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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 2

회장 선거

by 김추억

하교 후 집에 온 딸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하이클래스를 봤냐고 물어본다. 하이클래스는 학교 알림장 앱이다. 그날그날의 급식 메뉴와 공지사항과 여러 알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낮잠을 자고 있어서 못 봤다고 하니 얼른 하이클래스부터 확인하라고 한다. 휴대폰을 들어 하이클래스에 들어가서 보니 딸아이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다짜고짜 하이클래스부터 확인하라고 한 이유를 알았다.



2학기 학급 임원선거 결과

반장: ○○○

부반장: ○○○

회장: 추하경

부회장: ○○○



아침에 간발의 차로 지각을 하며 등교하는 딸아이는 오늘 반장선거가 있는 날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 딸에게 지각을 밥 먹듯 하는 반장은 어째 좀 이상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딸아이는 회장이 되어 엄청 뿌듯하고 감격한 표정이었다. 그런 딸아이 기분에 맞춰 나도 가문의 영광이니 오늘 저녁은 특별하게 먹자느니 하며 딸아이의 기쁨에 호응해 주었다.

"도대체 회장은 어떻게 된 거야? 선거 이야기 좀 해 봐라. 애들 앞에서 뭐라고 말했는데?"

"반장 선거랑 회장 선거 두 개 다 나갔어요. 하나 떨어지면 하나라도 붙을 수 있잖아요. 일단 반장 선거부터 나갔는데요,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나가서 반을 쭉 찢었어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여러분~ 제가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잘랐어요. 그럼 이게 몇 장이죠? 하고 물어보니까 친구들이 반장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또 그 반半장을 한 번 더 반으로 잘라서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요. 그럼 이건 무슨 장이죠? 하고 물어보니까 친구들이 반의 반장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저도 얼른 친구들에게 제가 여러분의 반의 반장이 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나는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음에도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반장 선거 연설인가 싶었다.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싶어 민망함까지 엄습해 왔다.

"회장 선거 공약은 뭐라 했는데?"

"응, 여러분의 임포스터가 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임포스터가 뭔데?"

"게임 캐릭터인데 엄마는 말해줘도 몰라요."

바로 임포스터imposter를 검색해 봤다. 어몽어스라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마피아 게임에서는 마피아, 그러니까 임포스터의 뜻은 사기꾼, 사칭꾼 정도로 해석된다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몰라, 내 학교생활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딸아이는 자꾸만 나에게 "학생회 하면 좀 늦게 집에 오는데 괜찮죠?" "학생회 하는 날은 좀 늦어요." "아, 임원들은 수시로 바쁠 수 있어요." 하며 무슨 생색 아닌 생색을 냈다.

딸아이가 검도장에 가기 전에 내게 한 말이 더 가관이다.

"엄마, 오늘 수업 중에 쓰레기 매립장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거든요. 제가 의견을 냈는데 선생님께서 하경이 의견이 제일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어요. 엄마, 저 갑자기 노관규 시장님 자리가 탐나요."

"아휴, 딸아, 노관규 시장님이 이 소리 들으면 엄청 긴장하시겠다. 얼른 검도장에 가라."

딸아이의 엉뚱한 학급 임원 선거, 그리고 시장 자리까지 탐내는 야망이 웃겨서 피식거렸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런 소소한 꿈조차도 없이 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 되고픈 자극을 딸아이한테 받았다.

요즘 우리 딸은 여전히 야망 있다. 나는 요즘 우리 딸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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