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 #6 Barcelona
시간이 많으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어.
무한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이 이 여행에 주어진다면,
더 근사하고 현지의 감성을 담뿍 담은 멋진 문구들로
추억을 아로새겨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종일 생경한 거리를 쏘다니다가 해가 질 때 즈음
혼자서 저녁놀을 등지며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탄 뒤,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곁에 아무도 없이 온전히 혼자가 되면,
더 깊숙하게 내 안으로 내 사유 속으로 잠겨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사람 행실이 참 간사한 게,
일상 속에서 무수한 핑계를 그렇게나 다--아 '시간' 그놈의 탓으로 돌리다가도
무한히 늘려 쓸 수 있을 만큼의 여유로움이 막상 주어지니,
한없는 게으름, 게으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고야 마는......
야무지지 못한 일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행한다는 것이다.
번연히 자신의 나태함을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 것, 아니 봐야만 할 것, 방문할 곳, 아니 가야만 할 곳,
맛있는 곳, '별'을 받은 식당들, 추천받은 가게들이 너무도 많아
단지 둘러보는 시간만으로도 부족할 것만 같았던 바르셀로나는,
어느덧 벌써 반쯤은 눈에 익어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들어가는 귀가길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내 시선에 꾹꾹, 담겼다.
'겨울'로 접어드는 시즌임에도 포근하고 따뜻한 햇살,
거리 어느 곳에나 즐비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조금만 걸으면 등장하는 푸른 해변,
정박해 있는 요트들,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세월을 감싸안은 문짝과 벽돌들,
구경만으로도 군침 돌게 만드는 각종 타파스와 쌉쌀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
아아, 찬란한 도시다 정말.
지도 없이 골목길을 내키는대로 걷다가 냄새가 끝내주는 타파스집을 발견하면
그냥 들어가 옆 테이블의 아저씨와 어깨를 부딪히며 타파스를 주문해 먹었고,
목이 마르면 주스나 청량음료 대신 하우스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필름의 부재를 걱정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며칠뿐,
나중에는 디지털 카메라조차 들고 나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냥, 내 한때와 여유를 그곳에 '흘리고' 왔다.
천연덕스럽게도.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후회없이, 손톱만큼의 미련도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마음껏.
일단, 츄러스부터 하나 먹고나서
탐방 시작하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블로그상의 추천 가게도 가보고,
골목을 걷다가 달콤한 초콜릿향에
흠흠, 거리며 이끌려 들어간 가게에서
진하고 끈적하고 따스한 그것.
맛있고, 기운이 난다!
바르셀로나의 츄러스는 갓 튀겨낸 것이
아닐지라도 반죽의 쫄깃거림이
절묘하게 남아 있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 설탕 뿌려줘요?
- 아니오, 괜찮아요! 쇼콜라또가 있으니까요-
Tapas bar를 찾는 재미를 빼놓는다면,
스페인 여행으로부터 과연 무엇이 남으리?
가게마다, 주인장의 손맛마다,
재료마다, 양념마다,
분위기마다-
제각각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곳들.
돌아와서 가장 그리움으로 남는 곳들.
바르셀로나의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끝은, 없다.
마침 화창한 이날, 제법 널찍한 어느 광장에서
페스티벌 비슷한 것이 열리고 있던 중이라,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티켓 부스에서 행사용 티켓을 끊어
원하는 음료 한 잔과 'Chef's dish' 한두 가지를
맛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늘어선 천막들을 맘껏 기웃거리며
판매 중인 음식들을 사먹을 수도 있는,
아아, 신나는 Autumn Food Festival.
마지판Marzipan은
아몬드 가루와 설탕으로 만드는,
엄청나게 달고 쫀쫀한 디저트 과자의 일종.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요기, 또 이렇게나 귀엽고 꼼꼼하게 빚어낸
한 장의 동화책같은, 장난감같은
생기발랄함이 있네.
맥주 한 잔 손에 들고
꺼지지 않는 배를 원망스러워하며......
햇살과 하늘은 눈이 부셨다.
다시 거리를 걸어......
......까사 바뜨요Casa Batlló에 왔다.
생각보다 너무나 번화한 거리, 그리고 대로변에 터억, 하니 자리하고 있어서
도리어 생경스러운 이 건물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그냥...... 하나하나 눈으로 뜯어보면서,
파아랗고 청명한 색감, 유려한 선, 넘치는 색색의 빛, 반짝이는 타일,
혹은 기괴하게까지 보이는 형태들까지- 빠져들어보면 된다.
건물 내부로 입장하려는 관광객 무리가
오후 나절임에도 불구하고 바글바글했지만,
유독 이곳 입장료는 비싼 편이다.
아마 미리 예약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한참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정면으로는 앉아서 편히
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한껏 누리다 가라고
벤치까지 여남은 개 구비되어 있다.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돌아와,
간신히 한 자리 난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갔다.
다시 또 정처없이 거리를 걸어......
돌아온다.
바르셀로나는
아껴쓰지 않아도 될 만큼 넘치는 풍요로움과
특유의 유쾌함으로
이방인과 그곳 사람들을
한아름에 껴안는
힘있는 도시.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