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한국에 온 재일 교포 강준은 간첩으로 몰린다.
도쿄발 한국행 비행기 한 대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4월인데도 찬바람이 불었다.
꽃샘추위가 왔다며 다시 겨울이 온 것 같다는 방송을 한 그날 아침이었다.
남녘에는 벚꽃이 피었다고 했던 것이 어제였는데 오늘 아침에 눈이 올 것 같다는 예보를 했다.
강준과 하나는 이날 한국에 도착했다.
도쿄와 서울이 이렇게 다른가? 강준은 서울 추위가 낯설게 느껴졌다.
도쿄 공항을 떠날 때만 해도 강준은 반팔을 입고 있었다.
강준과 하나가 한국에 올 결심을 한 것은 곧 있을 결혼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국이라는 곳에 한 번에 가이겠다고 강준이 이야기했을 때
하나도 “조국”이라 단어를 머릿속에 그려 봤지만 뚜렷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조국이라는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도쿄에서 만났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둘은
한국 유학생을 돕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 단체에서 둘은 만났다.
같은 재일교포에 오사카 출신이라서 그런지 쉽게 친해졌다
강준은 할아버지 고향에 가볼 생각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남원 가는 버스표 주세요.”
강준은 능숙한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하나는 자신의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강준의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강준의 부모는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했다.
그래서 강준의 한국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아빠는 한국인이었지만 엄마는 일본인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남원 가는 버스를 탄 강준과 하나가 남원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일단 여기서 하루 자자"
강준과 하나는 남원 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하다는데?
“하나, 너 추어탕이 뭔 지 알아?
“몰라요."
“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어요? 강준 씨는요?
사실 강준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과 하나는 여관 주인이 추천하는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강준은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었다. 하나는 먹지 않았다. 하나는 따로 나온 밥을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남원 요천 강변을 걸었다.
강변엔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벚꽃이 강 양쪽으로 등이라도 켠 것처럼 환하게 피어 있었다.
분홍색 벚꽃이 강을 따라 흘러서 강물이 분홍색처럼 보였다.
도쿄는 보름 전에 벚꽃이 졌다.
“한국에도 사쿠라가 많네요" 하나가 놀란 것처럼 말했다.
“하나야…. 왕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이야. 우리 꽃이라고….”
강준은 우리 꽃이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이야기하고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얼굴 위로 벚꽃 잎이 떨어졌다.
꽃처럼 예뻐 보인다고 강준은 생각했다.
남원은 남쪽이라 서울보다는 좀 따뜻했다.
얼마쯤 걷고 나니 광한루가 보였다.
춘향전 알지? 하나야
하나도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던 춘향전이 생각났다.
여기가 그곳이군요.
맞아…
여기가 춘향이와 이도령이 놀던 광한루야…
강준과 하나는 책으로만 봤던 광한루를 쳐다봤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광한루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가자… 늦었어.”
여관에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쉽게 잠들었다.
강준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이었다.
하나를 깨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여관을 나왔다.
요천강을 따라 강준은 걸었다.
이 강물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강준은 지나가는 남자에게 물었을 때 그 남자는 짧게 이야기했다.
“지리산에서 흘러나와요. “ 남자는 손으로 먼 산을 가리켰다.
큰 산이 남원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저 산이구나….”
아버지는 가끔 지리산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할아버지 고향에 있는 산이 지리산이라고
그 산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 물도 지리산에서 흘러오는구나!”
강준은 강으로 내려갔다.
흘러가는 물을 손으로 쥐었다.
4월의 강물은 아직 얼음처럼 차가웠다.
강준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불안했어요"
“어… 앞에 강가에 가봤어"
“산책하러"
“그랬군요"
남원 시내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인월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 버스 터미널에는 등산객들과 학생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속에서 강준은 자신이 한국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여기가 조국이구나! 하나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땅에 있음을 확인했다.
조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는 말을 사용하는 땅
여기가 조국이 맞는 것일까? 하나는 익숙하지 않은 말들 속에서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둘은 강준의 할아버지 고향 인월로 향했다.
강준과 하나를 태운 버스는 남원의 평야를 지나 가파른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원재]라는 팻말이 보였다.
높은 산길 사이로 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버스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버스는 좌우로 흔들렸다. 하나는 강준의 손을 꼭 잡았다.
“무서워?”
“조금요"
그렇게 30분쯤 갔을까 고개 하나를 넘고 나니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 산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다는 것이 강준은 신기했다.
버스는 인월터미널에 둘을 내려주었다.
“아저씨 산내요?”
“네 타세요" 택시 기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저 산이 한국에서 가장 큰 산인 지리산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도 하지요"
택시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지리산에 대해 이것저것 신나게 떠들었다.
인월에서 택시로 20분 달리니 강준 할아버지의 고향이 나왔다.
강준은 동네 분들에게 할아버지에 관해 물었지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동네를 떠난 지 50년이 지났으니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도
모두 돌아가셨겠다고 강준은 생각했다.
“하나는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아?”
“별로요”
아버지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던데요?
“제주는 멀어서 나중에 여행이라도 한 번 가면 될 것 같아요.
강준과 하나는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호텔에는 밤에 도착했다.
서울의 밤은 싸늘했다. 도쿄의 뱜을 닮았지만, 전혀 다른 날씨였고
남원과도 달랐다.
아침 방송을 보던 강준은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었다.
집회 현장이 방송에 보였다.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하고 있었다.
강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 우리 저기 가보자?”
“무서운데요.”
“싸우는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해요.”
“우리 그냥 서울 경복궁이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멀리서 구경만 하자.”
“일본에서는 저런 현장을 볼 기회가 없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별일 없을 거야…”
강준의 거듭된 설득에 하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그만 보고 돌아와요? 네?
강준과 하나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지하철을 타고 대학교 앞에서 내렸다.
학교에 가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런 집회도 없었다.
캠퍼스 안에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집회가 끝났나 봐!
오늘 집회는 안 하나요?
강준은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었다.
총학생회의실에 가보세요. 지나는 학생이 학생회실 위치를 알려줬다.
학생회실에 가보니 한 학생이 보였다.
오늘은 집회 안 하나요?
왜요?
저희는 일본에서 왔는데 방송에서 이 학교 앞에서 집회하는 것을 봤거든요.
궁금해서요.
아. 그러세요.
저는 일본어학과 조민의라고 해요.
아 저는 강준 이쪽은 하나라고 해요.
저는 1학년 신입생이라 잘 몰라요.
선배들은 다들 다른 곳에 있나 봐요.
저도 오늘 아는 선배를 만나러 왔는데 없더라고요.
네..
강준과 하나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없자, 살짝 실망스러웠다.
캠퍼스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자
학교 안에도 아무도 없는데요.
우리 이제 호텔로 돌아가요
강준과 하나가 광화문을 지날 때 집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 시위하고 있는데,
우리 잠깐 여기서 내려서 보고 가자.
강준 씨 위험해 보여요
우리 그냥 호텔로 가요!
아니야!
멀리서 잠시만 보고 가자
이제 곧 일본에 돌아가잖아
우리 이런 시위는 영원히 방송에서만 볼지 몰라
강준이 버스에서 내리자, 하나는 마지못해 따라 내렸다.
강준과 하나가 내렸을 때 몇 백 명이었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자, 수가 몇만이 넘어 버렸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 호헌철폐뜻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것(호헌)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하라는 뜻. 전두환 정권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고, 국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군부정권이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화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1987년 4월 13일에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선언했다. (4.13 호헌조치) 이 조치를 거두라는 것이 바로 ‘호헌철폐’호헌조치에 맞선 6월 항쟁의 구호였다. ]
시위대의 함성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강준과 하나가 서 있던 곳은 처음 시위 시작했을 때는 몇 백 미터 거리였지만 구경하는 사이 강준가 하나는 시위대 중앙에 서 있게 되었다.
강준도 시위대가 외치는 대로 따라 외쳤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
하나는 강준이 옆에서 불안하게 강준을 쳐다봤다.
강준 씨 이제 돌아가요.
우리 시위대에 너무 깊숙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가요
하지만 강준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준은 그동안 일본에서 받아왔던 차별 때문일까?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하나야 시위대와 함께 구호도 외쳐봐!!
진짜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호헌 철폐 독채 타도, 사실 강준은 호헌 철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사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가 무슨 말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차별금지, 차별철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많은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고 하나가 되어 가는 것
이 순간이 좋았다.
강준 씨 이제 우리 빨리 돌아가요.
그 순간 경찰들이 앞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요.
강준 씨 빨리 도망쳐요.
전경과 경찰이 시위대를 포위하고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순식간에 집회 장소는 전쟁터처럼 보였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도로는 마비 상태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강준은 하나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경찰과 전경이 시위대를 압박했다,
강준과 하나는 가게 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헉 헉…
탁 탁 턱 턱….
탁 탁 탁 탁….
윽….
여기저기 도망치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몇 분을 달렸을까, 시위대도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강준 씨 다행이에요.
여긴 안전한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긴 경찰이 안 보여요.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퍽 퍽….
강준과 하나가 전경이 휘두른 곤봉을 맞고 쓰러졌다.
악….
야. 이놈들 차에 태워라…
강준과 하나는 호송차에 끌려갔다.
호송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잡혀 있었다.
와타시와 니혼진 데스.
저희는 일본 사람입니다.
저 여자는 일본 사람이에요.
이 자식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야! 봐주지 말고 끌고 가….
강준과 하나는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놈들 좀 이상한데
일본말하는 놈들이 시위대에 왜 있어?
한번 취조 좀 해봐,
일본 사람이라고 외치던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오 그러네요.
일본 사람이 한국 집회에 참여했다.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 팀장님
그렇지…. 이놈들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더 조사해 보라고.
일본인이 한국 집회에 참여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이 팀장은 좋은 건수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조선총련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오늘 하루 종일 집회 현장에서 누적된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꽤 큰 건이 되겠는데…. 빨리 조사해서 보안사에 넘겨
강준과 하나는 경찰 취조실로 끌려갔다.
“야…. 너희들 여기는 왜 왔어?
“ 아 서울 관광 왔어요
“관광…. 근데 집회에는 왜 가담했어….
버스를 타고 오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 구경했어요.
진짜야
네. 강준은 이제야 숨이 쉬어졌다.
이제 호텔에 가면 되죠?
이 자식 아주 웃기는 놈이군…. 야 인마….
어떤 미친놈이 시위 구경을 오냐…. 그것도 일본 놈이…. 재일 조선인이라….
이 팀장님 이것 잘 엮으면 한 건 하겠는데요.
그렇지…. 김 경위
일단 상부에 이야기해 보자.
일단 말이 안 되는 저 여자는 유치장으로 보내고 남자 놈은 상부로 보내….
강준은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검은 승용차에 태워졌다.
시동을 걸자마자 차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팀장님, 이 녀석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야….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이런 녀석을 콩밥을 좀 먹어야지.
제가 봤을 때는 진짜 지나가다가 참가한 것 같은데요.
야…. 이 순경 너는 그렇게 세상을 순진하게 보면 어떡하니….
이놈들이 얼마나 악질인데,
이런 자식들은 다 잡아서 유치장에 넣거나 감옥에 처넣어야 해
요즘 세상이 너무 편해졌어
오늘 집회 나온 빨갱이 놈들 좀 봐
경기가 얼마나 좋고 일도 많고 지금 얼마나 좋냐….
그런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씨발놈들이 다 잡아 쳐 넣어야 해
싹 잡아 가지고 정리해야 하는데,
저런 것들 옛날 같으면 다 삼청교육대에 보내서 인간개조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우리 대통령님 너무 약해지신 것 아니야….
계엄령이라도 내려서 저것들 다 처넣어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러냐고… 씨발
강준의 차에서 내려져 다시 건물 지하로 끌려갔다.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강준의 양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의자에 던지듯이 밀쳤다.
“여기가 어디죠?”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강준이 물었을 때 대답 대신 주먹이 날아왔다.
야 인마 여기가 어딘지 알면 뭐 하려고?
너 여기서 살아서 나가려면 사실대로 말해!!
알았어? 짜식이….
세상 무서운 것을 몰라!!
남자는 강준을 뺨을 강하게 때렸다,
너 여기 뭐 하려고 왔어?
제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어요
저는 여자 친구랑 놀러 온 겁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퍽… 강준의 가슴팍에 주먹이 다시 날아들었다.
야. 다시 물어보게?
야 이 자식아 너 여기 뭐 하러 왔어?
몇 번을 이야기해요.
저 그냥 놀러 왔다가 집회가 있어 잠시 구경했던 것이라고요.
야 인마 구경하러 온 놈이 왜 구호는 따라 해…
이 자식이 여기가 너희 동네인 줄 알아….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여기 이거 얼굴 아니야?
사진에 네 얼굴이 딱 보이는데 계속 시치미를 뗄 거야?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일본으로 보내 줄게?
그리고 네 여자 친구도 나가야 할 것 아니냐?
너 여기서 대답 잘못하면 네 여자 친구도 여기 데려올 거야?
알았어?
아니 제가 뭘 알아야 대답할 것 아닌가요?
이 자식 봐라!
너 여기 왜 왔냐고
왜 집회에 참여했냐고
뭔가 목적이 있으니까 왔을 것 아니야?
야. 이 자식 거꾸로 달아…
이 자식 매운맛 좀 보여줘라!
강준을 거꾸로 매달리자, 코에 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컥 컥… 우억….
살려 주세요!!
이놈 봐라… 겨우 물만 부었는데도 이 정도야…
너 이번에 말 안 하면 고춧가루도 넣어 준다…
제발 그만하세요.
저는 정말 몰라요…
아는 것이 있어야 이야기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이놈 봐라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야 한 번 더 부어줘라…
강준의 콧구멍으로 물과 함께 고춧가루가 섞인 물이 들어왔다.
강준은 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팀장님 이것 잘 못 하다가 지난번처럼 큰일 나는 것 아닌가요?
지난번에 사건도 아직 해결이 안 되었는데요.
그 자식은 왜 하필 죽어서….
이놈 진짜 아무 관련도 없는 것 같은데요.
야… 경찰이 수상하다고 했잖아.
뭐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렇죠.
일단 내려놔라.
하나는 경찰서 유치장에 남아 있었다.
강준은 어디 있스무니까?
서툰 한국말로 하나가 말했다.
야. 그 자식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저는 한국말을 못 해요.
강준 어디 았스무니까?
야…. 저 여자는 그냥 내보내자.
데리고 있어 봐야 말도 못 하고
야,. 일본어 통역하는 사람 찾아보라고 한 것이 언제냐
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인마..
아…. 잡혀 온 사람들도 많은데 저 여자는 그냥 보내주시죠?
야…
이 순경 너는 그렇게 약해 빠져 가지고 험한 세상에 경찰일을 어떻게 하려고 하냐?
어…. 이 자식아
정신 못 차려… 씨팔
요즘 새끼들은 곤조가 없어..
“호헌철폐 독재타도”
유치장에 잡혀온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저 자식들 또 시작이네…
외국인을 보내줘라!!
일본 사람 붙잡고 있어 봐야 외교부에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야.. 존나 시끄럽네 저 자식들
야 귀찮으니까 저 여자 갖다 버려라….
저 여자 여권 복사하고 일단 내보내.
데리고 있어 봐야 귀찮기만 하니까.
그리고 나중에 저 남자 친구하고 저 여자하고
뭐 나오면 이 순경 너도 함께 묶어서 보내 버릴 거야…
알았어. 씨팔….
하나는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경찰서에 잡혀간 지 3일 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한국말을 모르는 하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의 밤거리를 하나는 걷기 시작했다.
하나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 도착해 직원에게 이야기하자 하나와 강준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주었다.
다행히 호텔 직원은 말이 통했다.
다음날 하나는 처음 갔던 학교에 가봤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만난 학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강준이 잡혀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도착하니 그녀를 어디서 만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오하이요"
아.. 그때 봤던 일본 분이시죠?
네.
반가워요.
네. 하나 씨라고 하셨죠?
네.
다시 만나 반가워요.
남자 친구분은 어디 있어요?
아. 그게
며칠 전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잡혀갔어요.
뭐라고요.
그래서 지금 연락이 안 되나요?
네.
경찰에 함께 끌려갔는데 저만 보내주고 남자 친구는 다른 곳으로 데려갔어요.
그래요.
우리 그럼 함께 총학생회에 가봐요.
아무래도 학생회에 이야기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총학생회는 며칠 전 잡혀간 학생들 문제로 회의하고 있더라고요.
지난 집회에서 집행부를 맡았던 학생 몇 명이 경찰에
끌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로 집행부들이 연행되고 많은 학생이 끌려갔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우선 항의 방문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에 알리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좀 전에 들어 보니 일본에서 건너온 분도 호송되었고 소식도 없는 상태입니다”
“우선 경찰서로 항의 방문을 합시다"
항의 방문을 한다고 풀려난다는 보장도 없지만 지금 딱히 할 것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이미 학생들이 불법연행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정권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곧 있을 대선정국에 피해가 갈지 모르기 때문에 경찰도 언론들도 학생들이 연행된 사건이 기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강준 사건에는 언론들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래전에도 한 번 재일간첩단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확인된다면 대선에서 핵심 사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청년 강준이 만약 일본 조선총련과 관련이 있다면 조선총련과 북한을 연결해 간첩이나 북한의 사주를 받아 집회한 것으로 연결하면 여당의 대선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거는 북풍! 간첩 아닌가요!! 여당은 굴러 들어온 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준은 조선총련이 아니었다. 강준은 민단이었고 국적도 대한민국이었다.
강준은 자신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을 일본에 살면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강준은 일본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고 한국 이름으로 살았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한국어 공부도 스스로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찾아온 조국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까지 당하고 있었다.
“일단 경찰서로 가봅시다"
학생들 50여 명과 하나 그리고 민의가 경찰서로 향했다.
“불법으로 구속한 청년 학생 석방하라"
종로 경찰서 앞에 학생들이 시위를 진행했다.
경찰들과 전경들은 50여 명의 불과한 학생들을 진압하려고 했지만, 언론사들이 찾아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진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행된 학생들이 50여 명에 넘는데 언제까지 붙잡아 둘 것인가요"
“경찰들에게 케이 일보 김 기자가 물었다?”
“협의가 없는 학생들은 곧 풀려날 겁니다.”
“협의가 있는 학생들은 지금 조사하고 있고요?”
“일본에서 온 사람이 한 명 있던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죠?”
“그 사람은 좀 더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 쪽에서는 그가 북쪽에서 지령을 받고 내려온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요”
“북한요?”
“네"
“함께 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은 조총련이 아니라 민단 사람이고 국적이 한국이라고 하던데요?”
“뭐 그렇다고 해도 일본에서 여기까지 와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죠?”
“일본에서 건너왔으면 구경이나 하고 가면 되지 누구 집회에 참여합니까?’
“일단 조사를 하고 있어요?”
“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저기 기자님 뭐라고 하던가요?”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은 어떻게 되었다고 하던가요?”
“아. 지금도 조사 중이라고 하네요"
“여기 경찰서에는 없고 아마 보안사에서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곧 기사가 나올 것 같아요?”
총학생회 학생들은 아직 조사하고 있고 중대한 문제가 없다면
곧 석방한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학생들의 항의 방문은 별 성과 없이 끝났다.
민의는 하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민의가 사는 자취방에 하나와 민의는 며칠을 함께 보냈고 둘은 곧 친구가 되었다.
며칠 후 방송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간첩으로 의심되는 남자가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방송에 나온 인물은 바로 강준이었다.
강준은 일본에서 건너온 간첩으로 의심받고 있으면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민의와 함께 인권변호사 협회를 찾아갔다.
하나는 민의에게 강준이 민단이며 조선총련과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인권변호사 철호는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간첩으로 의심받은 강준의 첫 번째 재판이 이루어졌다.
하나의 민의는 재판장을 찾았다.
하나의 강준은 두 달 만에 처음 만났다.
하나는 강준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강준상… 저 하나예요"
강준이 고개를 돌려 하나를 바라봤다.
하나는 강준의 퀭한 눈과 초점 없는 눈빛이 안쓰럽고 무서웠다.
“ 저 사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나는 가늠할 수 없는 일로 변해버린 강준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강준과 하나는 도쿄에서 만났다.
둘은 오사카 출신이었다.
대학에서 한국인을 돕는 단체에서 만났고 둘은 금세 친해졌다.
먼저 말을 건넨 것은 하나였다.
익숙한 오사카 사투리가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라고 합니다"
“오사카 출신이시죠?’
“네 저는 강준이라고 해요”
둘은 쉽게 친해졌고 비싼 도쿄의 월세를 피해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동거를 시작했다.
하나는 강준과 함께 시간이 생각났다.
강준은 하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우에노 공원을 갔었다.
거기에 왕인 박사 기념비가 있었다.
백제에서 건너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왕인 박사를 기리는 비석이었다.
강준은 하나에게 우리가 지금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있지만 기가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선진국이라면서 강준이 했던 이야기가 떠 올랐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 한국은 왜 강준을 잡아가서 간첩으로 의심하고 있을 것일까?
하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민의는 변호사 철호에게 강준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집회에 참여한 것이라고 했다.
강준은 감옥에 갇혀 지넨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첫 재판이 열렸다.
강준은 고문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여기서 잡혀서 감옥에 가는 것일까?
우연히 집회에 참여했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집회에 참여한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조국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조선 민족과 일본 민족 그 차이 하나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때로는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매번 반복되는 차별 속에 강준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매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서로를 차별하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강준은 그저 빨리 이 상황이 정리되기만 기원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강준은 알 수 없었다.
우연히 방송에서 집회 장면을 보고 참가한 집회에서 붙잡혀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것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가혹한 것이었다. 검찰은 강준이 간첩이란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강준의 변호사는 강준이 한국의 고향을 방문한 것이면 집회에는 우연한 호기심에 참가한 것이라고 맞섰다.
재판관은 판단을 미루었다.
얼마 후면 대선이고 이런 일을 판단은 대선 이후로 하는 것이 부담이 없다고 정 판사는 생각했다.
12월 곧 대선이 코 앞이었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이 자리 잡은 후 단 한 번도 진보적인 정권이 대통령직을 수행한 적이 없는 나라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부당한 정권의 대물림이 이번엔 끊어질 수 있을 것인가?
시민들의 기대는 올라가고 있었다.
전두환의 파트너인 노태훈과 인권 변호사 출신이 노동현이 격돌하고 있었다.
노태훈의 자신이 더 이상 군부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했다.
과거의 일을 과거일 뿐 미래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정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노동현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편에서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후보였다.
그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길만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뀌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경제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와 민의는 노동현 후보를 찾아갔다.
“제 남자 친구가 억울하게 경찰에 잡혀 있어요?”
“제 남자 친구를 풀어주세요?’
하나와 민의는 노동현 후보 사무실에 찾아가 부당한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금 후보님이 그런 상황까지 해결하기엔 힘드세요"
“매일매일 일정이 있고요"
“하지만 이야기라도 전해주세요?”
“노동현 후보님이 인권과 노동을 존중하는 후보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저쪽에서 이 사건을 간첩 사건처럼 키우려고 하고 있다고요?”
“이건 간단하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요?’
노동현도 신문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선거철만 되는 찾아오는 간첩 공작이었다. 없는 사건도 만들고 없는 인물도 만들어 공작을 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기술은 언제나 잔인한 것이었고 피해는 포악한 것이었다.
노동현의 후보 측에서도 미리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당에서 공작을 시도하면 이야기해야 하는지 하지만 미리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조선일보 일면에 재일 간첩단 사건이 단신으로 소개되었다. 일단 단신으로 처리하고 선거 상황을 보면서 크게 키워 보자는 데스크의 생각이었다.
하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민의가 도와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민의의 집에서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석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본인 하나는 관광 비자로 한국에 세 달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다. 일본으로 돌아가서 알아봐야 할 까봐!
간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고 멈춘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도착한 막막함이 하나를 힘들게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현은 신문에서 강준에게 대한 소식을 들었다.
“또 시작이군"
“간첩 공작은 선거의 단골 메뉴였으니까?”
“이번엔 일본인가?”
“이미 한 번 했던 것인데 다시 한다는 것인가?”
노동현은 70년대에 있었던 재일 학생 간첩단 사건을 떠 올렸다.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은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암약해 온 간첩들이 국내 대학에 침투, 통일혁명당 지도부를 학원 안에 구성했다"면서 이른바 학원침투 간첩단 검거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간첩죄로 백옥광, 김오자, 김철현, 김종태, 최연숙, 김명수, 김원중, 허경조, 이원이, 장영식, 장명옥, 강종헌, 김동휘, 김삼랑이 구속되었고, 간첩방조죄로 전병생, 김정미, 노승일이, 반공법 위반으로 나수현, 박준건, 김준흥, 박명조가 구속 기소되어 총 21명이 송치되었다. 이후 12월 보안사에 의해 강종헌, 이철, 이수희, 조득훈, 이동석, 양남국이 추가로 구속되었다. 1976년 대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이들 중 4명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고, 대부분의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노동현은 이 사건의 재심을 신청한 적이 있다.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적인 정치의 희생양들이었다. 하지만 김기춘은 반성하지 않았고 처벌받지도 않았다. 처벌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그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그런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벌받지 않고 용서받지 않은 자들이 다시 권좌에 올라 사회 지배층이 되고 그 역사가 반복된다. 그런 역사가 반복되면 패배주의 빠지고 패배주의에 빠진 민중은 힘을 잃게 된다.
이것이 끝나지 않는 다면 자유와 평등 평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살 수 없다
노동현은 신문 한구석에서 재일 교포 강준의 짤막한 기사를 보고 마음이 심란 해졌다.
작은 원룸에 민의와 함께 석 달 넘게 살고 있던 하나는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비자도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의야…. 나 이게 일본으로 돌아갈게?”
“강준은 어떻게 하고?”
“일본에서 해야 하는 일도 있고 비자가 만료되었어.
다시 올게, 그리고 돌아가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아"
하나는 도쿄로 돌아갔다. 하지만 도쿄에서도 강준을 위해 할 일이 없었다. 한국 정부가 강준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하나는 더 이상 강준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이제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하나는 오사카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났다. 강준의 부모도 만났다. 강준의 소식을 전했을 때 강준의 부모는 쓰러졌다. 하지만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준의 부모는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과 생사를 모르는 아들 무엇이 좋은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강준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다. 아버지의 고향 남원 땅에 강준이 간다고 했을 때 함께 가고 싶었지만 어렵게 자리 잡은 가게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함께 가야 했는데 강준의 아버지 철호는 후회했다.
그는 강준에게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쓰게 하고 한국 이름을 강요한 것이 후회되었다. 아들이 받을 차별과 멸시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아들을 한국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호의 아버지는 일본에 강제 병탄 된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왔다.
철호의 아버지 인철이 일본에서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병탄 된 조국을 떠나 병탄한 일본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한국인을 만나 결혼했고 강준의 아버지 철호를 낳았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았다. 희망은 꿈보다 아련한 것이었고, 아련한 꿈을 찾는 것은 허구에 가까웠다. 희망은 누구의 배도 채워주지 못했다.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이를 키워야 했고 먹고사는 터전이 일본에 있었다.
인철에게 남원 땅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미지의 항구가 되어갔다. 가끔 꿈에서 산내와 눈 내린 바래봉과 지리산 천왕봉이 떠 올랐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큰 산이 보였고 고개를 숙여 땅을 보면 평안한 고향 마을의 산천이 떠 올랐다. 엄마 손을 잡고 구경하던 인월장터에서 봤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손이 그리웠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다. 가고 싶은 고향 마을 그 친구들 함께 나무를 하기 위해 올랐던 바래봉 그리고 그 산에서 봤던 붉은 진달래가 떠 올랐다.
철호는 아버지에게 남원과 인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언제부터 인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원과 인월 지리산, 노고단, 바래봉을 철호는 어느새 자신도 가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찰호는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기의 경험처럼 아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철호는 강준이 떠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아들에게 고향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간다면 고향에 가봐야 한다고 할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알려준 고향마을의 주소를 건넸다.
“여보 나 한국에 가야겠어요?”
“네. 저도 그럼 같이 가요?’
철호와 그의 아내 순이는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하지만 한국에 간다고 해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더할 것이 없었다.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뭐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딜 때만 해도 강준은 이런 일이 벌어질 것 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호기심이 만든 지금 상황은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도리가 없지만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무엇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에 아는 사람 이라고는 한 명도 없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막막함 사방에서 밀려오는 사냥꾼에게 포위당한 토끼 같은 신세가 바로 지금은 강준이었다.
다행히 함께 갇혀 있는 동료들이 있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강준이 아무것도 모르는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 강준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다. 그들도 지금 갇혀 있는 신세였다.
“김강준 씨 그나마 지금 밖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는 동지들이 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몇몇 동지들은 유치장에서 나갔더라고요?”
“강준 씨 다음 재판이 얼마 남지 않았죠?”
“우리가 강준 씨 재판에 오래전 재입학생 간첩단 사건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외부의 동지들에게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강준은 다시 포승줄에 묶여 재판정에 섰다.
재판장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재판장 밖에는 이미 많은 기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재판의 결과에 따라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검사와 변호사가 공방을 펼쳤지만, 판사는 다시 재판을 유보했다. 판사 역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곧 선거가 있고 누가 봐도 강준은 간첩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늘 만약 판사가 강준을 간첩이라고 판결한다면 판사는 정치적인 결정을 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는 항의했지만 받아 드리지 않았다.
이미 1970년대의 재일 간첩단 사건의 재심이 이루어지고 있고 무죄 선고가 되고 있기 상황에서 다시 해묵은 일본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지면 판사도 자유롭지 않을 것 있기 때문이다.
강준과 그의 가족들은 재판이 내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과 그나마 간첩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에 대해나 안도감이 함께 느껴졌다.
“다음 재판에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준은 다시 포승줄에 묶여 교도소를 이송되었다.
“김강준 씨 이번 재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온 여행객일 뿐입니다.”
“해묵은 간첩 조작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민의의 친구들은 강준은 결백을 위해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 시위가 강준에게 도움을 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검찰에서는 오히려 시위대를 보니 확실히 강준에게 뭔가 있는 것이 아니냐 고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강준은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학생들이 고마웠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해 본 적이 있던 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매번 일본에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하지만, 이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부당하다면 싸워서 부당함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자신의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했을 뿐 싸워서 차별을 없애야겠다 는 생각까지는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 학생들은 알지도 못하는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강준아.. 강준아…”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강준아. 힘내라…. 네. 아버지…. 죄송해요.
아니다. 강준아….
아버지가 미안하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강준은 차에 올라탔다.
짙은 어둠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강준은 태운 차가 법원을 뒤로하고 교도소로 사라졌다.
하나 씨는 잘 있나요?
아… 학생이 민의 학생이군요.
하나에게 도움을 많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들들을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하나 씨는 함께 오지 않았나요?
네. 하나는 함께 오지 못했어요.
그랬군요.
보고 싶었는데….
민의 학생 시간 있으면 함께 밥이라도 먹어요.
우리가 아는 곳도 없고 해서 민의 학생이랑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정 그러시면…
북한은 일인 독재로 남한은 이름만 바뀐 독재정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35년이라는 일제 강점기가 끝난 후 남한에 주둔한 미국과 소련은 대한민국을 온전한 국가로 두지 않았다. 북한은 김일성에 의한 일인 독재가 시작되었고 남한은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가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알리는 선거가 곧 다가오고 있다.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훈과 인권변호사 출신 노동현의 선거가 멀지 않은 것이다.
수세에 몰린 노태훈은 선거 참모인 이석현에게 말했다. 바로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그렇게 급조된 사건이 바로 조총련 간첩 강준의 사건이었다.
“언론사에 연락해서 간첩단 사건에 대해 알려"
“야 선거가 박빙인데 뭐 하고 있어"
“너희들 정권 넘겨줄 거야"
“너희가 한 짓이 있는데 노동현 저놈 아가 정권 잡으면 너희들도 모두 모가지야"
노태훈의 선거 참모인 이석현은 보안사를 쥐 잡듯 잡았다.
“일본 유학생 간첩이 체포되어 조사 중"
일간지 일면에 기사를 노동현은 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노동현은 다시 시작된 간첩단 사건이 불러올 파장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해묵은 간첩단 사건을 꺼낼 만큼 저들은 초조한 것일까?
노동현을 찾아온 학생 얼굴도 생각났다.
“노 후보님 저들이 다시 시작했는데, 이대로 있어도 될까요? 이석현이 말했다.
“그러게요”
노동현의 고민에 빠졌다. 나서면 종북으로 몰릴 것이고, 그대로 두면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외면할 수도 나서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이었다. 하지만 노동현은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유불리를 따져야 했다면 대통령 선거에도 나오지 말아야 했고 인권 변호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혼자서 호의 호식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석혁씨 오늘은 구치소에 가봅시다.”
노동현은 선거 사무실에서 내려와 차에 올랐다.
오래된 검은색 콩코드 차량이었다.
차는 올림픽 대로를 지나 구치소로 향했다.
철 장 너머로 강준이 보였다. 그동안 고문과 옥살이로 강준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누구시죠? 강준이 물었다.
안녕하세요. 노동현이라고 합니다. 이석현이 “대통령 후보입니다”라고 설명을 했다.
강준은 놀라는 눈으로 노동현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여기 오셔서 저를 만나면 선거의 불리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1975년 11월 22일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사건'에 대해 언론에 직접 브리핑을 하는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이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렸던 유학생들은 40여 년 만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유신시대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이다. ⓒ 뉴스타파
저는 강준 씨가 무죄라고 생각해요. 죄가 없는 사람을 가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지금이 언제라고…. 일본 간첩이라니…
강준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곧 풀려서 자유로운 몸이 될 겁니다.
노동현은 강준에게 안심하고 조금만 참으라는 말을 하고 구치소에서 나왔다.
구치소 앞에는 기자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노 후보님" 일본 간첩단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미 신문의 김하림 기자였다.
“저는 날조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70년대에도 이미 여러 번 보안사에서 간첩단 사건을 조작 이력이 있습니다. 그 사람 중에 간첩은 한 명도 없었어요. 모두 재심에서 무죄로 인정받았습니다. 곧 90년대가 다가오는데 아직도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서 선거에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한심할 뿐입니다.
“그럼, 후보님의 생각은 모두 날조된 것이라는 것이죠?’
네 그렇습니다.
해묵은 북풍 공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이런 역사는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런 역사를 끊어 내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나온 것입니다.”
노동현은 강단 있는 목소리를 대답했다.
노동현은 차를 타고 돌아갔다.
노동현이 발언은 저녁 뉴스에 메인 톱 뉴스로 나왔다. 검찰이나 보안사도 노동현의 지지율이 60% 넘기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강준을 잡아두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는 것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일단 풀어 줍시다" “사실 증거도 없고 언제까지 잡아 둘 수도 없는 것 아닌가요?”
“다음 재판이 언제죠?” 김 부장
“선거하기 일주일 전 아닌가요?” 그래야 선거에 한 번 더 우려먹을 수 있다고…. 그렇게 잡자고 한 것 같은데요?”
강준은 선거가 끝나기 일주일 전에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노동현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군부독재의 시대가 마감했다.
새로운 시대 민주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강준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강준은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일본 한인들의 차별과 탄압에 항쟁 그리고 권리를 위한 싸움이었다.
광복 이후 일본에 남은 한국인은 60만 명이 이른다.
이들은 오랜 시간 일본으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부당하다면 싸워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강준은 하네다 공항에 내렸을 때 멀리서 하나가 달려왔다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은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암약해 온 간첩들이 국내 대학에 침투, 통일혁명당 지도부를 학원 안에 구성했다"면서 이른바 학원침투 간첩단 검거를 발표했다. [12] 이에 따라 간첩죄로 백옥광, 김오자, 김철현, 김종태, 최연숙, 김명수, 김원중, 허경조, 이원이, 장영식, 장명옥, 강종헌, 김동휘, 김삼랑이 구속되었고, 간첩방조죄로 전병생, 김정미, 노승일이, 반공법 위반으로 나수현, 박준건, 김준흥, 박명조가 구속 기소되어 총 21명이 송치되었다. [13] 이후 12월 보안사에 의해 강종헌, 이철, 이수희, 조득훈, 이동석, 양남국이 추가로 구속되었다. [9] 1976년 대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이들 중 4명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고, 대부분의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대법원 76도 4262, 76도 3096 판결 등). [6][14]]
[편집]
2010년~2011년에 걸쳐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 권고가 지속적으로 내려졌고, 2010년 7월 김동휘를 시작으로 피해자들이 잇달아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사망하거나 생사를 알 수 없는 피해자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재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6]]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