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딸은 힘이 더 세졌다.
우리 딸은 추 씨 성을 가졌다.
그래서 예전에 나는 딸아이를 많이 놀렸다. 지금은 그랬다간 큰일 나지만 예전에는 줄임말로 딸을 부르곤 했다.
배추- 배고픈 추*경
고추-고달픈 추*경
대추-대단한 추*경
상추-상처받은 추*경
아무튼 이런 식이었고 또 무슨 시작만 하면 추씨성을 응용해서 칭찬해 줬다.
피아노 배울 땐 추베르트
그림 그릴 땐 추카소
집에서 실험할 땐 아인추타인
노래할 땐 추수미
달리기 할 땐 추사인볼트
아무튼 이런 식이었고 그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건 바로 '추라클레스'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최고의 영웅! 힘이 센 헤라클레스를 응용한 거였다.
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바비인형 같은 건 싫어하고 로보트나 레고 인형, 솜 인형 같은 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인형들을 가지고 놀다가 힘 조절이 안되어서인지 인형들의 목을 부러트린다든지 어깨를 탈골시킨다든지 솜 인형들의 겨드랑이 같은 곳을 터트리고는 자신도 속상해서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럼 나는 딸아이에게 괜찮다고, 살아있는 것만 안 부러트리고 안 터트리면 된다고 달래주면서 인형들을 응급처치해 주었다.
그랬던 우리 딸이 요즘 힘이 더 세졌다.
"엄마, 우리 반에서 내가 두 번째로 힘이 세요."
"첫 번째는 누군데?"
"선생님이요."
참고로 담임 선생님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시다.
딸아이는 반에서 자신이 두 번째로 힘이 센 이야기를 쫑알쫑알 들려준다. 선생님을 제외하면 제일 힘이 세다는 뜻인데 굳이 선생님을 포함시킨다.
딸아이 반에는 14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어쩌다 힘겨루기가 반에서 벌어진 모양이었다.
딸아이가 남자아이들까지 팔씨름을 다 이겨먹고 그냥 씨름도 다 이겨먹었단다. 심지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하는 허벅지 씨름도 다 이겨먹고...
"엄마, 서로 등 돌린 상태에서 엉덩이로 공격하는 씨름 있거든요. 찬희가 갑자기 공격하는 바람에 내가 순간 위험했거든요. 근데 빡 힘줘서 버틴 다음에 내가 다시 공격했는데 찬희가 앞으로 쓰러졌어요."
선생님께서 왜 갑자기 반 아이들에게 그런 힘 겨루는 시간을 가지게 하셨는지가 의문이다.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표정과 웃음소리가 보이고 들리는 것 같았다.
모름지기 좋은 부모란 자녀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그 재능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가 아닐까 싶었다.
"하경아, 너 역도선수나 씨름선수해라."
딸아이는 싫단다. 딸아이의 재능이 아깝다.
요즘 우리 딸, 힘이 더욱 세졌다.
힘이 센 딸아이를 생각하니 엉뚱한 詩 하나가 갑자기 찾아든다.
<헤라클레스>
어느 엄마가 있었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그 아이엄마는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은
너로구나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작은 힘도 들이지 않으면서
가만히 잠들어 아무 힘도 들이지 않으면서
엄마의 힘겨운 아침을 일으켜 세우니까 그렇지
낮은 혈압과 맥박으로
납작한 새벽과 웅크린 아침을 가진
그 아이엄마의 생각이었다
아침의 일출도 해내지 못하는 그 일을
잠들어 있는 작은 아이가 하니까,
낑낑대는 엄마의 하루를
견인하니까
천하장사도 어쩌지 못하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힘을 지녔으니까,
납작한 그 아이엄마의 마음을
자꾸 일으켜 세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