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편견은 상대를 범주로 묶지 않을 때 그 실제를 마주할 수 있다
“너 불교 믿지?”
고등학교 어느 때던가. 야자 후 집에 돌아와 문서를 작성하고 있을 무렵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과제밭에서 신음하던 난 옳다구나, 날름 미끼를 물었다. 하지만 어라, 갑자기 종교를 묻는다고? 기실 불교를 믿는 건 가족들이지 내가 아니다. 난 법화경 글줄 몇 자를 알 뿐. 신자를 자칭하기엔 괴리가 있다. 그러나 대뜸 이런 질문을 하는 이에게는 이유와 배경이 있는 법. 전파 너머 떨리는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불안이 보였다.
“응. 맞지. 왜?”
“나 상담 좀 해 줘. 집에 이런 말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너는 불교니까 편견 없을 것 같아서.”
말인 즉, 그녀는 태어날 적 세례를 받고 매주 성당을 가며 금식(고기를 못 먹는 요일이 있었다.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을 철저히 지킬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고 그의 새로운 애인은 동성이었던 것이다. 사랑에 마음이 심란한 이때 가족들에게 사연을 털어놓자니 기본 전제부터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자명한지라, 며칠 내내 속앓이를 하다 동성연애를 포용하는 듯 보이는 불교 집안의 내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입을 여니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근 며칠에 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최근 바람둥이 모 씨와 교재를 시작했는데, 그가 헤어진 전 애인의 질투심을 유발하려 보여주기식으로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 같다. 그치만 지금 자신은 그 바람둥이 개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에게 진심이 없고 모든 것이 장난인 걸 확인할 때마다 지치고 힘들다. 중략. 중략. 몇 시간을 울고 화내며 감정을 쏟아낸 그는 곧 개운해진 듯 감정을 추스르며, 늦은 시간에 미안했다 말하고 통화를 끊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혹여 소리가 새어나갈까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죽여둔 숨을 허파에 들이고, 눈을 굴렸다. 오른손엔 뜨끈한 전화기. 방 너머 있는 건 새벽을 알리는 고요와 어둠. 밤바람에 펄럭이는 커튼 소리. 분명 살아가며 처음 겪어 본 경험이고 당황이었으나 상식이 말하는 거부감은 없었다. 인간사 이목을 끄는 자극적 가십에 대한 무례한 흥미만 남아있을 뿐.
그렇군. 막연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연애에 성별이 고려할 문제나 되던가. 무례한 관심을 돌아보고 자제해야 하나니. 고민 끝.
이어 과제를 마저 휘적휘적 해치우다 곧 잠들었다. 그런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다양한 형태로 이름 짓는 연애사를 지지한다. 그것이 도덕에 배반하거나 타인을 착취하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제 3자가 그네들 사정에 말 얹을 권리는 없다. 어느 성인이 먼 옛날 약한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강령을 입에 담아 반대하는 이들의 혐오가 거북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내가 옳다 침 튀기기 바쁜 뻔한 이기주의가 지긋지긋해서. 그들의 사랑은 이토록 당연한 자유이다.
대중의 시선이니 상식이니 편견이니 하는 것들은 결국 이 시기, 이 순간 고이고 스치는 변화무쌍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상식은 변하기 마련. 내가 배운 진리는 언제까지 유용할 건가. 그조차 알 수 없고 점점 유효가 짧아지는데, 불변을 진리로 믿고 목소리 낼 이유는 대체 무엇이던가.
혐오와 편견은 상대를 범주로 묶어 객체 취급하지 않을 때 그 실제를 마주할 수 있다. 결국 모두가 한 생명이다. 일 인분 삶이다. 살아가며 만난 경험이, 그 굴곡이 다른 자신을 만들었을 뿐. 네 안에서 필히 자신을 만난다. 가장 혐오하는 존재 안에서도 친숙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각자의 이유로 모두와 어떤 면에서 닮았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색으로 자기 세상을 물들였는지. 네 지난 삶은 어떠했는지. 무슨 가치를 중히 여기는지. 찾겠다. 어린 날 너를 세상에 환대한 자, 핍박한 자. 그들에게서 네가 익히고 배운 것. 너를 이루는 총체는 결국 이런 것이다. 먼 곳에 있지 말고, 이리 와 가까이 보자. 이것이 너를 만든 사랑과 네가 원한 결핍이다. 네가 나서는 길이며 이루어 낸 성장이다. 만들어 갈 미래이며 열린 가능성이다. 그 모든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위태롭고 따뜻한 것들이 너를 이룬다. 모든 이가 그러하다. 덕분에, 모두가 서로를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환상에 사는 미치광이 주절거린다.
"내가 미쳐가나요?
아니면 세상이 돌아버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