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었던 일들은 가깝고, 친근하던 것들은 먼 곳으로 떠나간다.
카자흐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대대적인 개정이 적용됐는지 일상에 영향을 주는 소소하고 전반적인 것들이 변했다.
카자흐스탄 도시들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해 보자.
먼저 아스타나. 카자흐스탄 독립을 선언하고 몇십 년간 독재한 1대 대통령 누르술탄이 새로이 지정한 중심도시이자 현 수도. 하지만 지극히 북쪽으로 치우친 지리적 위치 탓에, 한국의 서울처럼 사람이 몰리는 도시라기보다는 행정 전문 도시라는 느낌이 강하다. 듣기로는 몽골 울란바토르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에 이름을 올렸다고. 그나마 수도로 지정되며 정착된 시스템도 코로나 시절 대대적인 엇갈림이 있은 후 현재에 와선 되돌리지 않고 유명무실해진 것들이 많다고 한다.
다음. 가장 유명한 도시 알마티.
도시의 유래는 ‘알마-아티’. 원어로 ‘사과 할아버지’라고 한다. 카자흐 내에서는 농작물 자급자족을 거의 하지 않고, 우즈베크 쪽에서 수입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카더라 이야기를 들은 바 있으니 이제 와 조금 아이러니한 도시명이 되었다는 것이 첫 인상. 이곳은 실질적 수도에 가깝다. 행정은 물론이고, 주변 도시 및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지어 알마티로 모인다. 다른 곳들 대비 버스비 등 일상적인 비용에서 다른 도시와 적게는 몇 배, 크게는 열 배에 가까운 가격 차이가 난다. 월세가 높고 식료품 가격도 비싸다. 하지만 그만큼 급여를 다른 도시보다 높게 책정한다.
인건비에 대해.
산다면, 카자흐와 한국이 가장 다를 부분,
여기서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때 시급이 아닌 일급으로 측정한다. 나라에 사람이 넘쳐나니(듣기로 이전 세대는 가구당 아이가 6명 정도 있었고, 현세대는 4명 수준이라고) 인건비는 자연히 내려간다. 그리하여 완성되는 풍경이, 고객 한 명이 식사하는 식당을 고용인 네다섯이 배회하는 것. 개인에게 책임 돌아갈 여지가 적으니 프랜차이즈라도 지점과 알바생 성향에 따라 맛이 크게 차이 나기 십상이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은데 알바를 하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돈은 적게 버는 형국. 공부에 시간을 쓸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으니 시간에 대한 가치는 다르겠으나 와중에 생활비가 꾸준히 오른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도시(심켄트와 같은 중간 거점 도시)로 사람들이 모이니 인건비는 올라갈 기미가 없다. 자연히 원래 그 도시에서 일하던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아스타나, 알마티)로 향하고 이들 도시는 나날이 늘어나는 인구로 몸살을 앓는다. 알마티 사는 지인으로부터 ‘제발 사람들이 그만 왔으면 좋겠다’라며 토로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이곳은 정말 과거 어느 때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고.
이곳에 온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해를 넘기는 시점에서 훌쩍 오른 물가를 체감할 수 있었다.
가령 올해부터 새로이 시행되는 것들을 예로 들자면. 내가 머무는 도시 기준 공공교통비는 약 2배가량 올랐다. 근 몇 년간 가격이 고정되어 있었다기로서니 한 번에 이 상승폭은 너무하다 싶더라. 음식점도 서서히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이 근처에서 가장 흔한 커피숍을 기준으로 기본 메뉴 핫 아메리카노 가격이 100텡게 정도 올랐는데 한국을 예로 들자면 ‘이디야가 아메리카노 가격을 500원 인상했다’라는 문장으로 상황을 체감할 수 있겠다.
이 밖에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에 대한 잡다한 규정과 수령 비용 등에 자잘한 조정이 있었다 하는데 아직 신년 초반인지라 명확히 다가오진 않는다. 한국 올리브영에서 해외 배송으로 화장품을 사던 동료 직원분이 구매가 좀 어려워졌다 지나치며 흘린 말을 얼핏 주워들었을 뿐인지라.
오늘은 비가 온다. 저녁에는 눈이 온다고 한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는가 싶더니 드디어 겨울이 실감 난다. 작년에는 도로에서 치운 눈이 도보 길에 산을 쌓았다던데. 암만 남쪽 도시라지만 이쯤 되면 올해 여름이 두려워질 지경이다.
어제를 빌려 오늘을 예측하는 게 하등 의미가 있을까.
저기 먼 나라가 지금 이곳이 되니, 멀었던 일들은 가깝고 친근하던 것들은 먼 곳으로 떠나간다.
꾸준히 한국행을 말하던 고려인 고객들. 그저 비자 발급이 쉽고 친인척이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돈을 벌기 위해,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와 기회를 주려 떠난다는 이들에게서 익숙한 향기를 느꼈다. 천연자원 관련으로 또 새로운 카더라 이야기가 들리던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이 험난한 시국에 수뇌부가 방향키를 잘 잡고 순항하길 바란다. ‘나는 카자흐스탄 사람’이라는 국적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 외국인인 내가 이 나라를 좋아해 주길 바란 이들의 눈빛을, 만남을 기억해서라도. 이들이 험난한 시기를 거치고 불신과 적자생존이 정착한 한국의 선례를 따라가지 않길 바란다.
남들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고, 주변에 항상 관심을 두고, 아이가 발에 챌 듯 많으며 어른이 응당 공경받아 마땅한. 축제를 좋아하고, 소소한 꾸밈과 사사로운 어울림에 홍조를 띠는 이들이 시대를 이유로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비단 이 나라뿐만 아니라. 같은 전철을 밟은 모든 나라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이.
아슬아슬한 평화. 깨질 듯 위태로운 나날이 언젠가 견고해질 수 있기를.
분노하는 시대에도 위선은 존중받기를.
스스로 사유할 자유와 여유가 없는 흐름에서, 삶이 자본에 좌우되는 한 시대의 과도기에서.
다가올 새 시대의 규칙은 타인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를. 개인에게 조금 더 넓은 공간, 조금 더 많은 여유를 보장하기를.
변화하는 시대의 한 순간에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