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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감칠맛

by 김추억

어제 학교 수업을 마친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오늘 급식에서 뭐 나왔게요?"

당연히 모르는 것을 이렇게 물어볼 때는 특별한 메뉴가 급식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뭐 나왔는데?"

"코다리찜! 코다리찜 진짜 맛있었어요! 코다리찜 안 먹는 친구들한테 이리 내라고 해서 제가 다 먹었어요. 선생님도 코다리 안 드시길래 선생님 골고루 드셔야지요 했더니 하경이 먹을래? 하면서 저 주셨어요. 마지막 국물까지 밥에 비벼 먹었더니 지금 배 엄청 불러요." (참고로 딸아이는 육식 인간, 골고루 안 먹는다.)

딸아이 말을 듣고 급식실 풍경이 그려져 웃음이 났다. 딸아이는 나에게 자주 급식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특별한 메뉴가 나온 날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전화로 나에게 보고를 한다.

한 번은 왕새우, 대하가 급식으로 나왔나 보다. 딸아이는 팔을 걷어붙이고 반 아이들의 새우를 다 까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하경이 수고했다 하면서 몇몇 친구들이 자신의 새우 하나씩을 딸아이에게 주기도 했다고 한다.

간장게장이 급식으로 나온 날은 아주 신나서 전화가 왔다. 딸아이는 간장게장을 사랑한다. 2마트에서 700g짜리 간장게장을 사주면 그것을 꿀단지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에 간다. 그 모습이 우스워 한마디 하면 바로 또 한마디 하는 딸이다.

"간장게장이 아주 소중하신가 봅니다."

"아, 예, 간장게장은 생명입니다."

딸아이가 돌을 조금 앞둔 어느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정말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도 있었겠다 싶은 사건인데... 식탁에서 이유식을 먹이고 있었던 때였다. 간도 싱겁고 맛도 없는 그 이유식에 그냥 묵은지 하나를 잘게 썰어 올려 먹여보고 싶었다. 실행했다. 얼마나 매웠을까, 딸아이 얼굴이 시뻘게졌다. 물을 먹였다. 아이가 캑캑댔다. 그런데... 아이가 묵은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더 달라는 의사표시였다. 딸아이는 그렇게 돌이 되기도 전에 김치를 먹었다.

나는 인생의 여러 가지 맛에서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 줘야 할 맛은 바로 한국인의 감칠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콩나물무침에 미원을 뿌렸다. 미원을 넣느냐 안 넣느냐에 따라 식사량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젓갈류를 먹였다. 딸아이는 새우젓, 낙지젓 하나에도 밥을 먹는다.

딸아이는 잘 먹어서 어디 가도 사랑을 받는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에도 밥을 잘 먹어서 이쁘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다. 식당에 가면 나는 된장찌개를, 딸아이는 김치찌개를 시키면 애가 매운 김치찌개를 먹는 걸 보고 사장님들이 신기해하시고 기특해하셨다.

문제는 딸아이가 한국인의 감칠맛을 알아서 배꼬리가 너무 늘어나 버렸다는 것이다. 뒤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하니까 무섭고 혹시 뱃속에 회충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마저 들었다. 그래도 의심이 낫다. 안 먹어서 근심이 되는 것보다 말이다.

요즘 우리 딸은 급식실에서 행복하다. 원래도 급식실에서 행복했지만 요즘 더 행복한가 보다. 수화기 너머 딸아이 목소리 들으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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