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ckMatter Jun 01. 2024

순수하고 필연적인 중력의 이끌림

또는 너무 가까워져버린 현실과 가상의 간극, Dall - ARTMS 리뷰


Dall

ARTMS

2024. 05. 31

Best Tracks Virtual Angel,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Flower Rhythm, Candy Crush, Butterfly Effect, Birth





Review by BlackMatter

★★★★ 5/5



달은 지구를 공전한다. 지구가 엮어낸 중력장이 선사하는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에 45억 년 간 하나의 궤도를 맴돌아온 달은 자신이 반사하는 빛과 중력으로 지구를 완성시키고, 이 순수하며 진리적인 관계는 우주의 이치로 자리 잡았다. 이달의 소녀의 비극적 활동 중단 이후 희진하슬김립진솔최리 이 다섯 멤버들을 모아 탄생한 ARTMS의 첫 완전체 정규 앨범 Dall 또는 Devine All Love & Live는 이 자연적 아름다움 속에 8년간 이어온 커리어를 투영한다. 동시에 Dall은 포스트 루나 (Post LOONA)로 일컬어지는 이달의 소녀에서 파생된 아티스트들의 시대의 완전한 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이달의 소녀의 다섯 멤버로 이루어진 Loossemble과 솔로로써 아티스트적 자립을 선택한 와 이브에 이어 시작을 알린 아르테미스는 초반기 이달의 소녀의 선로를 따라가려는 듯하다. 이달의 소녀의 프리 데뷔 솔로 싱글들과 유닛 앨범 그리고 미니 1집 리패키지 앨범  X X의 프로듀서를 맡은 정병기의 MODHAUS에서 그녀들은 다시 한번 앨범의 완성도에 집착하며 웰메이드 케이팝의 여왕이 되어 왕관을 쓰고자 한다. RYM과 AOTY 등 힙스터 성향의 유저 평론 사이트에서 광폭적인 지지를 얻는 이달의 소녀와 유닛 ODD EYE CIRCLE의 멤버들을 등에 업은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음악성의 증명과 보존이라는 노선을 택한 것이다.


url

Dall이 그려내는 중력으로 말미암은 달과 행성 간의 필연적 이끌림은 타이틀곡 Virtual Angel의 컨셉에 맞게 설정한 url이라는 제목을 가진 인트로 트랙으로 그 서사의 시작을 알린다. 정병기의 프로듀싱이 가진 유별난 집착점이자 강점인 인트로 트랙은 언제나 망명 높은 학술가가 써내린 앨범의 추천사 내지 서문과 같다. 금월 앞서 발매되었던 후배 그룹 tripleS의 S와 유사하기도 한 url은 멤버 김립의 나레이션으로 앨범의 시사점을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담아낸다. 베이스와 클랩으로 이어나가다 기타와 드럼의 도입으로 차근히 절정에 달하는 앨범의 사운드적 질감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비트 속 ‘너의 수정체에 빛나는 나의 모습’과 "너의 눈에 자리 잡은 진실" 등의 가사는 서로를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완해 주는 달과 지구의 모습처럼 유지되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전달해온다. 이제 url을 눌러 Virtual Angel로 나아가 보자.  


Virtual Angel

이어지는 타이틀곡 Virtual Angel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비트로 같은 서사를 이어나간다. 2024년의 작금, 우리는 기계화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체온 36.5도가 전해주던 온기는 이제 고효율과 정확도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AI와 버츄얼 세상으로 대체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졌고, 인간 간의 사랑은 다양한 일차적 욕구로 변질되었으며 이의 불만족은 타인에게 혐오로 표출된다. 아르테미스는 자신들의 커리어에서 이토록 너무나 복잡하고 차가워져버린 세상 속 어쩌면 가장 순수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발견한 듯하다. 단지 이 사랑이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닐 뿐이다. 오랜 기간 동안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는 여러 단어로 정리되어 왔다. 특히나 기형적 산업 구조를 띈 케이팝에서 이 관계는 유사 연애와 현실 도피 등의 부정적인 단어로 정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양극단을 제하고 이들을 바라본다면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필연적이면서도 순수한 관계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파도를 만들어내고 밤빛을 비춰주며 적정한 거리 속 서로의 존재를 유지해 주는 달과 지구처럼 말이다. 팬덤은 아티스트로 하여금 모든 것이 가상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에서 행복을 얻어 가고, 아티스트는 팬덤의 존재로써 비로소 완성되며 마침내 빛날 수 있다. 이 관계의 시작의 요인은 상이하겠지만, 어느새 서로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은 이들의 필연성과 무조건적인 지지를 어쩌면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리적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기에 그 어느 감정보다 가상의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는 어쩌면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숭고한 감정일 수 있음을 Virtual Angel은 노래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희망과 사랑의 메세지는 트리플에스의 Geneartion과 Girls Never Die로 모드하우스와 합을 맞추었던 EL CAPITXN과 Vendors에게서 태어난 유로 댄스 장르를 만나 날아올랐다. 시작을 알리는 성스러운 분위기의 코러스는 베이스라인과 신디사이저로 이어지며 부드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겹겹이 쌓아 올린 음향의 레이어는 여리면서도 부드럽게 믹싱 된 보컬과 어우러져 아련함과 애틋함이 담긴 사랑의 감정을 표출한다. 동시에 정병기와 김성우의 펜촉에서 태어난 가사는 이달의 소녀의 커리어에 대한 레퍼런스를 가득 담아내며 기다림의 시기를 지나온 팬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초능력을 가졌다는 설정의 유닛 오드아이써클을 레퍼런스 한 멤버 진솔의 "상처받지 않게 숨긴 초능력을 가진 현실", 프리 데뷔 솔로 싱글 Singing in the Rain의 가사를 오마주한 “태양을 다 삼킨 죄” 등의 가사는 사랑으로 엮인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문과 같으며, 이달의 소녀의 데뷔 앨범부터 끊임없이 차용되었던 나비의 모티프 또한 다시금 등장하며 본 트랙이 지니는 상징성을 알린다. 또한, 너의 날개가 부러질 때 너를 위해 곁에 있어주겠다는 가사와 너를 향한 유일한 천사가 되겠다는 가사는 서로의 에덴동산이 되어주는 이상적인 팬덤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아트 디렉터 컬렉티브 Digipedi가 만들어낸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유니크한 미장센의 뮤직비디오 또한 동일한 메세지를 전한다. 영상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에 등장하는 여러 대의 브라운관 TV 화면에 담긴 멤버들의 모습은 주로 스크린을 통해 서로를 만나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대변한다. 이후 등장하는 아르테미스의 광신도들은 차에 탄 채 두려워 떨고 있는 한 소녀를 공격한다. 날개를 달고 아르테미스와 에덴에 관련된 타투를 박아 넣은 이 신도들은 십자가 또는 화살의 형상을 한 응원봉을 들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고, 브라운관과 VR 기기로 가상 세계에서 그녀들을 만난다. 이렇듯 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다섯 명의 신도들은 자신들이 공격하던 소녀에게 캠코더를 맡기며 자신들을 녹화하게 하고, 자연스레 함게 시간을 보내며 컬트에 합류시킨다. 이들은 뮤직비디오의 후반부에 이르러 어떠한 의식처럼 보이는 행동을 통해 아르테미스를 현실 세계로 불러온다. 인신 공양의 형태였던 이 소환 의식이 끝나자 다섯 명의 신도들은 보이지 않고, 캠코더를 든 소녀는 오직 갑작스레 나타난 빛나는 아르테미스만을 찍고 있다. 이제 홀로 남은 소녀는 마지막으로 하늘로 떠오른 다섯 개의 빛나는 십자가를 마주한다. 에덴의 개념을 차용하며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인 루나버스와 서사를 이어나가는 Virtual Angle의 뮤직비디오는 곡의 또 다른 메세지였던 현실과 가상이 구분되지 않도록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효과적으로 이뤄내고, 동시에 아르테미스 만의 세계관의 시작을 알린다. 또한,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신도들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현실에 당도하는 아르테미스의 모습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한다. 극적인 프레임 전환을 통해 현실과 아르테미스의 세상 속 간극을 표현한 본 뮤직비디오의 미장센은 인상적이게도 싱가포르 출신의 일렉트로닉 가수 yeule의 에스테틱을 연상시킨다. 꿈속에 들어간 듯한 색감과 타투, Y2K에 기반한 사이버네틱 한 오브제들은 의 뮤직비디오들과 높은 유사성을 띈 비주얼을 선보이며, 이는 뮤직비디오의 목적에 이르기 위한 훌륭한 수단이 되었다. 이달의 소녀의 과거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한 샷들과 왕가위의 영화 타락 천사, 히데오 코지마의 게임 데스 스트랜딩과 유사한 장면들 또한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Sparkle

심오하고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타이틀곡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Sparkle은 가볍고 산뜻한 비트와 가사로 사랑을 노래한다. 챠핑되어 반복되는 보컬과 미니멀한 비트 위에 수놓아진 일렉 기타와 드럼은 멤버들이 작사한 아름답고 뜨거운 불꽃놀이에 사랑을 비유하는 가사와 맞물려 산뜻한 감정을 자아낸다. 아르테미스의 사랑은 그들이 상징하는 달만큼이나 동그랗고, 자연스레 시작과 끝이 없어 영원해 보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끊임없이 사용되는 달의 모티프와 그룹명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은 은하에 위치해 있었다. 이 은하에 갇힌 이달의 소녀는 이제 제4의 벽을 허물고 아르테미스로써 팬들에게 다가오려 한다. 동명의 책에서 제목을 따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이달의 소녀의 X X의 타이틀곡 Butterfly를 제작한 G-High가 아르테미스에게 선물한 곡이다. 하이톤의 신디사이저와 보컬에 적용된 리버브가 생성해 내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우주적 음향은 드럼에 의해 고조되어가고, 시계 초침 소리를 지나 강렬한 Future Bass 드롭을 만난다. 비트 드롭과 어우러지는 보컬의 피치 조정은 Butterfly와 평행 구조를 이루며 유사한 향취를 전해오며, 멤버 김립의 프리 데뷔 싱글이었던 Twilight과 12명의 이달의 소녀의 멤버에 대한 레퍼런스가 담긴 가사는 방대한 세계관을 휘감으며 무한 불가능 확률 추진기를 작동시켜 순수한 마음 호를 출발시킨다.


Flower Rhythm

멤버 희진의 솔로곡 개화와 Algorithm (알고리듬)의 '리듬'을 차용해 만든 Flower Rhythm은 ‘개화’라는 단어가 갖는 상징성에 따라 아르테미스의 시작을 알리는 곡 중 하나였다. Birth에 이어 두 번째 선공개 곡으로써 데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던 만큼 Flower Rhythm은 하이브리드 댄스 장르를 차용하며 빠른 리듬으로 곡을 이어나간다. 앞서 언급된 멤버 희진에 두 솔로곡을 샘플링하여 만들어진 만큼 꽃에 대한 은유가 가득한 가사는 아르테미스의 화사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와 달리 퍼포먼스 위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는 선명하고 모던한 로케이션과 라이팅, 그리고 대형 스크린에 재생되는 그래픽 아트를 통해 세련된 비주얼을 선보인다.


Candy Crush

Candy Crsuh는 멤버 하슬의 디지털 싱글 Plastic Candy를 샘플링한 시티 팝 트랙이다. 시티 팝의 몽환적이고 공명하는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내는 멜로디 위로 트럼펫 등 갖가지의 악기가 쌓여올려지며 꿈속에서 사랑을 하는 듯한 달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찬가지로 우주로 엮어낸 사랑의 감정에 사탕의 달콤함을 더한 가사는 시티 팝 특유의 분위기와 맞물려 아름다움을 전하는 선공개 트랙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다. 롤러스케이트장을 무대 삼아 80년대의 정수를 보여준 뮤직비디오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롤러스케이트라는 오브제가 루나버스에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이가 곡에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로케이션의 선정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Air

앨범 발매 전 이어져오던 두 달의 선공개 릴레이의 마지막 단상을 차지했던 Air는 발매와 동시에 가장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오드아이써클의 원곡 Air Force One 과는 상반되는 지나치게 평이한 비트와 코러스는 앨범에 대한 기대감의 기반을 흔들어놓는 데에 충분했고, 장르의 과한 다양성으로 앨범의 완성도를 걱정하던 팬덤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다행히도 앨범 속 Air는 기억에 각인되지 않는 않는 평범한 필러 트랙 그 이상의 존재감도 선보이지 않았고 그보다 심한 악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템포로 이어져 오던 앨범의 분기점으로써 환기를 돕는 역할로써 본분을 충실히 다했다고 평가하는 바가 옳을 것이다. 트랙 자체의 퀄리티를 떠나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어쩌면 본 트랙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Unf/Air

Unfair라는 단어를 가로지르는 빗금. 사랑을 완성시키는 두 존재가 가진 감정의 무게는  Unf와 Air의 형태만큼 비균형적이다. 이 기울어진 저울 위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르테미스를 만나 귀여운 투정으로 표출된다.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비트와 답답한 마음을 담은 가사는 이 감정이 분열을 일으킬 절망의 감정보다는 가벼운 아쉬움의 감정인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곡을 마무리하며 펼쳐지는 보컬 차핑과 산뜻하고 귀여운 악기의 활용은 청자에게 청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조난

우주를 항해하다 조난을 당하는 것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게는 가장 두려운 재난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지를 잃은 만큼 조난된 여행자는 동시에 더욱 자유로워진다. 정해진 경로만을 따라가지 않고 마음을 이끄는 주변의 별에 잠시 발길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둘만의 목적지를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달의 소녀의 커리어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암초에 걸려 조난의 시간을 겪었다. 미래의 불투명함이 드리운 어둠이 너무 나 커 보였던 조난 기간을 지나 이제는 각각 새로운 경로와 동반자를 만난 아르테미스는 길고 길었던 암흑 속 기다림을 지나 팬덤 OURII와 함께 다시 한번 은하수를 항해하고자 한다. 강하게 걸린 딜레이와 리버브, 그리고 간결한 베이스라인은 이 기다림의 기간을 청각화하고, 절정에서 터져 나오는 신디사이저는 강한 결심으로 이뤄낸 새 출발을 상징하는 듯하다.


Butterfly Effect

2019년, 열두 마리의 나비가 이뤄낸 날갯짓은 어쩌면 작고 사소해 보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들이 케이팝에 불러일으킨 바람은 거대했다. 강제로 달을 가려버린 거대한 그림자에 잠시 멈추었던 그 바람은 이제 새롭게 시작될 기회를 얻었고, 이제 아르테미스는 다시 한번 과거의 나비 효과를 복원하려 한다. 깊고 무거운 신디사이저의 활용이 연상시키는 Butterfly의 무드와 담담하고 진지한 톤의 보컬에서는 반등을 이뤄낸 다섯 멤버들의 강인한 결의가 들려오는 듯하다. 마지막까지 돋보이는 여러 겹으로 쌓인 악기의 사운드는 서로 부딪혀 보강간섭을 이뤄내고 공명하며 강하게 박혀오는 드럼은 절도 있는 세련됨까지 생성해낸다.


Birth

섬뜩하고 기괴한 UK Garage와 Drum and Bass로 노래하는 이별과 감정의 과잉. 모드하우스만의 유니크한 시스템 Gravity에서 팬들의 투표로 결정된 Dall의 첫 선공개 트랙 Birth는 탄생을 알리는 제목과 상반되는 무드와 비주얼, 트랙 배치 그 모든 방면에서 새롭고 특별하다. 비극적 끝맺음이 가미된 모든 관계는 집착과 섬망을 남기고 사랑과 분노, 집착과 현실 부정이 뒤섞인 감정은 현실에서 인간을 떨어뜨려 놓고 기억을 조작한다. 깊게 곪은 이별의 서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 소름 끼치는 절규와도 같은 사운드는 케이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경로를 선택하였으나 결코 그 실험성을 위해 완성도를 타협하지 않았고, 이러한 방향성의 확립은 뮤직비디오에서도 이어진다.


Birth의 뮤직비디오는 두 달 이후 공개된 Virtual Angel의 뮤직비디오와 하나의 서사를 이어나간다. 빛을 내는 거대한 여인의 존재에 홀린 아르테미스는 뿔 달린 여신과 같은 존재를 처단하고, 여인에게 조종당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Virtual Angel에서 아르테미스의 멤버들이 여인에게 조종당해 브라운관을 통해 광신도들에게 지령을 내려 자신들을 현실 세계에 소환시키게 하는 데에 이른다. 이제 첫 시작을 알린 아르테미스의 세계관 속 인물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악랄한 전 소속사에 대한 은유일지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의 도입일지도, 루나버스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다수의 케이팝 웰메이드 앨범은 약한 유기성이든, 전무한 서사이든, 독보적으로 낮은 퀄리티의 하나의 트랙이든 모두 제각각의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정식 데뷔 앨범 Dall은 송 캠프에서 해외 작곡가들의 손길을 만나 탄생한 때깔 고운 비트만에 자본을 쏟아놓은 클리셰적인 수작들에서 완전히 차별된다. 앨범 내에 존재하는 뚜렷한 서사와 사운드적 통일성, 실험성과 유기성을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가 장르적 바운더리 안에 갇혀 이뤄지는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를 차용하고 이어붙였지만 프로듀싱의 통일성을 덕에 켈로이드 흉터는 전무하다. 두 달간의 선공개 싱글 발매라는 극히 루즈한 프로모션 방식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결점도 쉬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한 웰메이드 앨범을 넘어 어쩌면 새로운 시대를 열었을지도 모르는 달의 여신이 선보인 노래와 춤은 매달 14일 밤의 달처럼 선명하고 아름답다.

작가의 이전글 '증명'에 대한 코즈믹 호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