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대한 잡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주의자가 있다.
식성에는 채식 주의자와 육식주의자 잡식주의자가 대표적일 것이다.
운동에는 무산소운동주의자와 유산소운동 주의자가 대표적이다.
책에도 소설주의자 또는 정보를 주는 책을 읽은 정보 주의자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하게 아무거나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부분에서는 나는 완전한 잡식주의자다.
어려서는 주로 소설을 많이 읽었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만화나 무협지도 잠깐 읽기는 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뭐 그래도 남들 읽을 만큼 읽었다.
소설도 여러분류가 있다.
달콤한 로맨스 소설 추리 소설 판타지 소설 역사소설 또는 문학소설 그리고 고전문학소설 등등
소설은 인간의 삶의 축약 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숫자만큼 다양한 삶이 흔적이 남기는
것이니 다양한 분류의 소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보를 주는 소설도 다양한데 내가 주로 읽은 것은 경영에 관련된 소설들이다.
기업경영에 관한 것을 소설로 만든 것이나 마케팅에 관련된 것들을 소설로 만든 것 또는 경영자의 일대기를 소설처럼 쓴 것들이다.
나는 잡식주의자답게 모든 소설을 다 읽는다.
고등학교 때는 주로 사회과학서적이라고 분리는 류의 철학이나 정치 경제에 관한 책을 읽었다.
대학에 가서도 주로 그런 책들을 읽었지만 시와 소설도 많이 읽었다.
군대에 가서도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 쓰레기장에서 주운
창작과 비평 1970~1980년까지의 단행본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한 때 자동차 정비센터에 장비를 판매하는 대리점업을 했기 때문에 자동차 정비에 관한 책들도 꽤 읽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전혀 읽지 않을 것 같은 오토메티 미션에 관한 약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기도 했고 전기와 전자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는데 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전자제처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카센터 사장들에게 전자제어 자동차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국내 및 해외 마케팅 관련 일을 하면서 주로 고개관리와 마케팅에 관한 책들을 봤다.
물론 인터넷의 원리 포토션 일러스트 html 등등 필요한 것들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자상거래에 관한 책들도 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녹색연합 책 읽기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프리첼에 있는 모임이었는데 내가 왜 거기에 가입했는지 경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당시엔 내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 일을 하던 때였고 유기농업에 관심은 많은 시기였다.
유기농업 정농 야마기시즘 자연농업 등등 여러 가지 유기농업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었다.
아마도 검색을 해서 찾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모임에 가입하면서
이반일리치나 아룬다티로이의 책들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일본에 있을 때는 주로 전자책을 읽거나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읽었다.
그중에 가장 생각나는 책은 녹색평론의 김종철 님이 쓴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한국에 돌아와 녹색평론의 정기구독했다.
한 때는 구례에서 녹색평론책 읽기 모임을 3년 정도 진행했는데 참여한 사람은
나와 곡성에 사시는 분 한 분뿐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에 왔을 때가 2004년이었다. 그러니까 20년 전이다.
당시에 지리산으로 여름휴가를 와서 우연하게 자연농업 사무실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구입한 책인 조한규의 자연농업이라는 책이었다.
화학농약과 비료가 없으면 농사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시대였기에 그의 책은 혁명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주로 야마기시즘에 기원에 양계에서 출발한 유기농업 관련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점에 서서 책 한 권을 읽은 기억이 많이 있기도 하지만
차를 구입하고 차에 앉아서 끝까지 읽은 책은 이 책이 유일했던 것 같다.
그만큼 당시에 나에게 파격적이었다.
몇 해전 누군가 사무실에 찾아와 빌려 갔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찾지도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시작한 일이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온라인 사이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일본에 있을 때도 모바일 사이트를 기회하고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작하는 일이다 보니 웹사이트 기획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은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기도 하고 서평을 쓰기도 했는데 당시에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면 책을 또 보내주기도 해서 그 책들을 읽고 서평을 쓴 것들도 몇 편 기어기 난다.
[지금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양극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양극화는 말 그대로 양쪽 삶의 모습이 극한으로 다른 것이다. 어떤 이는 몇 억짜리 집이 작아서 이사를 가지만 어떤 사람은 천만 원짜리 전셋집을 날려 자살을 하기도 하는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양극화 시대의 모습이다.
빈부의 격차로 이뤄지는 양극화 말고 또 다른 양극화가 있다. 그것은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다. 도시는 세련된 이미지와 편리한 생활 그리고 더 나은 교육과 취업을 보장하고, 많은 자본의 투자로 인해 기회의 땅이 된 반면 농촌은 오래된 이미지와 불편한 생활 그리고 적은 직장과 낮은 교육 여건, 적은 투자로 인해 기회라는 새가 떠나 버린 낡은 곳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에서 농촌에 대해 관심을 갖는 때는 농민들이 농토에 있을 때가 아닌 아스팔트 거리를 매울 때다. 또 농촌은 고향의 향수를 팔고, 도시에 살고 있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관심을 충족해 줄 방송프로그램에서나 찾아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두레, 농민의 역사>라는 책 한 권이 전해진 것은 한 달 전이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농민의 역사라는 낯설지만 결코 싫지 않은 주제가 나를 흥분하게 했다. 그래 언제 농민의 역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기록되어 본 적이 있던가? 어디 한 번 읽어 보자.
"구상에서 농민만큼 보편적인 존재가 없는 반면 그만큼 조명을 받지 못하는 존재도 드물 것이다" - <두레, 농민의 역사> P.32
삼국사기를 썼던 김부식이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밥 먹고 살기는 매한가지인데 농민의 역사가 우리에게 조명받은 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었다. 농민이 생산한 밥 먹는 사람들이 그 밥을 생산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이 그동안 우리 역사였던 것이다.] - 오마이 뉴스에 실린 서평의 일부 -
우리는 삶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이미 그려놓은 그림 위에 다시 기름종이를 올려놓고 베끼는 작업에 불과할지 모른다. 부모들은 돈을 잘 벌 수 있는 소수 잘 나가는 대학의 좁은 문으로 아이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학원에 집어넣는다.
자연과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할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되도록 양성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재미가 없으며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지도 못하고 또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한 번 학교라는 문에 들어서면 짧게는 12년부터 길게는 20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날 자기가 이 문을 나서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그 교육이라는 것이 자유와 행복을 포기하고 배워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평가기준은 모호하다. 현대 사회에서 그것에 대한 완벽한 평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졸업 후 돈을 잘 버는 가에 있다. 행복하냐가 아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인생과 잘 나가는 소위 몇몇의 인생 베끼기에 여념이 없다. 새로운 패션이나 명품(사실 명품이라는 것은 얼마나 웃긴 것인가. 이 사회에서 그것은 신발이나 옷 구두 핸드백 용도 이상의 가치가 없다. 그것이 그 가격을 받아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소비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돈을 벌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돈을 벌지 못하면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절망한다.] - 오마이뉴스에 쓴 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6901
처음 몇 편의 시를 읽고 나서 그대로 두었는데 어느새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그런데 어젯밤 빗소리에 놀라 잠을 깨 읽었던 것이다. 박남준 시인이 모악산에서 13년을 살면 썼던 시집이라 한다.
그와 술을 마시면서 나누던 이야기 중에 왜 모악산방에서 지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돈을 쓰지 않으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빈집에 찾아 들어가 살았다는 것이다. 한 달에 몇 백 원에서 몇 만 원을 써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모악산방에서 살던 그는 몇 해 전 지리산골 악양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나는 그와 몇 번 만났다. 한 번은 그의 집에서 밤새워 술을 먹기도 했고, 한 겨울 모닥불을 피워 놓고 술과 함께 그의 노랫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지리산에 울려 퍼지던 그의 목소리는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이루지 못한 애달픈 사랑 노래처럼 들렸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42756
이런 책 이외에도 몇 편의 독서평론을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고 지금 편집인으로 있는 지리산인에 쓰기도 했었다.
요즘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우주에 관련된 책들이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군대에서 읽었다.
그리고 최근에 조금씩 다시 읽고 있는데 좋은 책은 다시 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사진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2008년에 산골의 작은 집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어설프게 조경이라는 것을 해봤다.
그러고 나서 조경에 관련된 여러 책을 읽기도 했다.
내가 처음 조경에 관련된 책을 읽은 것은 매형 때문이다.
매형은 보길도라는 완도의 섬마을에 살고 있다.
보길도 예송리에 처음 갔을 때는 겨울이었다.
하지만 제주도가 보이는 섬답게 보길도는 따뜻한 곳이었다.
보길도 산에는 지천을 난이 있었다.
매형과 함께 난을 채취하러 간 기억이 난다.
매형 집에는 한군 난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 책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무에 관한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이 책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누나가 구입했던 아마도 대학교 교재였을 것이다.
임경빈 교수의 나무백과라는 책이 처음이었고 1.2.3편을 읽었고 최근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 다시 읽어본 기억이 난다. 물론 다 읽지는 않고 대충 봤다. 추억의 부스러기를 생각하면서..
물론 이런 책들 말고도 논어 맹자 순자 한비자 등등의 책들도 즐겨 보기는 하고
사실 철학책을 꽤 많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마르크스나 레닌 헤겔 포이에르 바흐 그도 아니면 플라톤 칸트 니체의 책들을 보기도 했지만 논평을 할 만큼의 실력이 되지는 않는다. 최근 인기가 있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을 읽기도 했지만 난해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언어학에 관심이 있어 소쇠르의 언어학에 심취한 적도 있다.
언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인지 우연의 산물인지 참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 구조주의(構造主義, 영어: structuralism)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친 철학의 한 조류로,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관점이다. 본디 언어학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언어, 문화,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유명한 접근 방법들 중 하나가 되었다. 구조주의의 출발은 보통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 연구라고 보며, 프랑스 학자들이 소쉬르의 구조적 접근법을 다른 학문에 적용시키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구조주의(構造主義, 영어: structuralism)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친 철학의 한 조류로,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관점이다. 본디 언어학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언어, 문화,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유명한 접근 방법들 중 하나가 되었다. 구조주의의 출발은 보통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 연구라고 보며, 프랑스 학자들이 소쉬르의 구조적 접근법을 다른 학문에 적용시키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 위키백과
10년 전에 누나와 조카가 한 번에 떠난 적이 있어 죽음에 관한 책들을 꽤 읽기도 했는데 그중에 발견한 책이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였다.
인간은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절대적 진리에 벗어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는 죽음에 관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롤랑바르트의 슬픔의 철학 애도일기라는 책을 읽어 보면 애도라는 것은 슬픔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를 잃은 자식은 애도기간이 끝나면 꽤 빠른 시간에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도기간은 끝이 없다.
책 자체체 쉽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의 찾아보면 강의가 나오는 책을 읽기보다는 강의를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식물의 책을 읽고 있다. 어제는 바다에 관한 책에서 뱀장어에 관한 부분을 읽었다.
뱀장어는 사실 우리가 자주 먹는 생선이지만 그 탄생은 비밀일 밝혀지지 않는 동물이기도 하다.
내 고향은 전북 김제인데 동진강과 꽤 가까운 곳이다.
동진강은 서해바다의 바닷물과 동진강의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고 그 말은 바다 어디에서 살다가 돌아오는 실뱀장어 새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어려서 실뱀장어를 잡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 뱀장어는 살 곳을 정하면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10년에서 20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천키로가 떨어진 바다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동안 한 번도 먹이를 먹지 않고 3천 킬로나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로 긴 여행을 따나고 거기서 산란을 하고 죽는다. 그러면 그런 실뱀장어는 3천 킬로를 여행해 다시 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수족관이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뱀장어는 60년에서 150년을 산다고 한다.
주로 이런 내용인데 사실 이미 여러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기도 하는 내용이었다
오늘 일근 책은 식물의 책이라는 책인데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읽어서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책을 재밌게 써서 그런지 읽는 재미가 있어서 반절 정도 읽었다. 물론 끝까지 읽은 생각은 없다. 소설이 아니라 결말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읽은 필요가 없는 탓이다.
인간의 삶은 하나로 해결될 수 없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은 다양한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가능성이 넓혀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책을 편식하면 편견이 생기기 쉽다.
이왕이면 잡식주의자로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