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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초콜릿

by 김추억 Apr 02. 2025

"엄마, 대박..."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오히려 낮게 깔린 음성으로 대박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는 정말 딸아이 입장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딸아이는 얼마나 엄청난 일을 마주했기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일까.
이럴 때는 오히려 엄마인 내가 호들갑을 떨며 반응해 주어야 한다.

"무슨 일인데? 아, 궁금해. 얼른 이야기 좀 해봐."

그러자 딸아이가 랩처럼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내가 지금 두바이 초콜릿을 먹었어요. 달달 탕후루에서 내 새끼손가락만 한 두바이 초콜릿을 먹었는데요, 그 새끼손가락만 한 것이 얼마인 줄 알아요? 놀라지 마세요. 7천 원이에요. 아빠한테 가격을 일부러 말 안 하고 계산했거든요. 제가 계속 아빠한테 두바이! 두바이! 이러고 있었거든요. 아빠가 계산하고 나서 낚였다고 했어요.
정말 눈물 나도록 맛있어요. 세상에 먹어 본 적 없는 초콜릿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그런데 한입 컷이에요. 내 허벅지만 한 두바이 초콜릿은 얼마인 줄 아세요?"

"네 허벅지만 한 것이 있어? 그게 얼만데?"

"칠만오천 원요, 근데 내 허벅지보다는 살짝 작아요.

"맛은? 설명해 봐."

"완전 맛있어요. 천사의 머리카락을 막 씹는 것 같은 맛, 천사의 머리카락으로 소문난 실 카다이프 같은..."

"우아 멋지다. 그런데 그게 한입 컷이야? 입안에서 초콜릿이 얼마 동안 머물렀어?"

"음... 15초!"

"입안에서 행복은 얼만큼 컸어?"

"마~~~~아니!"

딸아이와 전화 통화를 끝냈다. 통화를 종료하기 전에 마지막 인사로 나는 "사랑해 미안해 예뻐"를 딸에게 들려준다.

요즘 우리 딸은 입원한 엄마에게 음성통화, 영상통화를 걸어 미주알고주알 떠들기 바쁘다.

약기운에 잠이 쏟아지는데 딸에게 전화가 또 걸려왔다. 피아노를 쳐 줄 테니 멜로디만 듣고 제목을 맞추란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정답을 거의 못 맞히고 오답을 외쳐댄다. 또 일부러 장난도 친다. 라 캄파넬라를 라 깐따삐야, 송어를 숭어, 환희의 송가를 하니의 손까, 소나티네를 소나타네...

그러다 아이가 무슨 애니메이션 OST  '시대를 초월한 마음'이란 곡을 연주해 주는데 갑자기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 공간을 초월해서 들려오는 어설픈 피아노 건반의 누름이 딸아이 마음 같았다. 요즘 딸아이가 사춘기여서?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떨어져 지낸 시간들의 합이 애정결핍이 되었는지 엄마의 사랑과 엄마의 인내를 테스트하는 딸로 인해 몹시 힘든 나였다. 사람의 속 사정은 정말 그 사람 본인만 안다.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 주섬주섬 오래전에 찍은 아이의 사진과 끄적여 놓은 메모를 꺼내 보았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글은 시간을 초월한 마음, 감정을 가졌다.


<엄마를 만난 기쁨>
딸아이가 여섯 살 때의 사진이다.
나는 딸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오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날은 내가 타지에서 17일간 입원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순천에 오자마자 집에도 안 들리고 곧장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껴안았다.


엄마를 만난 기쁨에 한없이 행복해하는 딸을 보며 어린것이 그동안 엄마 없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를 헤아리니 내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아이가 커가면서 서운할 일도 생기고 또 사춘기가 되면 투닥거릴 때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기억하련다. 우리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 '가족'이라는 것을.






이누야샤 OST "시대를 초월한 마음"
2분 48초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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