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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말 Jun 16. 2024

적당한 시련? 오히려 좋아.

우당탕탕 부산 여행 완전 럭키비키잖아.

 2024.06.13 thu. 지니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 지니. 나는 1박 2일로 짧게 부산 여행을 다녀왔어요. 수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목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아주 짧은 일정이었죠. 어땠냐고요? 지금부터 이야기해볼게요. 할 말이 아주 많아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좋았어요. 정말 다사다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고 즐거웠거든요.


 이번 여행의 주체는 엄마였어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옆 공원에 피었다는 수국을 보러 가는 것이 엄마의 목표였죠. 겸사겸사 부산까지 간 김에 광안리 바다와 대교도 구경하고요. 프리랜서(라고 쓰고 반백수라고 읽는)인 나는 엄마의 짐꾼 겸 사진사 겸 여행 동료로 끼어서 따라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엄마의 핸드폰으로 숙소와 교통편을 모두 예약했어요.


 그리고 수요일 오후, 일을 끝내고 부산으로 출발한 지 1시간도 안 되어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출발역 벤치에 엄마의 핸드폰을 놓고 왔거든요. 우리는 그 사실을 기차에 앉고 나서 알았죠.


 “… 엄마 핸드폰 어디 갔지?” 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그 불안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어요. 이때 본 엄마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당황해 우왕좌왕하며 허둥댔어요. 서둘러 핸드폰을 찾으러 가려고 했죠.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그 순간, 문이 닫히며 기차가 움직였어요. 네. 출발하는 거죠. 숙소 정보, 기차 정보, 개인 정보(…)가 들어있는 핸드폰을 두고, 이역만리 부산을 향해서…….


 엄마의 핸드폰에는 지갑 케이스가 끼워져 있어요. 지갑과 핸드폰을 따로 들고 다니는 게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지갑 케이스를 애용했죠. 그러니까 우리는 핸드폰에 더해 엄마의 신분증과 여행 자금도 잃어버린 셈인 거죠. 이야!


 우리는 당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방법을 찾았어요. 일단, 내 핸드폰으로 출발한 역에 서둘러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핸드폰을 찾았어요. 다행히도 놓고 온 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고, 바로 옆에는 CCTV가 있는 상점이 있었던 터라 핸드폰은 무사히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친절하고 좋으신 직원분께서 주인 잃은 핸드폰을 구해 보관해 주셨죠. ‘살았다, 다행이다!’


 주인 잃은 핸드폰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핸드폰을 잃은 주인들을 구해야 했어요. 지금 우리는 모든 정보를 잃은 채 저 먼 곳 타지로 몸만 떠나고 있었죠.


 가장 먼저, 예약한 숙소 정보가 필요했어요. 유일한 단서는 광안리, 오션 뷰, ‘더’라는 글자가 들어간다는 것. 우리는 여행 어플을 뒤지며 숙소를 찾았어요. 익숙한 모습의 사진을 발견해 숙소가 어딘 지 알아냈어요. 부산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그곳으로 갔어요.


 숙소는 예약 당일 핸드폰을 통해 보내주는 문자를 통해 셀프 체크인을 하는 방식이었어요. 데스크 직원을 통한 체크인도 신분증도, 예약 어플 화면도 없는 탓에 조금 곤란했죠. 직원분께서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서 사정을 설명하고 어떻게 할지를 여쭤보셨는데, 다행히 사장님께서 바로 체크인을 도와주셨어요. 사실, 숙소 도착 직전에 길을 못 찾아서 한 차례 전화를 드리며 사정을 설명했었거든요. 그걸 기억하신 사장님께서 바로 체크인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신 거예요.


 정말이지, 매 순간 문제가 은근슬쩍 풀려서 너무 신기했어요. 곤란한 문제가 찾아오기는 하는데, 정말 심각해질 만큼 문제가 커지기 전에 순조롭게 일이 넘어갔거든요. 음악을 들으려다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았고, 숙소를 못 찾아 걸었던 전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고…. 그리고, 핸드폰도 지갑도 없는 엄마 옆에 둘 다 있는 내가 있었고! 함께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꼭, 신이 방법을 안배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렇게 숙소에 들어가 드디어 고단한 몸을 쉬게 하고, 아름다운 광안의 밤바다를 마음 편히 구경할 수 있었어요. 불빛이 들어와 반짝이는 광안대교와 작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지금 여기가 부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늦은 시간 잠시 숙소를 나갔을 때, 해변을 따라 여러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어요. 길은 러닝을 하는 사람들과 여행으로 신난 사람들로 북적였고요. 그 모습을 보자 정말로 여행지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더라고요.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또다시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구경했어요. 아침의 바다는 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환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 높은 숙소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자동차가 아주 작게 보였어요. 그 모습이 꼭 장난감 레고 모형들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내린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우리는 둘 다 캡슐 커피 머신을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여유를 즐기다가,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왔죠.


 우리는 해운대 수국을 보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사실, 있었어도 별로 소용이 없었겠죠. 그래서 끌리는 곳에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어요.


 잠시간의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자그마한 양식집이었어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어요. 정말 맛있었거든요. 둘이서 메뉴 두 개를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하나를 더 시킬 만큼요. 오븐 스파게티와 볶음밥, 그리고 조금 시간이 늦은 것 같기는 하지만 브런치까지 싹싹 긁어 맛있게 먹었어요.


그 후로 들른 곳은 바로 앞에 있던 책방.


 그곳은 대략 1년 전쯤에 들른 적이 있던 책방이었어요. 지방 공연을 마치고 함께 공연한 언니들과 짧게 여행하며 들렀던 책방인데, 다시 보니 정말 반갑더라고요. 찬찬히 구경하다가 이번에도 소설책 2권을 사 들고 나왔어요.


 그리고 도착한 해운대. 기대했던 수국은 반쯤 피어 있었어요. 피어있는 수국과 함께 한참 사진을 찍었죠. 날씨가 정말 더웠는데, 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수국은 몽글몽글하고 예뻤어요. 이 꽃은 흙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진대요. 신기하죠?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래는 아주 뜨거웠어요. 바닷물은 반대로 아주 시원했고요. 발만 적시며 해변을 걸었어요. 뜨거운 날씨였지만 바다라서 그런가, 더운 것 마저 낭만이 되었어요.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모래에 누워 한가로이 몸을 태우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가, 그늘 덮인 벤치에 한참 앉아 쉬었죠.


 이제 곧 떠날 시간이에요. 즉흥적으로 메뉴를 정해 밥을 먹었어요.(역시나 맛있었고요.) 그리고 부산역을 향해 출발했죠.


 예약한 기차 정보를 모른다는 퀘스트가 다시 한번 주어졌지만 스릴 있게 깨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역 분실물 보관함에서 주인을 기다렸을 엄마의 핸드폰도 문제없이 찾고요.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적당한 시련이 있어서, 더 즐겁고 기억에 남게 된 여행이었어요. 완벽하게 계획대로 진행되는 여행보다 더요.


 사실 나는 항상,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많이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번 여행도 나 혼자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생각했겠죠.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엄마가 엄청나게 자책을 했거든요…….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아우, 정말 미쳤나 봐…!”


 거기서 나까지 말을 더할 수 없었다고 할까요…. 나는 엄마 여행에 얹혀 온 짐꾼 + 사진사 + 여행 파트너 + 반 백수 딸로서 이 여행을 즐겁게 만들 의무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고 행동하니, 정말 여행은 즐거웠어요. 감정은 행동과 말을 따라간다고 하던가요. 이번 경험으로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문제를 대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아요. 좋은 결말이죠?


 짧고 굵고, 다사다난했던 부산 여행 이야기는 이만 마칠게요.


 그럼 잘 자요,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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