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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May 28. 2024

금요메이트

정확히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이었다.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이었기에 학교가 마치자마자 기숙사로 달려갔다. 할 일은 모두 끝났고, 저녁까지 긴 잠에 빠져들 계획이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온 탓인지 기숙사는 텅 비어 있었다. 방 역시 아무도 없었다. 사람 없는 기숙사에서 혼자 독차지할 낮잠의 황홀함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가방을 대강 던져두고 2층 침대로 올라가려던 순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금요일의 룸메이트를 마주쳤다. 연갈색 작은 몸통과 길고 늘씬한 다리를 가진 녀석. 꼽등이였다.


녀석을 본 순간 금요일의 달콤함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꼽등이와는 구면이었지만, 이전과는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녀석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벽은 내 침대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행태를 눈으로 좇기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놀란 나머지 눈알을 굴리는 것 외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 뱃속만큼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공간인 침대에서, 낯선 사람 다음으로 위험한 존재인 꼽등이가 활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위치마저도 녀석이 완전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섣불리 벽에 대고 공격했다가는 점프력이 좋은 녀석이 내 침대로 안착해 이불 사이에 숨어버려 도망칠 공간을 빼앗아 버린다. 꼽등이 안에 기생충이 있어 맨손으로 잡지 말라는 섬뜩한 글이 떠올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하물며 꼽등이의 천적도 없었다.


오로지 나와 그의 싸움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했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온 신경을 녀석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녀석은 침대 아래쪽에서 출발해 천장 끄트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천장까지 올라갈 수는 없을 테니, 그대로 벽 끝을 찍고 바닥으로 내려오면 내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예상대로 단거리 달리기 경기처럼 질주하던 녀석은 천장에 닿자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점이 있었다. 녀석의 행선지가 내 침대라는 점이었다. 막아 세우기도 전에 꼽등이 선수는 벽과 침대 매트리스 사이를 통과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처리하지 못하면 침대를 점령당한다. 머리를 굴리는 동안 몇 초가 더 흘렀다. 녀석은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사이 틈에 갇혀 있음이 분명했다. 숨 막히는 신경전이 시작됐다.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찾아 쥐고, 조심스럽게 2층 침대로 올라갔다.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제일 먼저 보이는 이불을 걷어 올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있는 베개도 과감히 침대 밖으로 던졌다. 역시나 깨끗했다. 추측대로 꼽등이는 매트리스 틈새에 있을 것이다. 침대의 네 면 중 녀석이 있을 만한 너비를 가진 곳은 맨 위쪽 틈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위치가 그즈음이었으니 확실했다. 여기서 매트리스를 밀어 충격을 가하거나 얼굴을 들이밀면 녀석이 놀라 튀어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럼 내 심장도 덩달아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셋을 세고 침대 끝으로 기어가서 매트리스 끄트머리를 잡아 올렸다. 


3,

2, 

1...


.... 텅 비어 있었다. 


당혹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다시 불안이 엄습해 왔다. 적어도 내 침대에 갇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행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이상 어디서 깜찍하게 재등장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낱 작은 생명체가, 인간 하나를 몇 분째 끙끙대게 만들다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더 늦기 전에 이 전쟁을 끝내고 낮잠을 자야 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자리를 잡으려던 그때, 옅은 갈색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1층 침대 옆 벽에서 내려가고 있는 녀석이었다. 내가 매트리스에 집착하고 있던 사이 유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녀석은 빠르게 아래로 가다가도 방향을 틀거나 우뚝 멈춰 서서 더듬이를 춤을 추듯이 놀려댔다. 가느다란 더듬이가 꿈틀댈 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꿈틀거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드디어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1층 침대와 바닥 사이로 숨어든 것처럼 보였다. 

이제 싸움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침대 위에 던져둔 빗자루를 집고 공격 태세를 갖췄다. 바로 다음 순간 녀석이 침대 밑에서 달려 나왔다. 


지금이다!


빗자루를 가로로 뉘어 있는 힘을 다해 꼽등이를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빗자루를 들추니 녀석이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몸에 들어간 힘이 스르르 빠졌다. 꼽등이 녀석은 뒤집어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나의 승리를 확신하고 청소를 위해 쓰레받기로 그것을 쓸어 담으려던 그때였다.


죽었다고 생각한, 이 미친 꼽등이가 다시 일어나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녀석은 죽은 척하는 연기의 고수였다. 손과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고, 위기감을 느낀 녀석은 처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닥을 활보했다. 이제 나는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았다. 살생한다는 죄책감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꼽등이가 어디 있는지 보지도 않고 바닥을 마구 쳤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야 녀석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은 방금 전의 나보다 조금 더 끔찍한 상태로 뻗어 있었다. 이전의 충격으로 수습하기가 두려워져 가둬 두기로 했다. 죽은 녀석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일어나 얼굴로 달려들 것만 같은 느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책상에 올려진 원기둥 모양의 고구마 과자 통이 눈에 띄었다. 급한 대로 남은 과자 몇 개와 부스러기를 입안에 욱여넣고 통을 뒤집어 그것을 덮어 놓았다. 책장에 있는 책도 가져와 그 위에 쌓아두었다. 무덤 위에 고인돌을 쌓듯이, 나름의 장례 의식이자 불안함을 없애기 위한 장치였다. 그제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충(蟲)돌의 해체는 용감한 인간 룸메이트가 돌아오면 부탁할 생각이었다. 나를 한 시간가량 떨게 만든 일일 룸메이트에게 작별을 고하고 침대로 다시 올라갔다. 사람도, 곤충도 없는 방에서 금요일을 만끽할 시간이었다.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 눈이 금세 문을 닫았다. 

잠결에 침대 아래에서 틱...틱...거리며 무언가 좁은 곳에서 뛰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작은 악몽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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