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3번 병실을 이동한 엄마를 생각하니 옆에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과 동시에 앞으로 또 병실을 옮겨야 할 수 도 있다는 걱정과 1인실 비용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엄마가 사용하는 3인실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병실 이동 비하인드_2024.5.28


"엄마랑 동료네"

엄마는 새롭게 이동한 3인실에서 빠르게 적응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한 산책 후 족욕을 한 뒤 다시 병실에 돌아와 아침을 먹는 루틴도 생겼다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병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우려했던 걱정과는 달리 그 환자도 엄마와 똑같이 4인실 병실에서 코골이가 심해 상담실로 불려 갔고, 그 결과 엄마 옆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엄마는 더 이상 본인의 코골이로 인하여 불편해하는 사람도 없고, 불편하지도 않아도 되는 상황이 와서 다행이라고 하셨고, 우리 가족도 차라리 옆에 코 고는 사람이 들어와서 안심되었다. 아마 엄마의 병실에서는 밤새 합창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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