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46] 일상 이모저모

먹고 관찰하고

by 가랑비가람

안 맞는 한국인보다 잘 맞는 외국인이 더 편하다.


본의 아니게 요즘 업무 관련하여 외국인 직원분들과 의견 나눌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제껏 경험한 크고 작은 일터를 통틀어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가장 자주 만나고 한 공간에 오래 있는 한 직원분 덕분이다.

나이도 10살 가까이 차이 나고, 나고 자란 환경도 천지 차이건만 심신은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마가 뜰 때 어떻게든 대화 물꼬를 이으려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 상대방이 떠드는 하등 관심 없고 상관없는 이야기를 맞장구치는 한편으로 남아있는 업무에 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이런 내가 그분에게 스트레스가 되진 않을까, 지나치게 상대를 편안하게 느끼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잃진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되돌아보곤 하지만 그만큼 업무 환경에서 이토록 늘어진 적이 없었기에 얻게 된 호화로운 고민이라 생각한다. 업무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사람이라던데. 큰 행운이다. 안락에 취하지 않고 적절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요즘은 주변 식당을 돌며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고 있다. 매번 오늘을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어차피 알레르기 있는 식재료도 확실하겠다 반 장난삼아 점심은 ‘그 식당의 가장 신기한 메뉴’ 혹은 ‘한국에서 먹을 일 없는 메뉴’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그날 먹을 음식을 메뉴판 열기 전까지 모른다는 게 나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최근 시도한 메뉴로는 양고기 샤슬릭(캅카스식. 한국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맛.), 멜란자나 샐러드(가지와 닭고기가 들어간 샐러드. 점원 실수인지 닭고기가 없었다. 하하.), 용과와 꿀을 섞어 우유죽 위에 올린 것, 퀴노아 연어 샐러드, 도네르(케밥 느낌인데 사각형이고 한 손에 붙잡고 먹기 좋다. 브랜드마다 맛이 굉장히 다르다), 파테(닭 간을 갈아 만든 것)와 치아바타, 흰색 양배추샐러드(시큼한 맛이 나서 기름맛이나 꾸덕한 식감의 음식과 함께 곁들여 먹기 좋았다), 샥슈카(오뚜기 미트 스파게티 소스에 향신료 맛이 강한 소세지를 곁들여 수프처럼 끓이고 위에 계란 두어 개를 얹어 반숙으로 만들고 빵과 함께 먹는다), 호박죽, 빠네(파스타 없는 버전), 보르쉬(비트를 메인으로 딜, 당근, 고기를 함께 끓인 음식. 현지에서는 일상적으로 혹은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원기 회복을 위해 먹는 것 같다) 그리고 연어가 들어간 다양한 식사가 있다.

현지 인건비 기준으론 살인적인 가격이지만 한국 돈 받는 외노자 입장에서는 한국의 대략... 2/3 수준인 가격이라 부담이 적다. 근처 다른 중앙아 지역들보단 월등히 비싸다지만 맘먹고 누려보자 한다면 못 할 것 없는 느낌이랄까? 시급 만 원에 파스타 한 접시에 만 오천 나라에서 살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돌며 양껏 사도 만 오천인 곳에 오니 자제력을 잃게 된다. 눈이 돌아 온갖 것들을 담아두다 잦은 정전에 냉장고에서 상해 버린 음식을 몇 번 폐기하고서야 이 사치를 평일 점심 한정으로 제한할 수 있었다. 점심때마다 스윽 사라져 양손 가득 전리품을 들고 오는 모습이 이곳 사람들 눈에도 익어가는지. 박스니 킬로그램 단위로 파는 소소한 간식거리를 자주 주변에 돌리니 이래저래 스쳐 지나는 작은 인연들에서 전보다 부드러워진 눈빛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 지식 부족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하.


디저트라 하니. 이곳에서 종종 발견하는 유쾌한 모습 하나.

빵이 주식이오, 몸속에 꿀이 흐르니 비로소 카자흐 사람 아니던가. 아기자기한 디저트 집 한가운데 수염 덥수룩하고 무뚝뚝한 얼굴의 아저씨가 혼자 케이크에 차를 곁들여 식사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마초 같은 남성상을 모범에 두고도 캬라멜과 꿀로 한껏 코팅된 케이크에 차 한 잔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 뭐랄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 상식이란 이토록 부질없는 것을. 남성과 여성을 만드는 사회의 성별이란 죄 허상 덩어리다. 구태여 얻을 게 없다면 한껏 늘어지는 게 인간의 본능일지니. 체면을 차리다 섭식에 대한 기호도 포기할 바에야 다수가 조용히, 서서히 규율을 버려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리겠지. 규칙이 계층과 특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혜택을 누리는 대상이 일반으로 넓어진다면.

아. 그래도 환상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어디든 낙원이 있겠냐만은. 다른 나라를 방문하고 살아갈 때 교류할 때 상대가 은연중에 드러내 기색을 읽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 공정에 대한 문화 및 제도적 불만이다. 거대한 아저씨가 아기자기한 케이크 가게에 홀로 앉아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건 그만큼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압박과 눈치를 강요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적을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 주길. 외부인이 전능한 척하며 주절거리는 게 그곳 한가운데 살아온 사람에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말로 한정하고 구분하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겪어온바 모르지 않으니. 경험한바 눈치채고 이해할 수 있어도 두루뭉술하게 적어 보태는 게 외부인의 예의라 생각한다.

뭐어...

이렇게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음식 사진을 기록용으로만 찍었더니 너무 맛없어 보여서 차마 올리기 뭣하네요;

며칠 전에 갔던 카페 인테리어가 예뻐 찍었던 것이 있는데 이것으로 대체해 봅니다.

달달한 케이크나 쿠키를 좋아하고 혹은 빵 자체를 좋아하고. 말, 양 등 좀 질기고 끈끈한 식감의 고기를 선호한다면 이곳 음식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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